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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개봉한 조쉬 분 감독의 <안녕,헤이즐>이 한국산 블록버스터의 틈새 속에서도 75만 관객을 모은 직후 원작 소설인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가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서점가에서는 드라마와 영화의 성공이 원작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드라마셀러, 스크린셀러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존 그린도 이러한 현상의 수혜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십대 후반의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삶과 사랑에 대한 그 맘 때의 고민을 녹여내는 그의 소설이 한국에서 대대적으로 출판되는 것도 영화 한 편의 성공으로부터 빚어진 일이니 말이다.

성장소설분야의 차세대 작가 존 그린의 출세작

이름을 말해줘 책 표지
▲ 이름을 말해줘 책 표지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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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깊은 침체기에 빠져있는 문학 시장 가운데서 그나마 선전하고 있는 분야를 꼽자면 아마도 성장소설일 것이다. 유쾌하고 발랄하며 재기넘치는 문체로 청소년들의 고민을 녹여낸 성장소설이 꾸준히 주목받으며 종종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곤 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우리시대 청소년들은 또래 주인공들이 난관을 극복하고 자아를 발견하는 성장소설을 읽으며 자신이 마주한 팍팍한 현실 속에서 대리적인 위로와 만족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다. 상당수 성장소설이 가볍고 뻔한 이야기를 다루며 전형적인 방식으로 전개되다 쉬운 결말을 맺는다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모두가 한 번은 겪어낼 수밖에 없는 자아찾기의 여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점도 적지 않다.

지난 10월 24일 출간된 소설 <이름을 말해줘>는 존 그린에게 오늘의 명성을 가져다 준 출세작이다. 그는 이 소설로 미국 도서관협회가 선정한 최고의 소설상을 받았으며 북리스트, 혼북, 커커스 등 수많은 매체들에 의해 '올해의 책'으로 꼽히는 영광을 누렸다. 알아주는 신동 출신으로 남다른 지적 능력의 소유자이지만 인간관계에는 서툰 소년이 사랑과 우정, 그리고 자아를 찾기까지의 여정을 담아냈으며 존 그린 특유의 쉽게 읽히는 문체와 가볍지만 진솔한 통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존 그린의 소설엔 같은 이름을 지닌 인물이 자주 등장하고 때로는 이러한 이름이 다른 작품들에까지 쓰이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윌 그레이슨, 윌 그레이슨>엔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오며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여주인공의 이름인 헤이즐이 등장하는데 이런 특징은 <이름을 말해줘>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우선 주인공인 콜린이 캐서린이란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들과만 연애를 해왔다는 점이 그렇고 여주인공인 린지가 먼저 만나던 인물이 주인공과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존 그린이 어째서 이와 같은 설정을 반복하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이런 설정이 그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한다는 점은 눈여겨 볼 만 하다.

<이름을 말해줘>의 주인공인 콜린은 대학진학을 앞둔 열아홉 소년이다. 소설은 콜린이 19번째 캐서린과 이별하고 단짝 친구인 하산과 여행을 떠나며 시작된다. 알아주는 신동 출신이지만 인간관계엔 서툰 콜린, 그에게 단 하나 뿐인 친구 하산. 이후의 이야기는 콜린이 캐서린이 아닌 이름을 가진 여자와 만나 새로이 사랑에 빠지고 하산과의 우정도 더욱 깊게 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자아를 찾고 자존감을 갖게 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세부적인 설정과 흐름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윌 그레이슨, 윌 그레이슨>의 주제와도 상당부분 유사하다. 사랑과 우정, 자아의 발견과 자존감의 획득이라는 주제는 존 그린이 소년의 성장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가 한 작가의 작품에서 거듭 반복될 때, 더욱이 다양성을 가장한 성장소설 속에서 반복될 때 독자로서 아쉬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소설의 인물들이 이와 같은 성취를 얻는 계기가 매우 우연이라는 점은 공감과 확장성이 중요한 가치인 성장소설로서 부족한 점일 수 있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지만 결말은 예측할 수 있다

정말이지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로 지내면서도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어디 소설의 인물들 뿐이겠는가. 진정한 자아를 깨닫고 자존감을 회복하며 진정한 성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인간이 세상엔 얼마나 많이 있겠는가. 진정한 사랑을 찾아 서로를 키우는 연애를 할 수 있는 이들이 대체 몇이나 존재하는가. 존 그린의 소설에서 그려지는 난관은 때로 너무 작위적이며 그 극복 역시 지나치게 쉬워서 비현실적으로 보이곤 한다.

<윌 그레이슨, 윌 그레이슨>에서처럼 괴팍하고 무신경한 주인공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는 진정한 친구를 갖고 있으며 먼저 애정을 느끼고 접근하는 지적이고 멋진 여자가 존재한다는 설정은 매우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이름을 말해줘> 역시 신동 출신으로 독보적인 지적 능력을 지녔다는 설정부터 평범하지 않으며 그의 친구인 하산과 린지가 그에게 보이는 태도 역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설정과 전개가 감동적이고 의미있는 결말로 이어진다고 해서 얼마나 큰 공감과 확장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

<이름을 말해줘>는 여러모로 아쉬운 소설이다. 소설 내내 콜린은 자신이 거듭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를 표현하는 수학 공식을 만들어 이후의 관계들을 예측하고자 하지만 이로부터 도달한 결론은 미래는 완전히 예측할 수 없다는 평범한 주제일 뿐이다. 미래는, 그리고 사람은 수학공식으로 온전히 표현할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기에 우리는 미지의 세계를 직접 살아야 한다는 결말은 처음부터 쉽게 예견되며 가볍기까지 하다.

콜린은 이로부터 유레카를 외쳤지만 이와 같은 해답이 독자에게도 깨달음을 얻게 할 수 있을까? 언제나처럼 주인공은 사랑과 우정을 모두 얻었지만 독자는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성장소설이 찾아야 할 답은 어쩌면 쉬운 사랑과 우정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게 아닐까? 존 그린이 무한경쟁의 궤도에 내몰린 한국의 청소년들 앞에서도 진정 사랑과 우정이 모든 문제의 답이었노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바로 그 순간 미래(수학적 정리든 아니든 그 어떤 정리로도 통제되지 않는)가 콜린 앞에 펼쳐졌다. 무한하고 아름다운 미지의 미래가.

"유레카."

콜린이 말했다. 콜린은 그 말을 하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속삭이는데 성공했음을 깨달았다.

"내가 밝혀냈어. 미래는 예측할 수 없어."

(309p)

덧붙이는 글 | <이름을 말해줘> 저자 존 그린 / 역자 박산호 / 웅진지식하우스/ 2014.10.24 / 316쪽/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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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 어플 '소모임'서 영화&책 모임 '블랙리스트' 운영, 팟캐스트 '블랙리스트: 선택받지 못한 놈들' 진행, 빅이슈 '영화만물상' 연재 / http://goldstarsky.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