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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입맛을 되살려주는 굴. 김장 김치에도 들어가 김치의 맛을 살려준다.
 겨울철 입맛을 되살려주는 굴. 김장 김치에도 들어가 김치의 맛을 살려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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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 사는 박은성(48)씨는 해마다 김장을 할 때 굴을 넣는다. 올 김장에도 굴을 넣었다. 박씨는 완도산 굴을 고집한다. 벌써 5년째다. 특유의 시원한 맛과 감칠맛 때문이다. 굴이 머금은 바다의 향도 매력적이다.

이 굴은 우리 몸에도 좋다. 영양가도 높다. 두뇌발달에 좋은 타우린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 임산부와 어린이들에 좋다. 뼈를 튼튼하게 하는 칼슘과 빈혈 예방에 좋은 철도 듬뿍 들어있다. 비타민도 골고루 품고 있다. 풍부한 아연 성분은 기력 회복에 좋다. 피부미용에도 그만이다.

박씨가 해마다 굴을 사는 곳은 완도군 고금면 화성마을이다. 완도의 굴 주산지 가운데 한 곳으로 약산대교 길목에 있다. 강진군 마량면에서 다리로 연결돼 있어 자동차를 타고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섬이다.

11월부터 2월까지... 겨우내 굴 까는 마을 사람들

완도 고금도 화성마을 포구. 여느 포구의 겨울처럼 적막하다.
 완도 고금도 화성마을 포구. 여느 포구의 겨울처럼 적막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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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까는 사람들. 화성마을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굴 까는 사람들. 화성마을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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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8일, 굴을 많이 따는 화성마을로 갔다. 뭍의 끝자락, 전라남도 강진군 마량면에서 고금대교를 건너갔다. 화성마을로 가는 길은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동행한다. 매생이발로 포위된 크고 작은 섬 너머로 약산도와 신지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갯가를 따라 자그마한 비닐하우스가 줄지어 서 있다. 곳곳에 널브러진 굴 껍데기 무더기에서 이곳이 굴을 까는 작업장임을 직감할 수 있다. 때마침 배 한 척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포구로 들어온다. 갑판에는 굴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가까운 약산도과 신지도 사이 '대게포'에서 채취해 온 굴이란다. 배에서 굴이 쏟아지자 포구가 순식간에 굴로 덮힌다. 고요하던 포구도 덩달아 부산해진다. 주민들이 굴을 손수레와 경운기로 옮겨 싣고 작업장으로 달음박질친다.

굴을 까는 작업장 풍경. 화성마을 바닷가에 줄지어 있다.
 굴을 까는 작업장 풍경. 화성마을 바닷가에 줄지어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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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까는 작업장. 비닐하우스 안 작업장에서 할머니들이 굴을 까고 있다.
 굴 까는 작업장. 비닐하우스 안 작업장에서 할머니들이 굴을 까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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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에서는 할머니 네댓 명이 짝을 이뤄 굴 까는 작업을 시작한다. 날카로운 조새(굴 까는 어구)로 껍데기를 쪼아 굴을 쏙 빼내는 솜씨가 날렵하다. 달인 수준이다. 할머니들의 손놀림에 두툼한 껍데기 속에 숨어 있던 우윳빛 굴이 뽀얀 속살을 드러낸다. 색이 선명하고 미끈하다.

광주 북하 10되, 강릉 5되, 인천 사우나 10㎏…. 작업장에 걸린 달력에는 주문량을 적은 글씨가 빼곡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새벽부터 굴을 깐다. 해가 저물도록 굴을 까는 것은 일상이고, 날을 꼬박 새기도 한다. 겨우내 되풀이하는 일상이다. 한 사람이 하루에 까는 굴의 양은 평균 20㎏. 숙련된 사람은 30㎏까지 깐다.

"이제 제발 주문 좀 그만 들어왔으면 좋것네."

임규진 할머니가 너스레를 떤다. 굴 농사로 6남매를 키웠다는 할머니다.

연세 지긋해 보이는 다른 할머니가 굴 하나를 건넨다. 염치 불구하고 입을 크게 벌려 받았다. 물컹한 살이 혀에 닿으면서 바다향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차진 육질이 입에 착착 감긴다. 할머니가 하나를 더 입에 넣어준다.

"하나 먹으면 정 없응께. 하나 더 먹어."

우윳빛 굴. 물컹한 알맹이가 바다 내음을 가득 머금고 있다. 맛도 그만이다.
 우윳빛 굴. 물컹한 알맹이가 바다 내음을 가득 머금고 있다. 맛도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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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까는 작업. 화성마을의 겨울은 굴을 까는 계절이다.
 굴 까는 작업. 화성마을의 겨울은 굴을 까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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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굴 농사가 풍년이다. 별다른 자연재해가 없어 예년보다 작황이 좋다. 알도 그만큼 꽉 찼다. 맛도 좋다. 영양가도 풍부하다. 수확량만 생각한다면 주민들의 굴 까는 일은 재미로 가득 찬다.

"대게포는 청정해역이여라. 파도가 잔잔하고. 큰 배도 안 다닝께, 굴이 스트레스도 안 받고. 알도 그만큼 빨리 차고 굵지라. 어찌 우리 입으로 (우리 것이) 좋다고 하겄소? 먹어본 사람들이 판단하겄제."

윤옥만 화성마을 이장의 말이다. 화성마을은 20여 가구가 굴 농사를 짓는다. 농한기인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대게포를 제 집처럼 드나든다. 그렇게 한 해 평균 3000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엔간한 농사보다도 낫다. 청각과 미역, 매생이도 기르고 있다.

10년째 제자리 가격... 작업 끝나면 병원행

윤옥만 화성마을 이장. 그는 화성마을 앞바다에서 난 굴 자랑에 여념이 없다.
 윤옥만 화성마을 이장. 그는 화성마을 앞바다에서 난 굴 자랑에 여념이 없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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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작업장 풍경. 화성마을에서는 굴을 까고 껍데기를 치우는 일이 겨울의 일상이다.
 굴 작업장 풍경. 화성마을에서는 굴을 까고 껍데기를 치우는 일이 겨울의 일상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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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오구라지요. 다들 허리 빙신 돼 부렀당께. 그래서 요새 젊은 사람들은 매생이는 해도 굴은 안 해. 우리야 늙어서 요것 아니믄 굶어 죽응께 하제. 안 그러믄 안 해. 배운 것도 이것밖에 없고."

이심철 어촌계장의 말이다. 그는 굴 농사를 "사투"라고 했다. 끼고 있던 장갑을 벗고 손을 보여주는데 상처투성이다. 성한 곳이 없을 정도다. 날카로운 조새에 찔리고 긁힌 흉터가 손을 뒤덮고 있었다.

"굴 작업이 끝나믄 모다 병원 다니기 바쁘요. 추운 겨울 돈 벌어서 병원에다 다 갖다 바친당께."

그의 말에서 바닷가 사람들의 애환을 본다.

굴 까는 작업. 날카로운 조새를 이용해 굴을 깐다.
 굴 까는 작업. 날카로운 조새를 이용해 굴을 깐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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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로는 걱정이 없다. 주문이 밀려들고, 연도교를 건너온 관광객들이 많이 사가기도 한다. 하지만 아쉬움은 있다. 굴 값이 너무 싸다는 것이다. 값이 들쭉날쭉하지만, 깐 굴이 1㎏에 1만 원에 팔린다. 10년째 제자리다.

"큰 욕심 없어라. 많이도 말고, 굴 값을 쪼끔만 더 쳐주믄 좋겄는디."

마을 사람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그런 말도 잠시. 굴을 까는 손놀림은 여전히 부산하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굴, #화성마을, #고금도, #윤옥만, #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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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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