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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1일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을 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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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오전 9시 55분 청와대 집현실.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 회의를 앞두고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체로 조용하게 대화하는 분위기였고, 간혹 웃음소리도 들렸다. 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이 터진 직후임을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평온했다. 

10시 1분께 자리에 앉은 박 대통령은 먼저 여야가 지난주 2015년도 예산안을 법정기한 안에 처리하기로 합의한 것을 두고 "양보와 타협이라는 의회 민주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정치 문화"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어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을 의식한 듯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비서진을 향해 무한한 신뢰를 드러냈다.

"이 자리에 계신 비서실장님과 수석 여러분들도 그동안 청와대에는 퇴근 시간도 없고 휴일도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밤낮없이 국정운영에 최선을 다해 헌신해왔다. 저는 그런 여러분을 신뢰하고, 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근무하는 공직자들도 이번 일을 계기로 직분의 무거움을 깊이 분별해서 각자 위치에서 원칙과 정도에 따라 업무를 수행해 달라"며 "누구든지 부적절한 처신이 확인될 경우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조치할 것이다"라고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청와대, '조작된 문건'이라는 정윤회의 손 들어주나? 

박 대통령이 이날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을 '청와대 내부문서를 유출한 국기문란행위'로 규정하면서 청와대에서도 강경대응에 나섰다. 이미 청와대는 지난 11월 28일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 비서관 등 8명을 통해 <세계일보> 사장과 편집국장, 사회부장, 기자 등 6명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했다. 공교롭게도 그로부터 사흘 뒤인 1일, <세계일보> 회장이 교체됐다. 

그런데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반격에 나서면서 청와대가 잠시 곤경에 처했다. 조 전 비서관은 지난 1일자 <조선일보>를 통해 정윤회씨가 지난 4월까지 이재만 비서관과 통화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정씨와 절연(絶緣)한 것처럼 얘기해온 이 비서관이 정씨의 메시지를 (나에게) 전하는 것을 보고 '도대체 이게 뭐냐'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그의 증언은 지난 7월 국회에서 "최근 10년 동안 정윤회씨를 만난 적이 없다"라는 이재만 비서관의 발언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청와대를 잠시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이에 민경욱 대변인은 예정에 없던 오후 브리핑을 열어 "정윤회씨 말대로 이재만 비서관에게 전화했지만 만남은 없었다"라며 "조응천 전 비서관은 밖에서 언론을 통해 일방적인 주장을 펼칠 것일 아니라 검찰에서 진실을 밝히는 데 협조하길 바란다"라고 반격했다. 청와대 안팎에서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제기했던 '(박지만)-조응천-박관천' 쪽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조작된 문건이다"라는 정씨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2일 브리핑에서 "정윤회의 말 그대로"라고 말했다.
▲ "정윤회씨의 말 그대로입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2일 브리핑에서 "정윤회의 말 그대로"라고 말했다.
ⓒ JTBC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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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박 대통령이 괴로운 심경을 우회적으로 토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지난 2일 대통령 직속기구인 통일준비위원회 오찬 자리에서 "성경에도 얘기돼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항상 고난이 많고, 어려움이 있고, 고민도 한다"라며 "그래서 '세상을 마치는 날이 고민이 끝나는 날이다' 이렇게 말할 정도로 어려움이 많다"라고 말했다. 이어 "식사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인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신경 쓰게 만드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라고 토로하면서 자신을 '어렵게 하는 세상'에 정면으로 맞설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런 연속선상에서 박 대통령은 정윤회씨 국정개입 통로로 지목된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을 여전히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십상시' 명단에 포함된 청와대의 한 인사는 3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문고리 3인방으로 지목된) 정호성 비서관 등은 정말 일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다"라며 "대통령이 여전히 이들을 신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박 대통령과 오랫동안 함께 일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면서 "이들이 정말 사심 없이 나라일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박 대통령에게 신뢰받는데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을 10년 넘게 봐 왔지만, 정말 사심이 눈꼽만치도 없다"라며 "그것이 오히려 단점일 정도"라고 강조했다.

이 인사는 "조응천 전 비서관은 (정윤회 감찰보고서 내용이) 60% 정도 맞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찌라시다"라며 "문제가 진짜 있다면 제대로 해명하기라도 할텐데 너무 터무니없어 말문이 막힐 뿐"이라고 토로했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제기하는 '십상시 국정개입 의혹'에도 "실체가 없다"며 "기자들마다 십상시 명단이 다른데 그것 자체가 실체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꼬집었다.

한편 검찰은 지난 1일 이재만 비서관 등 고소인 8명의 변호사를 조사했고, 4일에는 '정윤회 감찰보고서'를 작성한 박관천 경정을 소환조사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임관혁)에 사건을 배당한 검찰이 '문건진위'보다는 '문건유출 과정'에 더 중점을 두고 있어서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이 제대로 드러날지 의문이다. 


태그:#박근혜, #정윤회, #조응천, #이재만, #정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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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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