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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채 피지도 못한 꽃들을 무참히 시들게 했다. 대전의 모 여고 학생은 서울의 명문대 수시 1차에 합격해 놓고도 수능을 망쳤다며 부산 해운대 바닷물에 몸을 던졌고, 울산에서는 수험생이 성적을 비관해 자신의 방에서 목을 맸다. 성적표가 나오기 바로 전날인 2일에도 대전의 한 남학생이 어느 건물 1층 화장실 안에서 목을 맸다. 벌써 다섯이다.

그렇게 목숨을 버린 아이들 소식은 '수능 오류'에 밀려 희미해지더니, 이제는 '수능만점자'라는 검색어에 가려 까마득히 잊히고 말았다. 참 무서운 세상이다. 생명과학Ⅱ와 영어 과목 복수정답 여부가, 수능 만점자를 네 명이나 배출한 학교의 이름이 우리 아이들 생명보다 더 중하단 말인가.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매일 한 명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하는데... 해마다 세월호보다 더 큰 배가 한 척씩 침몰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수능 문항 오류가 나올 때마다 누군가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다. 하지만 그가 벗은 옷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졌고,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수능 출제 시스템의 개편을 주문하였고, 최근 수능개선위원회라는 게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뭐가 달라질까? 살인적 입시경쟁 시스템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수능을 '개선'한다고 해서 죽어간 아이들이 살아올 리 만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은 또 생겨날 수밖에 없다. 

수능 문항을 '개선'한다고 해서 살인적 입시가 사라지는가?

수능개선위원회는 출제위원 중 현직교사 비율 높이기, EBS 연계 비중 낮추기, 폐쇄형 합숙 출제를 문제은행 형태로 바꾸기 등 다양한 방식의 개혁안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회전문 정책'이다. 현행 수능 시스템 안에서도 출제위원 중 현직교사 비율을 50%까지 높인 적이 있었고, EBS 연계가 전혀 없던 시절에도 틀린 문항은 발견되었으며, 평가원은 수능 출제와 더불어 문제은행 인력풀을 오래 전부터 운영해 왔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로 귀결되고 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근본을 고치려 하지 않고 변죽만 울려왔기 때문이다. '물수능'이건 '불수능'이건, 오류가 있건 없건, 아이들을 불행의 나락으로 내모는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적정 난이도의 오류 없는 수능보다 더 중요한 건, 한두 문제 더 맞히거나 틀린다고 대학 간판이 달라지는 이 잔인하고 폭력적인 현실을 바꾸는 일이다.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이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맞추지 못했다고 자살을 결심하는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인가.

비인간적 경쟁을 합리화하는 교육시스템을 뜯어고쳐야

단언컨대, 수능시험 그 자체가 오류다. 아니, 수능시험에 기대 아이들을 줄 세우고 학교를 서열화하며 학부모마저 편 가르는 대한민국 입시제도 자체가 오류다. 더 늦기 전에 공교육 시스템 전반을 수술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수능을 자격고사로 전환하고, 대학별고사(본고사)를 금지하며, 내신 성적으로만 단일화해서 입학생 선발을 하되, 졸업정원제를 실시해서 대학을 학문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국립대부터 서열화를 폐지하고 무상화하는 '진짜 개혁'을 하루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피지도 못하고 지는 꽃들이 또 생겨나기 전에.


태그:#수능 자살 학생, #대학평준화, #공교육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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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전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맘껏 놀고, 즐겁게 공부하며, 대학에 안 가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상식적인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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