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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여중생 장갑차 압사사건, 김선일씨 피살사건부터 최근에는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 미군에 의한 평택 민간인 수갑 사건 법률대응, 미군주둔비부담금 특별협정 대응, 기지촌 피해 여성들에 대한 국가배상청구소송, 용산미군기지 환경오염에 이르기까지. 이 사건들은 모두 '미군'과 관련이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함께 대표적인 불평등조약으로 꼽히는 '한미 SOFA' 개정이 왜 시급한지, 조항별로 꼼꼼히 따져봅니다. [편집자말]
[사례1] 주한미군은 2014년 10월 18일 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한국노무단(KSC) 지부 지부장 서아무개씨에게 정직 10일의 징계 예정 통보를, 같은 달 31일 사무국장 이아무개씨에게 해고예정 통보를 하였다. 징계 사유는 '사전 허가 없이 훈련 현장에 방문해 노조 활동을 함으로써 부대의 훈련과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씨는 "지난 19년 동안 이어진 노동조합의 관례에 따라 소속 분회를 돌며 조합원에게 격려 인사를 한 것이고, 점심시간이나 근무 외 시간을 이용해 방문했기 때문에 훈련을 방해한 것도 아니"라는 내용의 답변서를 미군 측에 보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관련기사 : "사물함 뒤진 미군에 항의했더니 표적·보복성 징계, 공포 분위기 조성").

[사례2] 2014년 8월 동두천 미군기지 식당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가 자택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을 맨 사건이 발생했다. 숨진 김아무개(47)씨는 동두천 미군기지에서 20여 년 동안 접시를 닦으며 주당 56시간씩 일해 200여만 원을 받았다. 그런데 고용주인 미군 측이 일방적으로 김씨의 노동시간을 줄이기 시작해서 근로시간이 40시간까지 줄어들자 생활고를 못 이긴 김씨가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최근 주한미군이 한국인 노동자를 사소한 이유로 해고하거나 노동시간을 일방적으로 줄이는 편법(정규직을 줄이고 파트타임을 늘리는 이른바 아이디얼 스태핑(Ideal Staffing) 정책)으로 한국인 노동자들을 감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주한미군 한국인노동조합 한인노무단 지부 간부들은 부대의 사물함 검사에 항의했다가 오히려 보복성 징계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사진을 미8군 부대 모습.
▲ 주한미군 한국인노동자들 노동 탄압 주장 주한미군 한국인노동조합 한인노무단 지부 간부들은 부대의 사물함 검사에 항의했다가 오히려 보복성 징계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사진을 미8군 부대 모습.
ⓒ 미8군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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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노조의 자료에 의하면 주한미군은 2007년 1만2850명이던 한국인 노동자들을 2014년 말 기준 1만2190명으로 감원하였다. 7년 사이에 약 5%(660명)가 감원된 것인데, 그 사이 주한미군의 수는 감축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경계 악화가 이유인데, 한국인이 해고된 자리는 주한미군 가족 등 미국인으로 채워지고 있다(관련기사 : "어디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우리는 노예"- 한·미 정부 모두 외면하는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 

대한민국 헌법은 근로의 권리와 근로3권을 '대한민국 국민이 누려야 할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아래 노동조합법) 등 노동관계법령을 통해 이를 구체화하고 있다.

주한미군 내 근무하는 한국인 노동자들 역시 헌법상 근로의 권리, 근로3권의 주체임은 말할 것도 없다. 주둔군 임무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거나 불합리하게 제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주한미군 내 근무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은 대한민국 헌법의 보호 아래 일하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 답은 '물음표'이다.

한국인 해고는 엿장수 마음대로, 구제는 바늘구멍

근로기준법은 '정당한 이유' 즉, 사회통념상 근로계약을 계속 시킬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해고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 SOFA 노무조항은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외에 '군사상 필요'에 의한 해고를 허용하고 있다. 이때 군사상 필요는 '자원 제약과 같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합중국 군대의 준비 태세 유지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포함한다. 한 마디로 줄 돈이 없으면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판단은 주한미군에 전적으로 맡겨져 있다.

그렇다면 부당하게 해고된 한국인 노동자들은 국내법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을까? 국내 노동관계법은 노동위원회를 통한 부당해고 구제절차(소청절차)와 행정소송을 통한 구제절차를 순차적 또는 동시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 SOFA 노무조항은 해고된 노동자가 소청절차를 거친 후에 다시 행정소송 절차를 밟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즉 주한미군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가 국내의 노동위원회에 해당하는 한미 SOFA 규정상의 특별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했다가 이를 인정받지 못한 경우 다시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특별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법원에 제소하는 방법은 가능하다).

한편 특별위원회 논의는 합동위원회의 지정에 의해 회부되는데, 합동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 대표 1명과 주한미군 대표 1명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특별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 관계자와 주한미군 측이 6인 이하 동수(同數)로 구성되어 다수결로 결정하는 구조다.

따라서 주한미군 측이 동의하지 않는 한 부당해고 판단을 받을 수 없다. 주한미군에 의해 해고된 노동자가 해고의 부당성 여부를 다시 주한미군에게 판단받는 구조인 것이다. 이에 반해 일본과 독일은 자국의 노동위원회와 법원이 해고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한다.

방위비 분담금은 오르는데 임금은 동결... 그럼 그 돈은?

1999년 이후 우리 정부가 부담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규모 추이
▲ 방위비 분담금 규모 추이 1999년 이후 우리 정부가 부담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규모 추이
ⓒ 통계청 e나라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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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국회에서 제9차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 비준동의안이 가결되었다. 그 중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에 대해 우리 정부의 부담 비율이 기존 71%에서 75%로 상향 조정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인 노동자들의 임금도 같이 오를까? 유감스럽게도 대답은 'NO(아니다)'다. 실제 방위비 분담금은 매년 4% 내외의 물가상승률 만큼 인상됐지만 한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동결되었고, 2014년에도 1.7% 인상에 머물렀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주한미군이 미국 예산법상 '페이캡(PAY CAP)' 제도를 이유로 주한노조와의 임금협상 자체를 거부하고, 해마다 일방적으로 임금인상률을 통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이캡 제도는 해외 주둔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해당국 노동자들에 대한 일종의 임금인상 상한제도로, 한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률이 같은 해 미 연방 공무원과 대한민국 공무원 임금인상률 중 높은 쪽의 임금인상률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이 제도대로라면 한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은 대한민국 공무원의 임금인상률 만큼이라도 인상됐어야 했다. 그러나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2011년 미국의 경제위기를 이유로 임금동결령을 실시하면서 3년간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의 임금까지 동결되어 버렸다.

둘째 방위비 분담금은 해마다 오르지만, 항목(인건비, 군사건설비, 연합방위력 증강사업, 군수지원)간 전용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두지 않아 주한미군이 인건비 항목을 군사건설비 등 다른 항목으로 사용하거나 아예 집행하지 않더라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즉, 현 제도 하에서는 한국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 항목인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 비중을 100% 부담한다 하더라도 주한미군이 이를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로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맹점을 이용해 주한미군은 2013년 말 기준 방위비 분담금 미집행분 1조3523억 원을 쌓아놓고 이자놀이를 하면서도, 그리고 해마다 한국 정부로부터 물가상승률 만큼 인상된 인건비를 받으면서도 정작 한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은 동결하고 있다.

파업을 결정하고도 파업할 수 없는 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지난 5월 22일 '불법부당한 방위비분담금(미군주둔경비)를 위해 미군에게 국민혈세 갖다 바치는 한국 정부당국을 풍자'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지난 5월 22일 '불법부당한 방위비분담금(미군주둔경비)를 위해 미군에게 국민혈세 갖다 바치는 한국 정부당국을 풍자'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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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인 노동자들의 고용 및 근로조건이 악화되는 동안 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아래 주한노조)은 무엇을 했을까? 우리나라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노사 당사자 일방이 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면 10일간(공익사업은 15일) 쟁의행위를 금지한다. 그러니까 통상의 노동조합은 10일 내에 조정이 성사되지 않으면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곧바로 파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미 SOFA 노무조항에 따르면 주한노조는 대한민국 노동위원회의 조정뿐만 아니라, 조정 결렬시 필요적으로 합동위원회 회의를 거쳐야 하고, 합동위원회는 이를 특별위원회에 회부하여 논의하게 한다. 이때 합동위원회의 결정은 구속력을 가지며(노동조합법에 없는 일종의 강제중재조항이다), 그 결정에 불복하거나 결정이 있기 전에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할 경우 노동조합의 승인 철회 및 해고의 정당한 사유로 간주한다.

합동위원회 및 특별위원회가 한미 동수로 구성되고 다수결로 결정하기 때문에 주한미군 측의 의사에 반한 결정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고, 특별위원회에 당사자 일방인 노동자대표의 참여가 배제되어 있는 것도 문제이다.

조정 절차
 조정 절차
ⓒ 박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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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주한노조의 쟁의행위가 금지되는 기간이 조정신청 접수일로부터 최소 45일이나 되는 것도 문제다. 우리 노동조합법 상의 10일(공익사업은 15일)에 비해 현저하게 긴 기간 쟁의행위 돌입을 금지하고 있어서 사실상 파업을 불가능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합동위원회에의 강제 회부 ▲주한미군의 의사와 다른 결정을 할 수 없는 합동위원회 및 특별위원회의 구조적 문제 ▲합동위원회 결정에 구속력 부여 ▲합동위원회 회의에 당사자 일방인 노동자대표의 참여 배제 ▲한국의 노동현실상 지나치게 장기간인 쟁의행위 금지기간 등의 문제로 주한노조의 파업 등 쟁의행위는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의지가 곧 대안

대책을 논의할 때 '의지'를 얘기하는 것은 흔히 무대책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한미 SOFA에서 만큼은 대한민국 정부의 의지가 가장 큰 대안이다. 왜냐하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여러 방안이 정부의 의지가 있으면 대안이 되지만 그것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논의되는 것이 직접고용제에서 간접고용제로의 전환이다. 이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지금처럼 주한미군에 바로 고용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와 고용관계를 맺고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즉 고용주는 대한민국 정부이고, 사용주는 주한미군인 셈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국내 노동법이 전면 적용되게 하자는 것인데, 일본이 이와 같은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간접고용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도 일본 정부와 주일미군 노동조합 사이에 고용 및 근로조건 등에 관한 협의가 되더라도 주일미군 측이 동의하지 않으면 이를 변경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반면 우리와 같이 직접고용제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은 노동자들의 기본권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임금 및 기타 근로조건에 대해서는 양 당국의 합의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용이나 사회보험에 관해 발생한 분쟁도 독일의 재판권에 속하도록 했다. 직접고용제든 간접고용제든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정부의 자국 노동자 보호 의지와 개입 여부에 따라 운용 형태가 모두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방위비 분담금 중 한국인 노동자들의 인건비를 대한민국 정부가 직접 지급하거나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에 대해 항목간 전용을 못하도록 규정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어느 것이든 실현된다면 한국인 노동자들의 고용 및 근로조건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해고를 통한 감원과 임금동결, 분담금의 항목간 전용 등으로 막대한 이익을 보고 있는 주한미군이 이에 응하도록 하는 데에는 대한민국 정부의 확고한 실행 의지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한미 SOFA 노무조항은 주한미군 내 한국인 노동자들의 헌법상 근로의 권리와 근로3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위헌적 요소가 크다. 독소 조항들을 삭제하여 국내 노동관계법이 왜곡 없이 적용되도록 노무조항이 개정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의 노력을 촉구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치현씨는 변호사로 민변 미군위원회, 노동위원회 회원입니다.



태그:#한미 SOFA, #노무조항, #주한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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