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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금요일) 아침 7시경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혹시 어머니한테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아직 잠이 덜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올해 84세이신 어머니한테 아침 일찍이 전화가 오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약간 긴장하면서 받았다.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엊그제 김장을 했는데 지금 택배를 부친다고 주소 좀 불러달라신다. 아마 볼펜을 들고 전화기를 든 채로 종이에 주소를 쓸 준비를 하신 것 같다. 문자로 보내드릴 테니 우체국에 가셔서 보여주라고 일러드렸다. 급히 끊으셨다. 우체국에 지금 가시려는가 보다. 아직 오전 9시도 안 돼서 문을 안 열었을텐테...

9시 조금 못 되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전화였다. 화난 목소리다.

"아니 어떤 때는 받고, 어떤 때는 안 받고,......"

얘기인즉슨, 김치가 운송 중에 터지면 다른 물건들이 훼손이 된다고 우체국에서 김치택배를 안 받는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사설 택배 전화번호를 주더란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시츄에이션?

어머니는 택배를 여러번 보내 보신 경험이 있으셔서, 택배거절은 처음 당하신 일이라 몹시 화가나 흥분해 계셨다. 시골에 홀로 계셔서 남들이 얕본다는 자격지심이 항상 있으셨다.  그래서 이내 어머니의 불편한 마음이 바로 내게도 느껴졌다.

전화받는 나로서도 택배 상태가 어떠한 줄 모르니 답답하기만 하였다. 곁에 있으면 따지기라도 하면 어머니에게 힘이 될텐데, 이럴 때면 멀리서 도와드릴수 없는 내 처지가 안타깝고 죄송스럽다. 택배포장 상태가 불량인지, 우체국 택배 지침이 그런지 따지고 싶었지만, 사설택배를 소개해줬다니 그것으로 우선 참았다.

어머니가 사시는 곳은 육지에서 배로 1시간 거리의 섬이다. 평일에 육지로 나가는 배 두편이 있는데, 오전 10시 반배와 오후 4시배가 있으니, 오전에 일을 처리해야 오후 배편으로나 택배가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마음이 급하실 수 밖에 없다. 주말에 걸치면 다음 주초나 들어간다는걸 경험적으로 알고 계신 것이다.

작년에도 이맘 때쯤 김치를 보내주셨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택배 배달시간이 오후로 잡혀 있다해서 직접 찾으러 갔었다. 성인인 내가 혼자 들기에도 약간 버거울 정도였다. 3개월은 족히 먹을 분량의 김치를 싸서 보내신 것이다. 집에 가져왔더니 와이프는 썩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다. 친정에서 가져다 먹는 김치가 입 맛에 맞대나... 어쨌다나..."팍, 그냥!"

게다가 어머니가 보내신 김치가 너무 많아서 냉장고에 집어넣기 힘들어 하는 모양새였다. 김치냉장고가 있어야 한다고 투정까지 덧붙였다.

어머니의 짠 김치를 거부할 수 없는 이유

잘 익은 김치. 무료이미지.
 잘 익은 김치. 무료이미지.
ⓒ http://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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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가 반 포기 접시에 내어서 맛을 보았다. 이내 눈을 찡그렸다. "너무 짜다"고 하며 젓가락에 집어 들고 내게 내밀었다. 불안한 마음에 얼른 받아서 맛을 보니 역시나 짰다.  왠만하면 "뭐가 짜냐?"고 한번 째려보고, "이정도는 어릴적부터 즐겨 먹었다"라고 큰소리 치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소금이 많이 들어간 것 같다. 와이프는 이걸 어떻게 먹느냐고 투정을 하였다.

나는 물 많이 넣어 김치찌개 끓여먹자고 하면서 에둘러 레시피를 정해주었다.

아내도 더 이상 투정은 부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애써 보내 주신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면, 내가 화를 낸다는 것을, 지난 10년간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와이프의 투정보다, 이제는 어머니가 연로하셔서 간을 잘 못 맞춘다는 사실에 더 마음이 상했다.

나는 바로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이번 배추는 속이 잘 들었네. 양념을 조금만 넣지..., 고춧가루 아까운데... 잘 먹을께요!"라고 어머니 솜씨가 예전과 다름이 없다고 안심시켜드렸다. 어머니도 막내아들의 '합격'이란 말을 기다리셨는지, 기분좋은 목소리로 "얼른 냉장고에 넣어라"하신다. 그리곤 "안그럼, 김치 신다"고 하시면서 수화기를 가볍게 놓으셨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똑같이 다른 형님집에 보냈던 김치는 형수들이 짜다고 얘기했나? 아니면 디테일한 반응이 없었나? 잘 모르겠지만, 올해는 나한테만 보내주신다 하셨다.

어머니에게서 오전 10시 반 경에 전화가 왔다. 사설 택배가 왔는데 주소를 불러 주라고 했다. 또 한 번 주소를 문자로 보내드렸다. "다른 말이 없으니 문제없이 김치택배를 가져가겠구나"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새벽부터 막내아들에게 보내시려고 시린 무릎으로 얼마나 동분서주하고 다니셨을까!"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여하튼 빨리 택배가 무사히 보내졌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착불로 보내라고 신신당부했는데 택배비로 2만 원을 지불했다고 했다.

"뭐, 이렇게 비싸?"
"바가지 아냐?"

그 택배직원한테 다시 전화해서 따지고 싶었지만 이미 물건을 가져간 뒤라 그냥 참았다. 시골에 혼자 계신 어머니에게 바가지 씌우는 것 같아서 그냥 마음이 무겁다. 그 돈이면 여기서 사먹어도 될 돈인데, 돈으로 따질 수가 없는 것이기에 택배비는 접어두자는 마음이었다.

그 다음주 18일(화요일) 오전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역시 화난 목소리였다. 가져갔던 택배직원이 김치택배를 다시 가져왔다고 했다. 역시 우체국택배와 동일했다.

"이런 000 없는 놈들!"  
"거기 택배, 왜 그래?"

나도 이런 뜻밖의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아서,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머니도 두번이나 물건이 되돌아 오니 몹시 화가난 상태였다.

다행히, 이번 주말에 해외 S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둘째 형이 3개월 만에 휴가차 국내로 귀국해서 고향을 내려간다고 했던 게 기억이 났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김치를 그냥 형에게 맡겨서, 육지로 나올 때 보내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포기하시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김치 안 보내도 괜찮다고 하면, 분명 서운해 하실 것이 뻔하니까! 그럴수야 없지! 어머니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어머니는 평생 자식 위해 살았는데도 아직도 자식에게 무언가를 계속 주시려고만 하신다.

지난 25일(화요일)이었다. 휴대폰에 택배직원에게서 배달확인 문자가 왔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김장 김치일 것이다. 무인택배함에서 문을 여는 순간 스티로폼에 테이프로 감겨있는 물건이 하나 자리잡고 있었다.

진한 쉰내 풍기며 배달된 김치...  

순간, "왜, 시골 우체국에서는 이렇게 스티로폼으로 포장이 잘된 김치택배를 안 받았지?"라는 생각이 들어 화가 일었고, 그 똑같은 포장으로 육지 우체국에서는 배달이 됐다는 점에 또 화가 더해졌다. 이제야, 어머니가 화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머니 잘못이 아니었던 것이다.

집으로 들고 들어오는데, 이미 김치 익은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집으로 들어와 스티로폼에 꼭꼭 쌓인 뚜껑을 열어보았다. 진한 김치 쉰내가 거실에 순식간에 퍼졌고, 이미 익은 상태로 배추가 차곡차곡 개어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닐에 쌓여 거의 보름간 숙성이 된것이었다. 아주 푹 익어 있었다.

아마 얼마나 될 지 모르지만 어머니는 당신이 살아 계신 동안  김장김치를 계속 보내 주실것 같다. 설령 그 김치가 짜도, 시었어도, 맛이 없어도 나는 어머니가 직접 정성들어 손으로 담그신 김장김치를 언제까지나 먹고 싶다.

그런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가 최근에 치매 초기 진단을 받으셨다. 앞으로 어머니의 손수 담은 김장김치를 더 이상 못 먹을까봐 두렵다. 

가슴이 애리고 아프다.


태그:#어머니, #김장김치, #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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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정감과 강인함을 좋아하며, 인간 '종'이 세운 모든 것을 반성하고, 동물과의 교감, 그리고 자연과의 일체를 실현하고자 하며, 지구어머니의 한 생명체으로서 생물학적 다양성과 지구온난화 및 핵탈피에 관심있는, 깨어있는 시민이되고자 합니다~(나주혁신도시 16개기관의 지역사회에 대한 적극적 사회적기여를 이끌어 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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