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방영한 tvN <미생> 13회 한 장면

지난 28일 방영한 tvN <미생> 13회 한 장면 ⓒ CJ E&M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던 위험천만한 프레젠테이션(P.T)였다. PT에 참석한 임원진 대부분이 요르단 사업 건을 제안한 영업3팀의 이야기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아닌, 어떻게든 오류를 찾아내 꼬투리를 잡겠다는 상황에 가까워 보였다.

그러나 지난 28일 방영한 tvN <미생> 13회에서 오상석(이성민 분) 차장과 장그래(임시완 분)을 위시한 영업3팀은 해냈다. 특히나 마지막 사장(남경읍 분)에게 사업에 대한 확신을 준 장그래의 한 마디가 압권이다.

"우리 회사이기…때문입니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함께 입사한 동기들 중에서 유일하게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이다. 당당히 인턴 과정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원 인터내셔널에 들어왔지만, 여타 동기들과 달리 고졸이란 학력과 내세울 스펙과 경력이 없다는 것이 장그래를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재계의 논리에 따라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다시 고개를 들고, 그에따라 정규직도 자리 보장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 와중에 회사의 입장에 따라 언제든지 정리 대상이 될 수 있는 계약직은 그야말로 '파리목숨'이다. 원 인터내셔널이 장그래에게 회사에 일할 수 있다고 허락한 시간은 고작 2년. 업무 능력이 좋으면 재계약도 할 수 있고, 정규직으로 전환도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계약직들에게 정규직은 아득한 꿈이다.

그런데 장그래는 사장을 비롯한 수많은 임원들 앞에서, 요즘 정규직들도 쉽게 각인되지 않는다는 "우리 회사"라고 말한다. 성공적인 PT를 위한 전략으로도 볼 수 있지만, "우리 회사"를 언급하는 장그래에게는 허울이 아닌 진심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일개 계약직 사원에 불과하던 장그래가 회사의 쟁쟁한 임원들에게 능력과 가능성을 인정받는 엄청난 기회였다. 오차장과 장그래는 그야말로 판을 뒤집는 파격적인 PT를 진행했고, 기존의 매뉴얼을 뒤집고 회사의 치부부터 드러낸 영업3팀의 PT는 끝내 수많은 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더불어 사는 조직은 아득한 꿈? "희망은 있다"
 지난 28일 방영한 tvN <미생> 13회 한 장면

지난 28일 방영한 tvN <미생> 13회 한 장면 ⓒ CJ E&M


신입이 첫 PT에서 임원들을 상대로 현실 가능한 사업 제안서를 제출했다면, 회사 내에서는 차기 임원감이라는 뒷말이 나올 터. 그러나 동명 원작을 끝까지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어느 정도 직장인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었던 <미생>도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임원들 앞에서 뛰어난 PT를 보여주었지만, 장그래는 여전히 고졸 검정고시 출신 계약직 사원일 뿐이다. 압도적인 업무 능력을 보여주던 안영이(강소라 분)조차도 껄끄러운 여사원으로 취급받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자연스러워 보이는 현실의 회사에서 실제 계약직 사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직급과 위치에 상관없이 나의 부하, 사람이라면서 부하의 업무 능력 증진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성공적으로 PT를 마친 신입사원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내는 오차장과 같은 훌륭한 상사를 만났기에 가능한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오차장과 같은 상사는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만나기 어렵다. 오히려 정규직을 시켜주겠다는 조건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안타까운 계약직들의 사연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세상에는 계약직 장그래의 "우리 회사"는 그저 아득한 꿈이다. 마치 지금 이 순간도 '정규직'을 그리며 불철주야 일하는 이 세상 모든 비정규직들의 꿈을 대변하듯이.

장그래의 "우리 회사"를 두고 원 인터내셔널의 임원들은 "그럼 우리 회사지 남의 회사냐"면서 웃을 수 있지만, 현실의 장그래들은 마냥 웃을 수 없다. 그런 그들에게 <미생>은 오차장이 장그래에게 보낸 카드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더할 나위 없었다. YES!". 투박하지만, 그 어떤 말보다 따뜻한 오차장의 응원을 받고 난 이후, 더더욱 버티고 견뎌서 웃으며 살아내고 싶다는 장그래의 내레이션이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큰 힘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미생 장그래 드라마 임시완 이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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