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큰언니는 떨어지는 감 상관없이 마구 흔들어댑니다~
▲ 떨어지는 감이 더 많습니다~ 큰언니는 떨어지는 감 상관없이 마구 흔들어댑니다~
ⓒ 김순희

관련사진보기


쌀쌀한 날씨에 겨울이 성큼 다가왔음을 몸으로 실감합니다. 추수를 끝낸 지 얼마 안 됐지만 시골은 지금 일 년 중 가장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고향 집에서도 가을걷이가 한창입니다. 휴일마다 한 가지씩 끝내고 나니 끝이 없을 것 같은 농사일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논과 밭에서 거둬들여야 할 것들은 거의 다 끝날 무렵, 제각기 자신의 위치에서 마무리하고 있는 자식들을 향해 어머니는 한마디 하셨습니다.

"담주는 다들 감따러 온네이~"
"뭐~엇? 하루 좀 쉬어야 할 거 아인교. 감은 나중에 큰형부한테 좀 따라카믄 안되나."
"뭐라캐샀노. 너거 형부 혼자 우째 따노. 마아 시끄럽다. 다 온나~알았제~"
"나 참. 진짜 쉴 틈을 안주네. 아이고 모르겠다~"
"감~ 다 따고 하믄 내가 마신는거 사줄끌가네, 온네이~"
"뭐라꼬~엄마가 마신는거 사준다꼬. 아이고 웬일인교~울 엄마~"
"일단 고로케 알고 담주에 온나~"

돌아오는 휴일에 집 앞에 있는 한 그루 감나무의 감을 딸 것이니, 다들 시간 내서 오라는 어머니의 명령이 떨어지고 나니 여기저기서 뭘 사줄지 궁금해 하면서 다들 한마디 합니다. 저녁부터 굶고 오겠다, 며칠 전부터 아예 안 먹을 거다, 좀 비싼 거 먹어야겠다, 등 어디 평소 못 먹고 지낸 사람들처럼 잔뜩 기대에 찬 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감 따주면 맛있는 거 사주지~

그렇게 며칠이 지난 휴일 아침이었습니다. 평소보다 일찍 서둘러 시골집으로 갔습니다. 어머니의 성격을 알기에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정말 눈뜨자마자 가야 하겠지만 일주일에 한 번 어쩌다 쉬는 날이면 그게 말처럼 또 쉽지 않습니다. 고향 집 앞에는 아주 오래된 감나무가 딱 한 그루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감나무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던 터라 매년 감나무의 감은 그 수량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크지는 않지만 그 양은 엄청 많이 열렸습니다. 작년만 해도 얼마 안 되는 감을 오남매가 나눠 간다고 애를 먹었는데, 올해는 한 자루씩 담아가고도 큰집이며, 작은집에까지 나눠줘도 좋을 만큼 풍족했습니다.

감나무 위에서는 대범하게 합니다~
▲ 대단한 용기를 내어본 큰언니~ 감나무 위에서는 대범하게 합니다~
ⓒ 김순희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그렇게 자잘한 감들을 어떻게 따느냐가 문제였습니다. 감 따는 것은 매년 큰형부가 땄었는데, 이번엔 웬일인지 큰형부가 보이지 않고, 감나무 위엔 큰언니가 대신 올라가 따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감나무 아래에서 떨어진 감을 주워 담으면서 잔뜩 화가 나 있었습니다.

"엄마~ 와 이래 기분이 안 좋은가 모르겠네~"
"말~마라, 너거가 일찍 안 와서 아까부터 계속 투덜거리더라. 그라고 너거 큰오빠도 못 온다카제, 작은오빠도 못 온다고 전화오제~글까네 저래 화가 났다 아이가."
"아~글쿠나, 우짜겠노. 못 오믄 할 수 없제. 마아 우리 딸들이 다 따가 다 가져가믄 되제."
"뭐라케샀노~ 저래 많은 감을 너거가 땄다고 다 가져가믄 우야노~"

아들들이 못 오고, 딸들만 와서 감을 따 가져간다고 하니 어머니는 내심 전부 가져갈까봐 걱정이 되긴 했나 봅니다. 큰언니와 농담 한 걸 가지고 어머니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을 하셨습니다. 갈수록 어머니는 말 한마디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십니다. 모처럼 간식거리로 호떡을 해주려고 준비해왔지만 어머니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한 마디 하십니다.

"쪼매 있으믄 밥 묵을 낀데 뭐하러 할라카노. 마~아 내둬라~"
"일부러 엄마 해 줄라꼬 가지고 왔는데 그카믄 우야노... 우린 뭐 자식도 아이가~"
"밥 묵을 때가 다 됐는데 다른거 묵을라카이 그라제~"

심기불편한 어머니를 어떻게 달래줘야 하나 싶어 호떡으로 간식을 준비 하려는데 어머니는 극구 만들지도 않은 호떡을 두고 자꾸만 야단을 치십니다. 한참을 말없이 떨어진 감을 주워 담고, 홍시도 따로 챙겨 바구니 가득 담았습니다. 아직은 서툰 큰언니의 감 따기는 점심시간을 훨씬 지난 후에도 다 따지 못했고, 거의 한 접은 될 듯한 양이 감나무에 달려 있었습니다.

아들들이 없어 그저 심기가 불편하십니다~~
▲ 심기가 불편한 어머니~ 아들들이 없어 그저 심기가 불편하십니다~~
ⓒ 김순희

관련사진보기


제일 위에 달린 감은 손조차 닿지 않아 그냥 감나무 채로 베어 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보다 못한 작은형부가 실력발휘를 하기 위해 올라가 그 큰 감나무 밑동을 자르는 순간, 감나무 아래서 감 선별 작업을 하던 작은언니에게 그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옆구리에 상처가 났고, 큰언니는 감나무에서 내려오다 그만 발을 헛디뎌 무릎이 심하게 긁혔습니다.

두 언니는 아프다며 금방이라도 울먹이며 난리를 쳤습니다. 이 모든 사건은 큰형부가 감을 따지 않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 일이라며 다들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큰형부가 오면 심하게 다친 행색을 해서 큰형부의 반응을 보자며 그렇게 한 접 정도의 감을 남긴 채 올해의 감 따기는 마무리했습니다.

"있~제, 다들 너그 형부 오믄 아픈 척 하거래이~우짜는지 보~자"
"큰형부 놀리묵는기 그렇게 좋나~정 언니 맘이 그라믄 붕대감고 있거래이~"
"아~맞다, 그래야겠다. 붕대 찾아온나~"

한결 표정이 밝아지신 어머니~
▲ 아들들 줄 감을 몇 포대 챙겨두셨네요~~ 한결 표정이 밝아지신 어머니~
ⓒ 김순희

관련사진보기


급기야 큰언니는 붕대를 무릎에 감고, 작은언니는 허리 아플 때 차는 어머니의 허리 보호대를 감았습니다. 간식으로 호떡을 해서 갖다 놓으니 왜 하냐고 하시던 어머니는 몇 개를 맛있게 드셨고, 그런대로 호떡의 위상도 올라갔습니다.

호떡은 남편이 만들었습니다. 늦은 점심 시간이라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저녁 때를 기다렸습니다. 해가 지고 나서야 큰형부는 밭에서 돌아왔고, 거기에 맞춰 언니들은 연극에 몰입했습니다. 여기서도 '아야~", 저기서도 '아야~' 아프다며 울상을 지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던 큰형부는 큰언니의 다리를 이리저리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하지 않아 생긴 일이라며 나무라기 시작했습니다.

연극을 하려면 제대로 하든지, 몇 발자국 떼어보는 시늉을 하던 큰언니는 큰형부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웃다가 그만 붕대를 풀고 말았습니다. 모든 사태를 그제야 알아차린 큰형부는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그저 웃기만 하셨지요.

안 드신다더니 어머니는 몇 개를 맛있게 드셨어요~
▲ 따뜻한 호떡으로 간식 먹었어요~ 안 드신다더니 어머니는 몇 개를 맛있게 드셨어요~
ⓒ 김순희

관련사진보기


감 따면 어머니가 맛있는 밥을 한 턱 쏘기로 했지만 오남매가 다 모이지 않아서 어머니도 마음이 무거울 것 같아 다음에 다 모이면 함께 먹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감나무 한 그루에 어머니와 세 딸이 모여 감을 따면서 웃지 못할 추억 하나 만들고 돌아왔습니다. 어릴 적 높게만 여겨지던 50년이 다 되어 가는 감나무 한 그루는 이제 한없이 작습니다. 부러지는 가지도 많은 것이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하고, 50~60을 바라보는 언니와 형부들과의 여유로운 휴일 한 때가 일상의 즐거움을 전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풍족해지는 하루였습니다.

해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찾아보고, 만날 수 있을 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시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포대 푸짐한 감나무를 보면서 새삼 느껴봅니다.


태그:#어머니, #감나무, #고향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