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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노동을 하며, 건강한 일터에서 일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사용자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건강한 일터를 훼손하려 하고, 노동자는 점점 더 나빠진 일터에서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기,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노동자들의 변호사들인데요. 이들 변호사가 직접 쓰는 '우리 사회에 영향을 끼친 노동법 판례'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노동자는 노동 3권을 가진다.'

형법 제 33조는 이처럼 노동 3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그것이 온전히 보장된다고 말하기 어렵다. 아니 오히려 헌법의 노동3권을 장식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법제도와 구조적인 현실이 많이 존재한다.

▲ 노조활동 및 쟁의행위를 제한하는 하위 법률인 노동 관계 법령의 많은 규정 ▲ 법령에 대한 최종 해석권을 가진 대법원이 고집하고 있는 파업권을 제한하는 많은 판례들 ▲ 현장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고용노동부의 행정 해석과 편향적인 법집행 ▲ 노동조합을 잠재적인 범죄 집단으로 바라보는 경찰기구 및 검찰 공안부와 같은 통제기구 ▲ 노동조합을 불온시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과 언론 환경 ▲ 10% 정도에 불과한 한국의 낮은 노조조직률(고용노동부 2013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 OECD 국가들 중 터키를 제외하고 가장 낮은 수준) 등이 그것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3권에서조차 배제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국사회 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게 우리의 노동 현실이다.

'파업'만 하면 불법이라고 하는 이유

'파업' 하면 흔히 '불법'을 떠올린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접하는 파업은 모두 불법파업이기 때문이다. 파업 이후에도 '파업 주동자들이 업무방해죄로 구속되었다'거나, '참가자들이 수십 억, 수백 억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다'거나 수십 명 심지어 철도공사 같은 사업장에서는 몇 백명이 한꺼번에 해고 되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업무방해죄 적용이 '원님재판'이 되어가고 있다는 현실은 지난번에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관련기사 : 대법관 마음에 안 들면 '불법파업', 이게 현실). 그러나 용케 '원님재판'을 통과해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은 피한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손해배상 가압류와 징계가 그것. 이것도 피하려면 '정당한 파업'만 하라고 법원은 노동자들에게 요구한다.

판례가 제시하는 파업 정당성 요건은 이렇다. ▲ 파업이 노조에 의해 주도되고 지도된 파업이어야 한다 ▲ 수단과 방법에서 폭력행위가 수반되지 않아야 한다 ▲ 노동위원회 사전조정절차와 조합원 재적과반수 찬성이라는 찬반투표를 거쳐야 한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해본다고 치자. 그런데 늘 문제가 되는 건 파업의 '목적'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 구조조정 반대 등 '경영권'에 관한 사항을 목적으로 파업한 경우 ▲ 해고자복직, 단협 불이행 등은 소송해야 하는 사항인데 파업한 경우(권리분쟁에 관한 사항으로 불법) ▲ '사용자의 처분 권한이 없는 사항'을 목적으로 노동법 개정 등 정치파업한 경우는 '정당성이 없고 위법하다'고 보았다.

파업은 노동자들에게도 힘들고 고단한 일이다. 노동자들은 할 수밖에 없거나 해야 할 때 파업을 한다.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와 같이 노동자들이 생존의 벼랑에 내몰릴 때 파업을 하는 것인데, 법원은 이를 불법이라고 한다.

요즘 정부가 정규직 해고제한 조항을 완화하겠다는 등 말이 많은데, '해고제한' 조항은 노동법의 모두이고 전부라 할 만큼 핵심 조항이다. 이를 개악한다면 파업을 할 수밖에 없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정치파업'이니 곧 불법이라는 것이다. 파업을 할 만한 사항은 모조리 '목적'이 불법이라고 하니 어쩌란 것인지.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09~2013년) 노동쟁의 건수는 연평균 89.8건 정도이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12년 시점의 노조 수는 5177개다. 그러나 이 수치는 금속노조와 같이 수백 개의 사업장으로 이루어진 산별노조도 한 개 노조라 보았기 때문에 노조가 있는 사업장(기업) 수는 어림잡아 9000여 개 정도 되리라 본다. 소수의 사업장에서만 파업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파업이 많은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무효소송이 원심판결파기환송 선고가 난 1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한 조합원이 뿌린 정리해고자 이름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 바닥에 떨어진 정리해고자 이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무효소송이 원심판결파기환송 선고가 난 1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한 조합원이 뿌린 정리해고자 이름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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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파업은 '목적이 불법'이라고 해버리니, 파업은 늘 '불법파업'이란 멍에를 쓰게 된다.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 반대 파업도 그러했고 2009년 철도노조 파업도 공기업 선진화 정책이라는 정부정책을 반대했다는 것을 주요 문제로 삼았다.

아래 가스공사노조 파업 사건을 다룬 대법원 판결(2003. 7. 22. 선고 2002도7225)을 보면, 파업권을 제한하려는 그 속내가 잘 드러난다.
 
"경영권과 노동3권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기업의 경제상의 창의와 투자의욕을 훼손시키지 않고 오히려 이를 증진시키며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기업이 쇠퇴하고 투자가 줄어들면 근로의 기회가 감소되고 실업이 증가하게 되는 반면, 기업이 잘 되고 새로운 투자가 일어나면 근로자의 지위도 향상되고 새로운 고용도 창출되어 결과적으로 기업과 근로자가 다 함께 승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적이 불법이라고 하면) 근로자들의 노동3권이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과도기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고 투자가 일어나면 더 많은 고용이 창출되고 근로자의 지위가 향상될 수 있으므로 거시적으로 보면 이러한 해석이 오히려 전체 근로자들에게 이익이 되고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는 길이 된다."

반면 2009년 철도노조 파업 사건에 대한 대전지방법원 2010고단1581 판결은 대법원의 이런 논리를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근로자들의 노동3권을 제약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이 회복되고 투자가 살아나며 더 많은 고용이 창출된다는 논리는 하나의 공리로서 확립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 논란이 되는 많은 경제이론의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이에 대한 비판이론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이러한 논리는 치밀한 학리적 검증없이 법해석자가 인용할 수 있는 법적 논거라고 볼 수 없다. … 법해석자는 경제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경제 상황과 경제 원리를 법해석의 논거로 채용하는 데에는 최대한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노동법 개정 문제나 정부의 노동, 경제정책 등에 대한 정치 파업을 보자. 오늘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나, 사회적 경제적 지위 개선 문제는 사업장 내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보다 입법이나 정부 정책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훨씬 많다. 법인세 인상 등의 조세개혁, 노동시간 단축과 좋은 일자리 정책요구, 비정규직 보호입법 요구하는 파업이 그렇다.

그런데도 사업장을 벗어나 노동자들이 연대해 하는 정치파업이나, 타 사업장에 대한 연대파업은 모두 '해당 사업장의 사용자가 처분할 수 없는 사항'을 목적으로 하였으므로 불법이라고 한다. 이처럼 정부의 경제정책과 법과 제도들이 노동자에게는 불리하고 사용자들에겐 유리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본은 국가 정책으로 이익을 얻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정치파업으로 일부 손해를 입는다 하더라도 반드시 부당한 것만은 아니다. 더구나 경제정책이나 법제도로 인해 자본이 얻는 이익은 매우 지속적인 데다가 산술적으로도 엄청나게 크다.

노사간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고 지속적으로 발생·명멸하는 이해관계의 대립을 대등한 노사관계를 기본으로 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하기 위해서도 정치파업의 정당성은 긍정되어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 전문가위원회는 정부가 채택한 정책이 근로자나 사용자에게 즉각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근로자의 사회·경제적 및 직업적 이해관계를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단결체는 중요한 사회적·경제적 정책 경향에 의해 야기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데 있어 자신들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파업 행위에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ILO, Freedom of association and collective bargaining, 81st Session, Report Ⅲ, 1994, para. 165)"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주체, 절차, 목적, 수단과 방법 등 정당성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여전히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의 대상이 되고 해고 등 징계책임을 지게 된다.

파업권 옥죄는 법원, 기업만 살판 난다

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쌍용자동차파업2000일 노동자호소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대법, 판결, 공정, 호소" 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쌍용자동차파업2000일 노동자호소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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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노동법이 처음 제정된 이후 법률은 부침을 거듭해 왔다. 그런데 노사관계의 법제도는 노동 3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노동조합의 활동을 불온시하면서 이를 국가의 형사처벌 위협 아래 두고 있다. 노동조합의 단결권을 금압하던 시기의 제도가 여전히 존속하고 있는 것이 한국 노사관계 법제도의 현실이다.

노동 3권은 견고한 자본의 힘과 국가의 통제 아래 거의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노동자들의 단결과 고통어린 투쟁을 통해서만 법과 제도가 힘겹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노동자의 절반 가량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법률이 명문규정으로 노동3권을 박탈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다른 제도적 요인으로 노동3권에서 배제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가장 핵심적인 권리인 파업권은 집중적으로 제한이 가해지고 있다. 특히 정치파업이나 구조조정 등에 저항하는 노동자 파업은 원천적으로 '불법'으로 규정되고 있다.

파업이 불법화되면 자본은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 해고 등 징계, 가처분제도로 위협하고, 직장폐쇄, 용역깡패 투입, 부당노동행위를 십분활용하여 민주노조를 사업장 내에서 쉽게 배제시킬 수 있다. 자연히 노동자들의 저항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노조가 존재하지 않는 노동현장, 노조는 있지만 노동 3권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노동현장에서는 자본의 권력만이 작동하기 마련이다. 노동자의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되기 어렵다. 노동 3권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만 의미있는 게 아니라, 노동자가 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는 버팀목으로써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기에 중요하다.

헌법이 규정한 노동3권이 온전히 보장되기 위해서는 우선 절반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기간제 사용 사유를 제한하여 기간제노동자 남용을 막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며, 원청사업주의 사용자책임,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자성 확대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파업권을 옥죄는 법원의 판례는 변경되어야 하는데, 현재 판례의 변경을 기대하기는 난망한 일이다. 그러므로 파업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형사면책, 민사면책 조항이 입법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또 노동3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한 엄격한 규제법령과 이를 집행하는 독립적인 노동감독기구가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권두섭씨는 변호사로, 민주노총 법률원 원장입니다.



태그:#노동법, #노동3권, #파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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