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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집 현이네가 새집을 지었다. 헌집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나는 공사소음 속에서 몇 달을 지내야 했다. 전기톱에 잘린 통나무처럼 떨거나, 쇠망치로 두들겨 맞는 못대가리처럼 깜짝깜짝 놀라며. 

비로소 공사가 막바지에 들어섰다. 며칠 전 차양 설치를 끝내고 마당 정리를 시작했다. 현이네 살림살이도 완전히 옮겨왔다. 현이는 4년 전에 헌집을 구해 놓고 도시에서 왔다 갔다 했다. 그 사이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다. 현이는 이제 자급자족하는 삶을 꿈꾸며 농사지을 땅을 찾고 있다.

어릴 적 땅따먹기 하나는 제일 잘 했는데...

 뒤꼍 축대 공사 장면. 공간이 좁아 난공사였다.
 뒤꼍 축대 공사 장면. 공간이 좁아 난공사였다.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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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작업을 끝으로 전기톱 소리가 멈췄다. 세상 고요하다. 곧, 후드득 후드득 빗소리가 들려왔다. 아침부터 날이 끄무레하더니. 겨울 빗소리가 천지간 적막하다. 유리문을 통해 툇마루 밖으로 시선을 뺐다. 마당 건너 뿌예진 지리산 산자락. 순식간에 여름 폭우처럼 기세를 불린 빗줄기가 남은 형상을 마저 지웠다. 나는 그만, 배 깔고 누워있던 구들방 아랫목에서 일어났다. 읽고 있던 책을 밀쳐 놓고.

밖으로 나가 우산을 펼쳐들었다. 지붕의 물받이나 집 주변 물도랑을 요리조리 살펴볼 참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늘 하는 순찰이다.

지붕 북쪽 끝 홈통 하나가 물 빠짐이 시원찮았다. 구멍이 막혔나. 지붕 옆 시멘트블록 창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손바닥만한 스티로폼이 물받이 구멍 위에 떠있는 게 보였다. 윗집에서 공사 중에 날아온 게다.

창고 옥상에서 한 발 훌쩍 뛰면, 현이네 마당이다. 현이랑 나는 종종 거기로 왕래했다. 가파른 지형에 계단식으로 앉혀진 집들이라 축대가, 말하자면 담이었다. 그렇게 가깝고 높은 축대가 두 집의 경계였다. 그 경계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어쩌다 보니 내가 현이네 땅을 몇 평 거저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궁여지책으로나마 어떻게 해결되긴 했지만.

초등학교 시절의 '땅 따먹기'가 기억난다. 나는 그 놀이에서 독보적인 능력자였다. 내 손이 또래 아이들의 손보다 크고 길었다. '뼘 재먹기'에서 아주 유리했다. 손가락으로 사금파리를 퉁기는 기술도 뛰어났다. 항상 이겼다. 나는 '땅 부자'였다.  

동갑내기 친구 영숙이가 '은경아, 땅따먹기 하자!' 자주 불러냈다. 나름 비장한 표정으로. 질 때마다 부당하게 당한 양 분해하면서도.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나,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서 나올 법한 반전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영숙이가 진짜 '땅 부자'가 되어 나타난 거였다. 나는 그때 코딱지만한 땅도 없었다. 영숙이는 십수 년 만에 만난 자리에서, 내 손을 끌어가더니 유심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내 기억이 맞네. 남자 손처럼 여전히 크구나!"

영숙이는 크고 빈 내 손을 확인하며,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설마 '땅따먹기' 때문이었겠나, 싶으면서도 영숙이의 '땅 사랑'이 의외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땅 사랑'에 깊이 빠진 사람들이 쌔고 쌘 세상이니. 땅이 곧 돈이고, 돈이 장땡인 세상이니. 

후드득 후드득, 빗소리가 상념을 깼다. 나는 얼른 옥상 바닥에서 장대를 찾아 들었다. 물받이 구멍을 막고 있던 스티로폼을 장대 끝으로 살살 밀어 떨어트렸다. 고여 있던 빗물이 홈통으로 쿨럭쿨럭 빠져 내려갔다.

그 작업 중에 우산을 허투루 들고 있었나. 머리랑 얼굴이 좀 젖었다. 빗물이 찼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집으로 가는 천은사 앞길, 통행 제지를 받다

문득, 지난 8월 초에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여름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이었다. 그 날 오전, 전주에 사는 친구 은희씨가 모처럼 놀러와 그녀의 차를 타고 외출을 했었다. 마을 아래 861번 지방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달렸다. 구불구불 지리산 성삼재를 넘어갔다. 구례에서 볼 일을 보고, 같은 길로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리산 천은사 앞 도로에서 불법 입장료 받는 장면
 지리산 천은사 앞 도로에서 불법 입장료 받는 장면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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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천은사 앞 길에서 개인당 1600원씩 '통행세'를 내고 받은 티켓.
 지리산 천은사 앞 길에서 개인당 1600원씩 '통행세'를 내고 받은 티켓.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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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길 속, 성삼재 오르는 길에 통행 제지를 받았다. 천은사 앞길이었다. 절에서 일종의 '통행세'를 받는 곳이었다. 지리산에서 악명 높은 곳이다. 천은사와 몇백 미터 떨어진 도로에서 노고단으로 가는 등산객들에게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라는 명분으로 절에서 돈을 강제징수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그런 불법 행위에 적선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내가 차 창문을 내리고 말했다.

"우리는 집에 가는 길입니다."
"그래도 돈 내야 합니다."
"우리는 천은사를 관람할 생각이 없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관람료를 내야만, 도로를 통행할 수 있게 하는 건 불법이라고, 시민들이 집단소송을 해 작년에 대법원에서 확정 났잖아요?"
"그래도 이 도로는 사유지라 돈을 내야 합니다."
"국도인데요. 돈을 내라고요? 우리는 못내요. 그냥 가겠습니다. 은희씨, 출발해요."

은희씨가 조심스럽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때 차 앞으로 건장한 남자 세 명이 뛰어들었다.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워야 했다. 제일 앞 쪽에서 막아서던 남자가 고함을 질렀다.

"당신들, 차로 사람 치었어!"

평소 조용하다가도 이런 상황에서는 한 목소리 하고 마는 내 성정에 결국 불이 지펴지고 말았다. 목소리 큰 거로 치자면, 나도 만만찮다. 차창을 활짝 내렸다. 빗발이 차 안으로 들이쳤다.

"이게 무슨 억집니까? 협박하는 겁니까? 아저씨가 뛰어들었잖아요! 그리고 차가 아저씨 다리에 닿기나 했어요?"
"치였다니까! CCTV로 다 찍혔어요! 저기, CCTV 보이죠?"

산적 같은 남자 둘은 차 앞에서 떡 버티고 있고, 무지막지 고함은 날아오고, 분위기가 살벌했다. 그렇다고 내가 기죽을 사람인가. 마음 여린 은희씨는 입을 꼭 다문 채 떨고 있었다.

"그래요? 교통사고를 냈다는 말이죠? CCTV 봅시다! 사고 처리하려면 경찰을 불러야겠죠? 그냥 가면 뺑소니잖아요. 신고하세요!"

내 대거리에 맞서 남자는 더 펄펄 뛰며 악만 썼다. 차창 유리를 올리고 내가 112에 전화를 걸었다. 남자는 내가 앉아 있는 조수석 차창을 손바닥으로 부서져라 수차례 내리쳤다. 그러더니 은희씨가 앉아 있는 운전석 쪽으로 달려가 차문을 확 열어 제꼈다. "당신들 사람 차로 쳐놓고 이러고 있어? 내려요!" 소리쳤다. 비가 많이 오니 차 안에서 경찰을 기다리겠다고 내가 말했다. '이 차 블랙박스 있습니다.' 은희씨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가 주춤하더니 문을 꽝 닫고 물러섰다.

경찰이 왔다. 남자는 경찰 앞에서 차에 치었다는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어쨌든 경찰이 중재에 나섰다. 이상한 중재였다. 헌법이 보장한 통행의 자유는 씨도 안 먹혔다.

'돈을 안 내면 이 길은 못 지나간다. 다른 길로 돌아서 가든가, 방법 없다. 이 문제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74명만 내지 않아도 된다. 공원문화유산법에 의해 그렇다. 정 억울하면 2차 소송단을 모집하고 있다니, 돈 내고 영수증 받아서 소송해라.'

우리는 결국, 1600원씩 돈을 내고 나서야 통과했다. 은희씨가 조심조심 산중 빗길 운전을 하며 말했다. 그런 공포 분위기는 살며 처음이었다고, 얼마나 무서웠던지 울 뻔했다고, 숨쉬기도 힘들었다고. 지금도 떨린다고. 나야 그런 상황에서 겁 따위 집어먹을 사람이 아니지만.  

집에 도착해 소송단을 모집하고 있는 서희원 변호사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그곳에선 다른 얘기를 했다.

'불법이다. 누구한테도 받을 수 없다. 천은사는 자연공원법 제37조 2항에 의거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를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지리산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불허했다. 그러나 소송이 민사재판이었기에 돈을 계속 징수해도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 조계종에서 그걸 알고 그러는 거다.'

전두환 정권 당시 천은사의 사유부지에 861번 지방도로가 뚫렸다. 그때 합당한 보상금을 받지 못했다고 조계종은 주장한다. '내 땅'이란다. 억울하단다. 그런데 하루 통행인이 수백, 수천 명인 길에서 30여 년 통행세를 받았는데, 충분하지 않았나? 차라리 사찰에서 그 땅을 국립공원관리공단에 기부할 수는 없는 걸까? 무소유의 숭고함을 설파하는 종교의 진짜 속성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의 동화 같은 생각일까?

'이 대지는 태양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원래 경계선 같은 것은 없었다… 나는 땅이 내 것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다고 말한 적이 없다.'

아메리칸 인디언 조셉 추장의 말을 이 대목에서 들이댄다면, 그것도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의 헛소리라 할까?   

어쨌든 은희씨와 나는 그날 당장 소송단에 가입했다. 땅이 곧 돈이고, 돈이 장땡인 세상에서 살기가 참 팍팍하고 고단하다(현재 2차 시민소송단 106명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조계종에서는 변호사를 세워 '빡세게' 맞서고 있다).

골칫덩이 축대 문제 해결에 나서다

 윗집에서 축대공사를 새로 하기 전의 내 집 뒤꼍 축대 모습
 윗집에서 축대공사를 새로 하기 전의 내 집 뒤꼍 축대 모습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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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집에서 내려다본 정리된 뒤꼍
 윗집에서 내려다본 정리된 뒤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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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발이 더 굵어졌다. 옥상에서 내려와 호미를 들고 뒤꼍으로 갔다. 우산을 한 손으로 받쳐 든 채 쭈그리고 앉았다. 도랑에 떨어진 돌멩이를 치웠다. 도랑 안을 호미로 살살 긁어 물길을 시원하게 터주었다. 그리고는 축대 밑으로 뒤꼍을 한 바퀴 돌았다.

윗집 아랫집을 가르는 축대는, 현이네가 새로 쌓은 축대였다. 허물어져 내리던 축대를 아예 헐어내고. 내가 이 농가주택으로 이사를 왔던 3년 전, 그 해 늦가을의 공사였다. 포클레인이 4일 동안 마천석으로 단단히 다져 올렸다. 윗집, 아랫집 건물 사이 비좁은 틈에다 높이 3미터, 길이 20여 미터의 헌 축대를 들어내고, 새 축대를 들이는 건 어려운 공사였다.

공사가 끝나고 현이네는 울상이 됐다. 난공사 끝에 축대 위치가 원래 자리에서 조금 위로 올라간 것이었다. 현이네 90여 평 좁은 대지가 이래저래 축대에 먹혀 더 위축됐다. 새집을 지으려면 한 뼘 땅이 아쉬운 판이었는데. 현이는 속상한 속내를 보이며, 축대공사를 다시 해야 하나 어쩌나 툴툴댔다.

반면, 좁고 음습했던 내 집 뒤꼍은 훤해지고 넓어졌다. 흘러내린 돌덩어리들에 막혀 있던 도랑도 널찍이 뚫렸다. 나는 축대 앞에 생긴 자투리땅에 돌을 쌓고 화단을 만들었다. 위에서 보면 눈꼴시게 시리.

어쨌든 '땅따먹기'에서 눈속임으로 '땅 부자'가 된 것처럼 내 속이 당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돌려줄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당시, 그렇게 며칠 속앓이를 하며 고민 끝에 측량 기사를 불렀다. 없는 돈 축내 경계측량을 하고 말았다. 땡빚을 내서라도 보상을 하든지 사든지, 땅을 재서 '틀림없게' 그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었다.

 경계측량을 했다.
 경계측량을 했다.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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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 현이네 땅이 몇 평 내려와 있었다. 그런데 150여 평의 내 땅 경계측량 때문에 혼자 사시는 옆집 할머니가 사색이 되셨다. 측량기사가 할머니네 마당과 기와지붕 위에 빨간색 경계표시 마크를 땅땅 찍어 놨으니. 불똥이 애먼 쪽으로 튄 짝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우리 땅인지 알았지. 시방, 그 집에 주인이 몇 번 바꿨어도, 측량이니 뭐시니 땅 따진 사람은 읎었는디, 나도 평생 그런 거 모르고 살았고… 으짠댜, 으짠댜."
"할머니, 걱정 마시고 그냥 사세요. 아드님이 퇴직하고 내려오시면 집 헐어내고, 새로 집 짓는다면서요. 그때까지 그냥 사시면 돼요."
"그래도, 시방, 미안혀서 미안혀서 으짠댜…."
"괜찮아요. 미안해하지 마시고…."

내가 며칠을 달랜 끝에 할머니 마음이 가라앉으셨다. 귀촌, 귀농한 사람들이 경계측량을 했다가 현지인들과 마찰을 빚게 되어, 험한 상황을 연출하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데.

 마을에서 현지인과 귀촌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던 땅의 경계표시
 마을에서 현지인과 귀촌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던 땅의 경계표시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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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 동네에서 두어 번 그런 경우를 목격했다. 경찰이 출동할 정도로 큰 싸움이 붙기도 했다. '내 땅이니 니 땅이니', 몇 평 땅이 '이웃원수'를 만들었다. 다행히 내 옆집 할머니는 경우 바른 분이시라, 서로 좋게 좋게 다독여졌지만.   

그런데 현이는 땅을 내게 파는 것도 뭣도, 다 거절했다. 집을 새로 지을 때, 다른 방법을 궁리해 보겠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냥 3년이 흘러갔다. 그동안 축대 앞 화단에선 도라지꽃, 딸기꽃, 국화꽃이 번질나게 피고 졌다. 인동덩굴이 축대를 타고 파랗게 퍼졌다.

 윗집에서 축대 앞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설치한 모습. 아랫집으로 내려간 땅을 그렇게나마 보충...
 윗집에서 축대 앞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설치한 모습. 아랫집으로 내려간 땅을 그렇게나마 보충...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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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그 축대(경계) 문제가 해결됐다. 궁여지책으로나마. 집을 새로 지으면서 현이는 축대를 부수고 새로 쌓을까, 콘크리트 옹벽을 덧댈까…. 갈팡질팡 했다. 다 만만치 않은 공사였다. 현장상황이며 공사비용이며.

"테라스처럼 축대 끝으로 구조물을 빼 설치하면 어떨까? 가능하겠지?" 
"아, 누나 그러면 되겠네! 누나도 보다시피 너무 좁잖아요. 그렇게라도 할 수 밖에 없겠어요."

결국, 현이가 내 제의를 받아들여 공사가 이뤄졌다. 프레임을 축대 끝 공중으로 쭉 빼 설치하고 고정 시켰다. 콘크리트를 치고 그 끝에 난간을 세웠다. 좁아터졌던 현이네 마당이 한 발짝 넓어졌다. 미관상으론 좋지 않지만,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렇게라도 현이의 속상했던 마음이 달래졌다면 다행이고.

세차게 내리치던 빗발이 가늘어졌다. 오래 쏟아질 겨울비는 아니었다. 나는 잠시 프레임이 공중으로 뻗어 나온 축대 끝을 올려다보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빗소리만이 가득한 천지간 고요가, 평화롭고 적막한 오후이다.


태그:#땅, #이웃,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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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귀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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