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울산 모비스는 종종 NBA(미 프로농구)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비교 대상에 오른다. 샌안토니오는 NBA을 대표하는 전통의 강호다. 주전과 백업의 조화, 개인 기량과 팀 조직력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룬 '시스템 농구', 강산이 바뀔 세월 동안 변함없이 리그를 호령하고 있는 장수 '왕조'의 위상 등에서 샌안토이노는 모비스와 상당히 닮은 꼴이다. 모비스 구단 역시 샌안토니오를 롤모델로 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샌안토니오가 NBA의 강호로 등장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제독' 데이비드 로빈슨이 팀을 이끌던 시절 샌안토니오는 비록 우승은 차지하지 못 했지만 정규시즌 승률 1위(94-95)를 기록하는 등 꾸준한 성적을 기록했다. 1997년 역대 최고의 파워 포워드로 꼽히는 팀 던컨이 합류하면서 샌안토니오의 전성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샌안토니오는 98-99시즌 첫 우승을 비롯해 지난 13-14시즌까지, 던컨과 함께한 17년간 무려 5차례나 NBA 정상에 올랐다. 이 기간 정규리그 승률은 미국 4대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1위다.

울산 모비스와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공통점

샌안토니오는 NBA에서 빅마켓으로 꼽히지는 않는다. 농구 스타일도 화려하지 않고, 전국구 인기 구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유럽형 로테이션 농구를 바탕으로 안정된 조직력과 팀워크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사령탑 그렉 포포비치 감독을 비롯해 팀 던컨-마누 지노빌리-토니 파커로 이어지는 우승 주역들은 벌써 10여 년 넘게 샌안토니오 한 팀에서만 호흡을 맞추고 있다. 리그 내에서 가장 많은 외국 국적 선수들을 보유한 다국적 군단이기도 하다. 데뷔 초기 마이클 조던 말년의 시카고 불스를 비롯해 LA 레이커스-마이애미 히트-보스턴 셀틱스 등 수많은 강호들이 명멸을 거듭하는 과정에서도 샌안토니오만은 기복없이 리그의 강호로 장수하고 있다.

울산 모비스의 전신은 부산 기아다. 프로 초창기 실업 최강인 기아자동차의 주축 멤버들을 물려받은 기아는 원년 우승과 2회 준우승의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리빌딩 과정에서 주축 선수들이 모두 해체되고 연고지도 울산으로 이전하면서 기아와의 전통은 사실상 단절됐다. 지금의 울산 모비스가 태동한 것은 유재학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04년부터를 실질적인 시작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모비스는 당시만 해도 리그의 평범한 약체팀에 불과했다. 전국구 인기 구단과는 거리가 멀었고 내세울 만한 스타 플레이어도 모두 떠난 상황이었다. 당시만 해도 40대 초반의 젊은 감독이었던 유재학 감독도 모비스 취임 직전 03-04시즌 전자랜드 시절 거둔 4강이 최고 성적이었을 만큼 충분히 검증된 명장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유재학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탄탄한 수비와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농구로 모비스를 환골탈태시켰다.

모비스는 유재학 감독이 부임한 이래 정규시즌과 챔피언전 우승 4회를 달성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왕조로 올라섰다. 전신인 기아 시절까지 포함하면 5회로 전주 KCC와 타이 기록이며, 지난 27일에는 프로농구 역사상 단일 팀 최초의 정규리그 500승 기록도 달성했다. 비공식 1위는 원주 동부의 511승이지만, KBL은 공식적으로 동부의 전신인 나래와 삼보를 단일 구단의 역사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모비스만이 최초 기록으로 인정받게 된다.

작전 지시하는 유재학 감독 한국 농구대표팀의 유재학 감독이 3일 오후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이란과의 결승전에서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프로농구계의 명장으로 꼽히는 유재학 울산 모비스 감독 ⓒ 유성호


모비스의 양동근-샌안토니오의 던컨

유재학 감독은 프로농구 현역 최다승 사령탑이기도 하다. 지난 시즌까지 정규리그 465승을 기록했던 유재학 감독은 올해 16승을 추가하며 통산 481승으로 프로농구 역사상 개인 최초의 500승 고지에 19승을 남겨뒀다. 올 시즌도 프로농구 1위를 질주 중인 모비스의 기세를 감안할 때 이번 시즌내 대기록 달성이 유력하다.

샌안토니오에 던컨이 있다면, 모비스에는 양동근이 있다. 포포비치 감독와 던컨이 샌안토니오에서 서로의 페르소나로 농구인생을 함께 만들어왔다면, 양동근과 유재학 감독은 2004년부터 모비스와 국가 대표팀에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며 한국 농구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양동근은 모비스에서 신인왕과 MVP 2회를 수상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데뷔 초기만 해도 운동 능력에만 의존하는 선수로 '패스 능력 없는 포인트가드' 혹은 '키 작은 슈팅가드'라는 혹평도 들었지만, 자신만의 장점인 수비력과 전술수행능력을 극대화해 어느덧 리그를 대표하는 가드로 올라섰다. KBL에서 이룬 업적과 기여도만 놓고 보면 이상민, 김승현, 주희정, 신기성 등 역대 프로농구를 능가하는 넘버 1 가드로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팀에서도 유재학 감독과 함께 2014년 아시안게임 우승을 함께했다. 프로농구 출범 이래 김주성(동부)과 함께 선수로서 가장 완벽한 커리어다.

성공하는 팀들에게는 공식이 있다. 샌안토니오와 모비스는 모두 '팀을 위한, 팀에 의한 농구'를 추구한다. 기본기와 수비, 집중력을 강조하는 것은 모든 팀이 마찬가지지만 오랜 시간 그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힘든 일이다. 샌안토니오나 모비스에도 스타 플레이어들은 있지만 결코 주전 한두 명에게 의존하는 팀이 아니다.

최상의 전력보다 최선의 결과 끌어내는 울산모비스

포포비치 감독은 30대가 넘은 노장 선수들의 출장 시간을 철저하게 관리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불혹을 바라보는 던컨이 지금도 NBA 최고의 빅맨으로 활약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식스맨을 활용하는 포포비치 감독 능력은 NBA 최고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시즌 NBA 파이널에서 재대결한 마이애미 히트를 완파하면서 샌안토니오는 주전과 벤치의 격차가 없는 팀플레이의 정점을 보여줬다.

유재학 감독은 선수들의 장단점을 냉철하게 파악해 팀플레이에 녹여내는 분업화 농구에 강하다. 지금의 모비스의 프랜차이즈스타인 함지훈과 양동근도 프로 입단 전에는 미완의 유망주에 불과했다. 김효범-박구영-박종천-이대성-송창용 등 다른 팀에서 낮은 평가를 받거나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들, 혹은 전성기가 지났다고 평가받은 노장들을 데려와 전성기를 열어준 사례는 수없이 많다. 모비스는 2010년 당시 선수단 몸값을 의미하는 샐러리캡에서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고도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진기록을 연출하기도 했다.

한 두시즌 반짝하는 것에 그치지 않은 샌안토니오와 모비스의 장수는 프로 스포츠에서 있어서 많은 귀감이 될만하다. 두 팀 모두 농구의 기본은 팀플레이에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팀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고 있는 장수 감독과 프랜차이즈스타들이 있고, 이들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구축해온 색깔과 끈끈한 상호 신뢰를 통하여, '최상의 전력'이 아니어도 '최선의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저력을 갖췄다. 스포츠만이 아니라 성공한 조직을 만들고 싶은 이들에게는 좋은 교훈이 될만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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