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거인> 한 장면

영화 <거인> 한 장면 ⓒ 메이킹에이프린트


근로 의지가 없는 무책임한 아버지 창원(김수현 분)을 떠나 천주교계 보육시설인 그룹홈 '이삭의 집'에서 생활하는 전문계고 학생 영재(최우식 분). 그는 보육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연령 기준을 넘겨 그룹홈에서 나가야 할 처지에 놓인다. 그가 자신의 생계를 의탁할 수 있는 길로 찾은 묘안은 가톨릭 신부를 양성하는 신학교에 입학하는 것.

영재는 그룹홈 원장과 담임신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아침에는 그룹홈 원장을 도와 밥상을 준비하고 오후에는 성당 미사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하지만 영재의 속마음을 좀처럼 신뢰하지 않는 원장은 영재에게 그룹홈에서 나갈 것을 압박하고….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한 영재의 아버지는 남동생 민재(장유상 분)까지 그룹홈에 데리고 와 함께 데리고 있어줄 것을 조른다. 이에 격분한 영재는 과도로 손목을 그으면서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스물여덟 살 청년 영화감독 김태용이 내놓은 신작 <거인>은 성장통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혹독한 시간을 겪는 10대 소년을 조명한다. 친부모에 대한 실망과 증오에 휩싸이다가도 혈육의 끈을 놓지 못해 쓰라린 눈물을 삼키는 외로운 청춘을 그린다.

다만 영화는 '나쁜 부모'와 '어린 희생자'의 이분법적 구도로 소년의 상처를 부각하는 방식에 매달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 영재를 거짓말과 위선적 행동에도 능숙한 고교생으로 그려내 사실성 짙은 인물형을 구현했다. 용돈 마련을 위해 그룹홈 후원물품을 상습적으로 훔치는 일이 반복되지만 그룹홈 구성원 앞에선 예의바르고 상냥한 태도를 일관하며 노련함마저 보여주는 영재. 자신의 생존을 위해선 비행을 저지른 오랜 룸메이트를 경찰에 신고하는 일마저 주저하지 않는 그다.

주인공 영재 역을 맡은 배우 최우식은 입체적인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해낸 연기력으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찬사를 받았다. 양극단의 낯빛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관객의 몰입을 무섭게 끌어당긴 그다. 사실 최우식은 해맑은 '고딩'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제법 세상사는 요령을 터득하기 시작한 스물다섯 살 청년이다. TV 드라마와 예능을 통해 이제 막 얼굴을 알리고 있는 그를 스크린의 주인공으로 파격 발탁한 김태용 감독의 선택은 이 영화가 독립영화 장르로는 이례적으로 전국 2만 관객 동원을 성공하게 된 신의 한 수가 아닐까

영화의 결말은 종이박스를 들고 그룹홈을 떠나는 영재의 발길을 따른다. 자신을 받아줄 새 둥지를 찾아 먼 길을 떠나기에 앞서 그가 발길을 멈춘 곳은 남동생 민재가 다니는 중학교. "이제 형의 몸이 커져 입을 수 없다"며 옷 몇 벌이 담긴 박스를 동생에게 전하는 영재의 모습에선 죽도록 아프지만 큰사람(거인)으로 성장해가는 청춘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따스한 기운이 풍기는 스웨터와 지갑을 넣어둔 종이박스에는 동생을 앞날을 염려하는 형의 의젓한 마음이 담겼을 터. 하지만 왠지 모르게 영재의 고단한 삶의 자취가 동생에게 그대로 옮겨질 것만 같아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인상을 남긴다.   


거인 최우식 김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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