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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넬 스트릿이 시작되는 입구. 다니엘 오코넬 동상이 이 길의 시작점을 알려주고 있으며 저 멀리 뽀족한 첨탑인 스파이어(The Spire)가 보인다.
 오코넬 스트릿이 시작되는 입구. 다니엘 오코넬 동상이 이 길의 시작점을 알려주고 있으며 저 멀리 뽀족한 첨탑인 스파이어(The Spire)가 보인다.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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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의 수도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거리가 있다. 조선 왕조의 역사가 숨 쉬는 서울의 세종대로, 전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 맨해튼의 월스트리트,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의 도로가 방사형으로 뻗어져 있는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 구역 등등. 각 도로의 성격은 제각기 다르지만 모두 그 도시를 대표하는 거리다.

아일랜드 더블린에도 그런 곳이 있다.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이곳을 지나칠 수밖에 없는 더블린의 대표 거리, 오코넬 스트릿(O'Connell Street)이다. 서울로 치면 광화문사거리에서 경복궁까지의 세종대로 거리와 비슷한 느낌이다.

이곳은 더블린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리피(Liffey)강 북쪽에 있는 곳으로 18세기에 형성됐다. 20세기 초에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가 1920년대 이후 재정비됐다. 더블린을 대표하는 거리지만, 이곳의 도로는 고작 4차선에 불과하다. 아무리 차가 많이 다니는 곳이라도 도로의 폭보다 인도의 폭을 더 넓게 만들어 놓았다. 이것만 봐도 이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지 가늠할 수 있다.

세워진 동상들만 알아도 아일랜드 역사가 한눈에

오코넬 스트릿 중앙에 위치한 중앙우체국(GPO). 1916년, 부활절 봉기 때 이곳은 아일랜드 의용군 총사령부로 사용되었다.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던 피어스(Henry Patrick Pearse)가 이곳에서 공화국 선언문을 낭독하였던 곳으로 아일랜드 독립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건물이다.
 오코넬 스트릿 중앙에 위치한 중앙우체국(GPO). 1916년, 부활절 봉기 때 이곳은 아일랜드 의용군 총사령부로 사용되었다.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던 피어스(Henry Patrick Pearse)가 이곳에서 공화국 선언문을 낭독하였던 곳으로 아일랜드 독립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건물이다.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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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넬 스트릿은 아일랜드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곳이다. 바로 다니엘 오코넬 동상으로 시작해 파넬, 존 그레이 경, 오브라이언, 라킨 등 아일랜드의 독립 및 교육에 큰 이바지를 했던 인사들의 동상이 도로 중앙에 줄지어 있다. 이곳에서는 아일랜드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오코넬 스트릿이 시작하는 입구에는 이 거리 이름의 주인공이자 아이리시 민족주의자들의 리더였던 다니엘 오코넬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그는 1775년 아일랜드 남부 케리 지역 카헐시빈이라는 작은 마을 출신으로 19세기 가톨릭 해방을 이루어 냈고, 아일랜드 자치를 위해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오코넬은 20세기에 통용됐던 화폐에도 등장하는데, 오늘날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 상점, 식당 등을 아일랜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코넬 스트릿의 가장 북쪽 끝에는 독립운동가인 파넬(1846~1891)이 한쪽 손을 들어 올린 채 서 있다. 아일랜드의 민족 운동가였던 파넬은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한 후 영국 하원 의원으로 있으면서 아일랜드의 권리 옹호에 힘썼고, 아일랜드 토지를 영국 지주들의 손에서 되찾아내는 운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오코넬 스트릿의 북쪽 끝에 세워진 파넬경의 동상.
 오코넬 스트릿의 북쪽 끝에 세워진 파넬경의 동상.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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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넬 스트릿의 동상 사이에는 멀리서 봐도 한눈에 보이는 뾰족한 첨탑이 하나 서 있다. 바로 더 스파이어 첨탑으로 아일랜드의 12년간 고속 성장과, 아이리시들의 식민 지배국이었던 영국인의 국민 소득을 추월한 기념으로 120미터 높이로 세워진 탑이다.

원래 그 자리에는 영국의 국민 영웅인 '넬슨 제독'의 동상이 있었다. 당시 상인들은 그 동상을 향해 "교통 체증을 불러일으킨다"고 했고, 애국자들은 "영국의 식민지를 상기 시킨다"고 비판했다. 시인 예이츠는 "전혀 아름답지 못하다"며 시인답지 않은 주관적인 평가로 그 동상을 비난했다.

결국 넬슨 동상은 1966년 전직 IRA(아일랜드공화국군) 멤버들의 부활절 봉기 50주년 기념 테러로 산산조각이 난다. 그곳에는 한동안 아무것도 세워져 있지 않다가 1990년부터 더블린 정부가 오코넬 스트릿의 대대적인 정비를 시작하면서 국제적 공모를 통해 2002년에 영국 건축가 이안 리치(Ian Ritchie Architect)가 '스파이어 첨탑'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넬슨 동상을 폭파한 단체와 선정된 건축가의 약자가 모두 'IRA'라는 것. 영국 식민지의 상징이라 파괴했지만, 그 자리에 다시 영국 건축가가 첨탑을 설계했다는 사실도 아이러니하다.

오코넬 스트릿의 모습. 더블린은 지하철 대신 지상전철이 다닌다.
 오코넬 스트릿의 모습. 더블린은 지하철 대신 지상전철이 다닌다.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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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 솟아오른 첨탑처럼 고속 성장한 아일랜드

120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는 첨탑의 콘셉트는 '우아하고 역동적인 간결함을 미술과 기술의 결합으로 승화하자'는 것이었고, 기술적으로는 500년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단다. 하부의 지름은 3미터지만 가장 높고, 좁은 원추 꼭짓점은 15센티밖에 되지 않는다. 더블린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최첨단 공법을 사용하여 끝 부분은 좌우로 1.5미터 가량은 흔들리게 돼 있다.

더블린의 바람 세기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첨탑이 그저 높게 설계된 건축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파이어 첨탑은 외형적으로는 건축가 이안 리치가 추구했던 '간결함'에 상당히 충실한 작품이며, 기술적으로는 21세기에 걸맞게 설계된 작품이다. 얼핏 보기에는 단순한 첨탑이지만 스파이어 첨탑의 상징성은 아일랜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코넬 스트릿. 500미터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길이지만 그곳에는 아일랜드의 작은 역사와 치열함이 숨어 있다. 우리와 비슷하지만, 더 오랫동안 식민지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 그리고 지금은 지배국이었던 영국의 국민 소득을 추월해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나라, 아일랜드. 한 때는 'White Negro(하얀 깜둥이)'로 멸시당했지만, 이제는 유럽연합(EU),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그리고 국제 연합(UN)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그들의 목소리를 세계에 높이고 있다.

더블린의 상징이자 아일랜드의 12년간 고속성장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스파이어 첨탑(The Spire)
 더블린의 상징이자 아일랜드의 12년간 고속성장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스파이어 첨탑(The S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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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아일랜드, #더블린, #오코넬스트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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