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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핵발전소는 부산에 있는 고리핵발전소다. 이곳을 기준으로 반경 30km 안에 320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우리나라 핵발전소 주변 지역 중 가장 큰 규모다.

이들은 고리핵발전소에서 사고가 터지면 살던 동네를 떠나야 한다. 핵발전소 사고 현장으로부터 반경 30km를 기준으로 방사능 비상계획구역이 설정된다. 이 구역에 포함되는 사람들은 사고가 발생하면 지정된 구호소로 대피해야 한다. 국가방사능방재계획상의 조치 때문이다.

그런데 구호소의 대부분은 인근 초등학교다. 이 구호소로 대피한다고 이들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을까. 더 본질적인 의문도 있다. 과연 그렇게 엄청난 수의 사람이 한꺼번에 대피할 수나 있을까. 재난영화에 그려지고는 하는 아비규환이 겹쳐 떠오른다.

우리나라 전체를 놓고 보면 핵발전소 반경 30km에 420만여 명이 살고 있다. 월성핵발전소가 있는 경주와 포항, 울산 주변에 1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가장 적은 곳이라는 울진 주변에도 8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있다.

핵발전소 사고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어느 한 곳에서라도 사고가 터지면 극심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엄청난 규모들이다. 지난 주말 탈바꿈프로젝트에서 지은 <탈바꿈>을 인상적으로 읽었다. 등골이 서늘하다. 우리는 핵발전으로 꾸려가는 현재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활성단층 몰려 있는 영덕-경주... 안전하지 않다

<탈바꿈: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탈바꿈: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탈바꿈프로젝트 지음 / 오마이북 펴냄 / 2014.11. / 1만 6000원)
▲ <탈바꿈: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탈바꿈: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탈바꿈프로젝트 지음 / 오마이북 펴냄 / 2014.11. / 1만 6000원)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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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바꿈'은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의 첫 글자를 딴 이름이다. 탈바꿈프로젝트는 원자력발전의 위험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탈핵과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한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기획으로 시작됐다. 탈핵 운동에 나서고 있는 전문가와 활동가, 생활 속에서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는 교사와 청소년 등이 두루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책에는 핵 없는 미래 세상을 꿈꾸는 이들 21명이 쓴 글과 인포그래픽 제작팀이 손수 만든 시각 자료 20편이 실려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협하는 핵발전의 파괴적인 위험성, 방사능 먹을거리와 안전 문제들을 짚어본 후 탈핵으로 꾸려가는 미래상을 그리고 있다. 탈핵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데 길라잡이로 쓸 만하다.

2011년 일어난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방사능과 핵발전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아무리 큰 사고라도 시간이 흐르면 기억에서 사라지는 법. 사고 직후 치솟았던 관심이 수그러진 자리에 방사능과 핵발전을 둘러싼 무지와 오해, 거짓과 편견이 다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방사능은 자연 상태에도 존재하는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에너지라든가, 핵발전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식의 얘기들이 오간다. 과연 그럴까.

일본 도쿄는 2020년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2013년 9월 7일, 제125차 국제 올림픽위원회 회의에서 "모든 상황은 통제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사고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도쿄에 그 어떤 피해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저널리스트이자 반핵운동가인 히로세 다카시는 8가지의 이유를 들어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가령 도쿄 주거지역의 토양에서는 1㎡당 9만 2335Bq(베크렐)을 넘어서는 방사능이 검출됐다고 한다. 이는 1986년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체르노빌 핵발전소 4호기 주변 토양의 방사능 검출량에 맞먹는 수치다.

핵발전의 위험성은 이웃나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2년 소방방재청이 발표한 지진 위험 지도를 보면 우리나라의 영덕-경주 일대는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한반도에서 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가장 높다. 지진 발생의 원인이 되는 활성단층(움직임이 있는 단층)이 이 지역에 몰려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 건설, 가동, 계획 중인 핵발전소가 집중되어 있습니다. 영덕은 신규 핵발전소 부지로 지정·고시됐고 경주시에는 월성 핵발전소 4기와 신월성 핵발전소 2기(1기 가동 중, 1기 건설 중)가 있습니다. 그 밑에 있는 울산광역시에는 신고리 핵발전소 6기가 건설 또는 건설 계획 중입니다. 울산광역시와 붙어 있는 부산광역시에는 고리 핵발전소 4기가 가동 중입니다." (본문 41쪽 중에서)

히로세 다카시는 1989년 펴낸 <원전을 멈춰라 : 체르노빌이 예언한 후쿠시마>에서 후쿠시마 사고를, 그 원인인 지진 및 해일과 함께 정확히 예언했다고 한다. 그는 일본 후쿠시마와 더불어 세계적인 핵발전 국가인 프랑스와 한국의 핵발전소가 10년 안에 폭발할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을 그저 '헛소리'로 치부하고 말아야 할까.

의료방사선도 안심할 수 없어... 방사능 신화를 깨자

이 책은 방사능에 얽힌 갖가지 위험한 '신화'를 다양한 근거 자료와 인포그래픽 등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방사능 '기준치'를 예로 들어보자.

방사능이 자연상태에도 있다는 점을 들어 그 위험성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여기에는 병원에서의 CT 촬영 등과 같이 의료방사선을 접한 경험도 큰 몫을 차지한다.

"1밀리시버트(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하는 1인당 연간 방사선 노출 허용 기준치인 1mSv-기자 주)라는 수치는 '그 선을 넘으면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그 선 아래면 괜찮다'는 기준이 아닙니다. '피할 수 없는 방사선'(자연방사선과 불가피한 의학적 방사선 등)을 제외하고, 일상에서 노출될 수 있는 인위적인 방사선의 양을 우리가 어느 정도로까지 낮게 관리할 수 있는가'라는 고민에서 나온 일종의 '관리 기준값'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는 위해성 여부가 아니라 통제 가능성 여부를 기준으로 정한 값입니다." (본문 118쪽 중에서)

기준치에 대한 오해는 위험한 '방사능 피폭'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기도 한다. 이 책에는 시민방사능감시센터가 2014년 4월 서울시내 10개 대학병원 종합검진의 피폭 현황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가 실려 있다. 암 정밀검진 결과가 특별히 눈길을 끄는데, 평균 유효선량이 11.12mSv로 높은 편이었다고 한다.

호텔이나 대형 병원에서 1박 2일 이상 일정으로 진행되는 고비용 종합검진인 숙박검진도 마찬가지였다. 평균 유효선량이 24.08mSv로 가장 높게 나왔다고 한다. 모 병원의 숙박검진에서는 30.97mSv까지 피폭되었다고 한다. 일반인의 선량한도 30년 치에 해당하는 위험한 수준이다.

고액의 돈을 들여 일부러 방사능에 피폭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방사선의 건강 효과와 관련된 최신 종합 보고서인, 2006년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가 발표한 <BEIR Ⅶ(저선량 방사선의 생물학적 영향에 대한 일곱 번째 보고서)>은 방사선량이 어느 수준까지 누적된 후 암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방사선에 노출되는 순간부터 그 수준에 비례하는 확률로 암이 발생한다고 강조한다. 질병 진단 및 치료와 관련하여 이유가 타당하고 효과가 있을지라도 최대한 방사능을 피해야 하는 이유다.

이와 관련하여 책에서는 병원에서 지켜야 할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제시한다. ▲ 꼭 필요한 검사인지 담당 의사에게 확인하기 ▲ 방사선 검사가 아닌 대체 검사가 가능하지 물어보기 ▲ 병원 방문 시 최근 동일 부위 검사 결과가 있다면 가져가기 ▲ 임산부와 어린이·청소년은 가급적 검사를 피하되, 꼭 해야 할 경우 철저한 방호 조치를 요청하기 ▲ 납으로 된 앞치마 등 보호 장구 착용 요청하기 등이다.

지난 4월의 세월호 참사를 예견한 이들이 있었을까. 멀쩡하게 생긴 대형 여객선이 침몰하고, 그 안에 갇힌 수백 명의 승객들이 제대로 구조되지 못하는 상황을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1994년의 성수대교 사고나 1995년의 삼풍백화점 사고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고들은 언뜻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리 상판과 백화점 지붕은 순식간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핵발전소 사고 발생의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들이 있다. 미국 스리마일 섬 핵발전소 사고에 조사단으로 참여한 사회학자 찰스 페로의 말을 들어보면 생각이 조금 바뀌지 않을까. 그는 핵발전소 사고를 비롯한 국가적 재난들을 '정상 사고(normal accident)'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보통 사고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만 핵발전소와 같은 첨단 복합 시스템에는 구조, 조직, 건설에 사고 가능성이 이미 내재해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아주 작은 고장과 실수가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의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언젠가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 65쪽 중에서)

독일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2022년까지 자국의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2050년까지 최종 에너지 소비량에 대한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60퍼센트로 높이는 것도 주요 목표다. 무엇보다 정부의 정책 전환 의지가 크지만 에너지 시스템 전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탈바꿈>을 읽으며 우리도 독일이 만들어가고 있는 놀라운 길을 그려보면 어떨까. 핵발전이 가져올 묵시록적인 미래는 생각만 해도 두렵다. 그래도 핵발전소 사고가 아직 터지지 않았으니, 아직 늦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탈바꿈 :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탈바꿈프로젝트 지음 / 오마이북 펴냄 / 2014.11. / 1만 6000원)


이 기사는 정은균 시민기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탈바꿈 -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탈바꿈프로젝트 엮음, 히로세 다카시 외 지음, 오마이북(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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