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영화의 묘미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전장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다. 실감 나는 전투 장면은 때로 전쟁을 멋진 것으로 미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실상의 참혹함을 관객이 응시하도록 만든다. 두 번째는 영화가 주는 '메시지'라고 하겠다. 많은 전쟁 영화가 민족주의와 국가의 자기 정당화 도구로 전락하기도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대체로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주로 보여주기도 한다.

지난 11월 20일 개봉한 영화 <퓨리>는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던 시대, 독일을 배경으로 한 전투가 주로 등장한다. '전차 부대'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독일군의 일화도 등장한다. '티거'라는 독일의 전차에 연합군의 전차들이 압도적으로 희생됐다는 것.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퓨리>는 가상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2차 세계대전의 독일을 강타하는 '퓨리'

 영화 <퓨리>의 한 장면. 리더 '워 대디(브래드 피트)'는 연합군의 전차부대를 이끌고 2차 대전의 독일에서 나치군과 싸운다.

영화 <퓨리>의 한 장면. 리더 '워 대디(브래드 피트)'는 연합군의 전차부대를 이끌고 2차 대전의 독일에서 나치군과 싸운다.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주인공 '워대디(브래드 피트)'가 이끄는 연합군의 전차부대는 뛰어난 전투 실력으로 명성이 높다. 전략을 수립한 뒤 용맹하게 앞으로 전진하는 그들은 부대의 희망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초반부터 '자부심'으로 무장한 그들의 모습이 아닌, 다른 면을 비추면서 시작된다.

<퓨리>의 오프닝은 전투를 막 끝낸 전차부대의 풍경을 보여준다. 희생자가 야전 병원으로 후송되고, 시체는 트럭에 가득 태운 뒤 구덩이에 쏟아 붓는다. 주인공의 전차 안에서도 피비린내가 가득하다. 모두가 전투에 지쳤고, 계속된 살상 행위에 극도로 예민해졌다.

'나는 독일에 충성하지 않았습니다'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광장에 주검으로 매달린 아이들의 모습은 전쟁의 잔혹함을 가장 처절하게 드러낸다. 그럼에도 고개를 돌려 외면하거나 기다릴 여유는 없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의 심장부에 다다른 만큼,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나치군을 죽여야만 한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연합군에겐 다른 선택이 없다. 등장 인물들은 관성처럼 계속 앞으로, 또 앞으로 전진하면서 계속 전투에 나선다.

'워대디'의 전차, 퓨리에 신병이 새롭게 배치되면서 줄거리는 흘러간다. 훈련소를 막 나온 듯 보이는 앳된 모습의 노먼(로건 레먼)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로를 죽이는 동료 부대원들의 태도에 질겁한다. 반대로 이상적인 인류의 모습을 읊으면서 살인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노먼을 바라보며 동료들은 비웃음을 쏟고, '너 때문에 우리 다 죽을 수도 있다'며 분노한다.

이 와중에 리더인 워대디는 조용히 신참을 다독인다. 적극적으로 그를 대변하지도 않고, 죽기 싫다면 정신차려서 전투에 참여하라고 다그치기도 한다. 하지만 막 전장에 발을 디딘 신참을,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바라보듯 걱정스러운 눈길로 주시한다.

2차 세계대전의 독일에서, 종전을 위해 점점 더 중심으로 향하는 '퓨리'와 연합군 전차부대. 그럴수록 독일의 저항은 더욱 거세지고, 희생자는 늘어만 간다. 과연 이들은 무사히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모두 놓치다

 영화 <퓨리>의 한 장면. 주연배우 브래드 피트는 이 영화로 '리더'이자 젊은 세대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기성세대' 이미지를 구축했다.

영화 <퓨리>의 한 장면. 주연배우 브래드 피트는 이 영화로 '리더'이자 젊은 세대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기성세대' 이미지를 구축했다.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영화 <퓨리>는 사실적인 전투 장면 묘사가 돋보인다. 독일 전차와 맞붙는 연합군 전차의 전투는 빠르지 않은 듯하면서도 긴박감을 자아낸다. 무엇보다도 '전차 액션'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이 많은 오늘날 현실에서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소재로 와 닿는다.

반면 줄거리가 진행되는 동안 메시지가 다소 흐릿해지는 것이 아쉽다. 전반부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비춘 장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전투에 임하는 주인공의 용맹함을 부각하느라 잊힌다. 전투 장면의 '독특함'을 살려내는 일이 성공적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영화는 대부분 전투 장면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집중하는데, 그 방식은 <퓨리>만이 아니라 다른 전쟁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 비슷한 양식의 플롯이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퓨리>는 전쟁 영화로서 액션과 메시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모두 놓친 셈이다. 굳이 비교를 하고 싶진 않지만, 이런 점에서 두 토끼를 모두 잡았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떠올라 아쉽다. 차라리 <퓨리>가 첫 장면부터 '전차 액션'을 핵심 요소로 들고 나온 것을 마지막까지 뚝심있게 밀고 나갔다면 어땠을까. 영화 <U-571>의 잠수함 액션이 전설로 남은 것을 떠올려 보면 그렇다.

이 영화로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한 가지는, 브래드 피트라는 배우의 매력이다. 그는 그가 거쳐온 각 시대와 나이에 어울리는 매력을 쌓아가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꽃미남, 혹은 반항기 넘치는 청년 이미지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워대디'라는 배역의 이름에 걸맞게, 전장에 우두커니 서서 젊은 세대들의 곁을 지키고 안쓰러운 듯 바라보며 앞장선다. 한 배우의 매력이 이렇게 깊어지고, 또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을 보는 것은 영화 팬으로서 누릴 수 있는 기쁨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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