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구단이 매년 가장 먼저 선택하는 '1차 지명 선수'는 그 학교나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엄청난 유명세를 탔던 '특급 유망주'들이다. 이들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신분에는 상상하기 힘든 수억 원에 달하는 계약금을 받으며 구단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로 기대를 받는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스타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학창 시절의 혹사를 견디지 못해 부상에 시달리다가 조기에 유니폼을 벗기도 하고, 자신보다 한참 뒤처졌던 선수에게 추월 당해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다고 이들의 야구 인생이 모두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다. 비록 최고의 자리에 오르진 못했지만 10년 넘게 프로 무대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뒤늦게 자신의 가치를 인정 받는 선수도 있다. 신생 구단 KT 위즈에 새롭게 둥지를 튼 박경수처럼 말이다.

LG에서 끝내 폭발하지 못한 박경수의 잠재력

박경수가 성남고 시절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유격수였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고교 시절 박경수의 잠재력은 '기본 박진만, 최대 이종범'이라는 평가를 들었을 정도다.

연고팀인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끊임없는 구애를 받은 박경수는 4억 3000만 원의 계약금을 제시한 LG를 선택했다(이는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은 역대 고졸 내야수 최고액이다). LG는 박경수를 유지현의 후계자로 낙점하고 유지현의 등번호 6번을 박경수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박경수의 성장은 LG의 기대보다 훨씬 더뎠다. 대부분의 유망주가 그렇듯 박경수 역시 부상이 그 원인이었다. 박경수는 2003년 팔꿈치를 시작으로 2004~2005년 어깨, 2009년 손목인대, 2010년과 2014년에는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병원 신세를 지는 일이 유난히 많았다.

2008년에는 시즌 중반까지 좋은 활약을 펼치며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바라는 팬들의 염원을 담아 '북경수'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 해에도 정근우(한화 이글스)와 고영민(두산)에 밀려 올림픽 출전의 꿈은 좌절됐다.

박경수는 잦은 부상 속에서도 최근 7시즌(군복무 2년 제외) 동안 5번이나 100경기 이상 출전했다. 박경수는 타격에서 심한 기복을 보였지만 수비에서만큼은 안정감을 뽐냈다. 특히 2006년 5월부터 2007년 9월까지는 역대 2루수 부문 최다인 107경기 연속 무실책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박경수는 올 시즌에도 손주인의 3루 변신으로 주전 2루 자리를 차지하며 9월에는 월간 타율 .444로 맹활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10월17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최종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포스트시즌에는 나서지 못했다(박경수는 프로 12년 동안 한 번도 포스트 시즌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통산 타율 '.241'의 평범한 성적에도 4년 18억 계약

빅, 또리 KT위즈의 공식 마스코트 빅과 또리.

▲ 빅, 또리 KT위즈의 공식 마스코트 빅과 또리. ⓒ KT위즈


LG는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박경수 없이도 NC다이노스를 꺾고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며 선전했다. 결국 다년 간의 부진으로 팀 내에서 비중이 작아진 박경수는 LG와의 우선 협상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시장에 나왔다.

'천재 내야수'에서 시즌 타율 .228의 평범한 선수로 전락한 박경수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다. 부상 전력이 화려한 박경수를 영입하고 보상 선수를 내줬다간 자칫 큰 화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FA 시장에는 보상선수 유출이 없는 KT가 있었다. 박경수는 타구단 협상 기간 이틀째가 되던 지난 28일, KT와 4년 18억 2000만 원(계약금 7억 원+연봉 9억2000만 원+옵션 2억 원)의 좋은 조건에 계약을 체결했다.

만약 박경수가 LG에 잔류했더라면 김용의, 황목치승, 손주인(외국인 3루수 영입시)등과의 경쟁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박경수는 신생팀인 KT에서 주전 2루수로서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특히 박경수는 경우에 따라 유격수 수비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KT에서 박경수의 활용가치는 더욱 크다.

박경수는 LG에서 12년 동안 활약하면서 총 933경기에 출전해 통산 타율 .241, 609안타, 43홈런, 246타점을 기록했다. 통산 타율보다 1할 이상 높은 통산 출루율(.343)을 기록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딱히 내세울 것이 없는 성적이다.

하지만 KT는 박경수의 낮은 타율이나 잦은 부상 경력보다 건실한 수비와 뛰어난 작전 수행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이제 박경수는 내년부터 신생구단 KT 유니폼을 입고 좋은 조건 속에서 자신의 두 번째 프로 인생을 시작한다. 한 때 프로야구를 뒤흔들 천재 내야수로 기대 받던 박경수가 새로운 팀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뽐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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