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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기 볶음을 만들기 위해 삶은 닭을 손질하고 있는 주민들.
 닭고기 볶음을 만들기 위해 삶은 닭을 손질하고 있는 주민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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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때이다. 지금 만끽하지 않으면 곧 닥쳐올 혹독한 추위가 맹렬하게 나의 가슴을 후벼팔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한다.

요즘처럼 난방시설 잘 되어 있는 세상에 혹독한 추위란 어느 정도일까? 겨울을 좋아하면서도 추위에 약한 나는 마트 앞을 지나다가 세일 하는 내복을 보고 얼른 집어 들었다.

문뜩, 내복을 집어 들면서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2009년 1월부터 2년 동안 일했던 서울역 맞은편 동자동이 그곳이다. 

일명 닭장집이라고 했던가. 한 평이 조금 넘는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이 서울의 심장부에 아직도 버젓이 남아있다. 사람들은 이 곳을 '쪽방촌'이라고 부른다. 나도 처음엔 깜짝 놀랐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구나, 아직도 푸세식 공동화장실을 쓰는 곳이구나, 하면서. 나의 뇌리에 박혀 있는 그 주택 구조는 엄청난 이질감을 주었다. 겉으로 내색할 수 없었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이미 그곳 주민들을 만나 그들이 처해 있는 문제를 같이 풀어갈 작정을 하고 일하기로 했으니까.

2년 동안 정말 많은 일을 겪었고 많은 것을 배우고 지금은 그곳을 떠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겨울이 되면 그 곳 사람들이 생각난다. 술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태호형,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 없는 윤미 엄마, 늘 조용히 이일 저일을 돕는 혹부리 할머니 등이 궁금하다.

보일러가 없어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을 나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방 안에 얼음이 얼곤 했던 그 방, 모처럼 수욕을 해 먹는다고 한 평이 조금 넘는 방에 여덟 명이나 모여 무릎을 맞대고 막걸리를 마시던 그 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동자동 사랑방의 '식도락'이라는 공간 이용 반찬 만들어 

주민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반찬이 담긴 도시락 통을 쪽방에 배달했다. 과일도 함께.
▲ 쪽방에 배달된 반찬 주민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반찬이 담긴 도시락 통을 쪽방에 배달했다. 과일도 함께.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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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기도 하고 정들었던 주민도 만날 겸 지난 22일(토), 그곳에 갔다. 마침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반찬나눔' 프로그램이 있는 날이다. 반찬나눔은 내가 일할 때도 했던 프로그램이다. 주민들 대부분이 연로하시거나 몸이 불편한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거기다 쪽방의 특성상 음식을 자유롭게 만들만한 부엌이 없다. 그래서 그 분들에게 반찬을 만들어 배달해 드리는 것이다.

반찬을 만드는 일은 동자동 사랑방의 '식도락'이라는 공간을 이용해서 한다. 식도락은 내가 일할 때 사무실로 쓰던 곳이다. 부엌이 없는 쪽방주민들을 위해 서울시와 지역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공동부엌을 만든 것이다. 사무실은 50m 옆으로 이사를 했다.

식도락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주민들이 모여 한창 반찬을 만들고 있었다. 한 주민은 나를 보자마자 정말 오랜만에 왔다며 반갑게 맞아 주셨다. 가슴이 뭉클했다. 한 때 열정을 가지고 일했던 곳이라 나 또한 반가운 마음이 컸다.

"오랜만에 뵈어요.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그럼 잘 지냈지. 문 국장도 잘 지냈어?"
"그럼요. 오늘은 무슨 반찬을 만드세요?"
"오늘은 닭고기 볶음하고 무나물, 두부 샐러드, 주먹밥, 김치"
"맛있어 보이네요. 저도 도울게요."

인사를 나누며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오후 1시경 시작한 반찬 만들기는 오후 4시가 되어서 끝났고 끝나자마자 바로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러 갔다. 20여명 분을 만든 것이다. 더 많은 주민들에게 반찬을 만들어 나누어 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주민 한 분 한 분과 만나서 안부를 여쭙고 관계를 이어가기가 힘들기 때문에 20명으로 제한했다고 한다.

반찬을 만드는 일부터 나누어 주는 일, 아프고 거동하기 힘든 주민을 보살피는 일까지 모두 주민들 스스로 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일 할 때는 반찬 받는 분들이 많았고 비용을 모두 협찬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이제는 후원금을 모아서 진행한다고 한다. 얼마 전에 페이스 북에서 반찬나눔을 위한 후원금을 모금한다는 글을 보았다. 그 글을 보고 선뜻 후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내친김에 주민 몇 분과 짧은 인터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주민들이 모여 마을 대청소를 한다. 청소후 식도락에서 함께 식사도 하고.
▲ 식도락 프로그램 홍보물 한 달에 한 번씩 주민들이 모여 마을 대청소를 한다. 청소후 식도락에서 함께 식사도 하고.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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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찬을 직접 만들어서 나누어 주니까 어떠세요?
주민 1: "쪽방은 부엌이 없어서 반찬 만들기가 힘들잖아. 그런데 여기서는 반찬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어서 좋아. 1주일에 한 번 반찬을 나누어 주는데 두 번 했으면 좋겠어. 직접 만든 반찬을 나누어 주니까 기분이 좋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지는 3개월 됐어. 난 쪽방에 산지 15년 됐거든. 없이 살지만 월 1만 원씩 후원도 하고 있지. 후원금 모아서 반찬 나눔 프로그램 하는 거니까."

- 그러시군요. 좋은 일 많이 하시네요. 연세가 많으신데(87세) 힘들지는 않으시고요?
주민1: "힘들지는 않아. 앞으로도 계속 할 거구."

- 그래요, 어머님 덕분에 반찬 받으시는 주민들이 좋아하시겠네요.
주민2: "이 일을 한 지는 한 달 정도 되었지. 여럿이 같이 음식을 만들고 나눠 주기까지 하니까 재미있어. 앞으로도 계속 할 거구. 나는 여기에 매일 와서 밥을 해먹지. 우리집은 부엌이 없잖아. 나는 반찬을 받지는 않지만 앞으로는 후원금도 낼 거야." 

- 네, 그러시군요. 예전에 보았을 때 보다 얼굴이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아요.     
주민3: "나는 식도락에서 하는 현미채식 모임에 참여 하면서 이 일을 알게 되었어. 내가 음식을 잘 만드니까 호응이 좋아서 계속 하게 되었어. 걷지 못하고 아프신 분들에게 반찬을 드리기 위해 시작했지. 처음에는 각자 집에서 재료를 가지고 와서 만들었어. 식도락에 재정이 없으니까 재료 살 돈이 없잖아. 그래서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모으기 시작했지.

나는 수급자이지만 월 2만 원씩 후원금을 내고 있어. 이 일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주변에서 오해를 하기 시작 한거야. 어디서 지원을 해줘서 반찬을 만드는 줄 알더라고. 우린 그게 아닌데 말야.

지금은 오해가 풀렸고 앞으로 이 프로그램으로 더 많은 분들이 반찬을 받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쪽방촌 주민들이 자주 식도락에 와서 밥 먹었으면 좋겠고. 쪽방에 있으면 밥 해 먹기도 힘들고 귀찮거든. 무엇보다 혼자 있으면 잘 안 먹게 되잖아. 난 앞으로도 열심히 봉사활동 하면서 살 거야."

반찬 만들기에 참여 하는 주민들은 5명 안팎이다. 인터뷰 하신 분들 뿐만 아니라 모두 즐거운 표정이셨고 뿌듯해 하시는 표정이셨다. 주민들은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란 부양의무자가 없고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정부에서 최저생계비를 지원해 주는 제도이다. 말이 최저생계비이지 이 돈으로 한 달을 살기란 원숭이가 사람이 되는 것보다 어렵다.

식도락 밥값 500원... 주민 스스로 만든 자조 모임

1인 최저생계비는 2014년 기준으로 603,403원이다. 이 돈으로 쪽방 임대료(월 20만 원~30만 원 사이. 좀 넓은 곳은 30만 원이 넘는다.) 내고, 공과금 내고, 세 끼 밥은 겨우 먹고 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어찌 밥만 먹고 살 수 있겠는가. 최소한의 문화생활은 해야 인간이고 최소한의 사교활동은 하면서 살아야 덜 외로운 법인데 이 돈으로 그게 가능할까? 

식도락은 마을 부엌과 마을 도서관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식도락 한 켠에는 주민들과 시민들이 기증한 도서들이 빼곡히 차 있다. 또한, 책임 있는 주민 살림꾼들이 점심을 준비하고 마을 주민들을 초대하여 같이 먹는다. 이때 밥값으로 500원을 낸다. 그 외에도 현미채식모임, 도배장판 깔아주기, 마을 청소 후 식사, 손님 접대 등 각종 소모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주민 스스로 만든 자조 모임이다. 공동체의 역할을 이만큼 훌륭하게 하는 곳도 많지 않은데 내가 나가고 너무 잘되고 있어서 살짝 배가 아프기도 하다.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니다. 가난한 주민들은 정부가 책임지고 먹여 살려야 한다. 가난한 주민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이들을 주눅 들게 해서는 안된다. 한겨울에 얼어죽게 해서도 안된다. 더구나 어떤 이유로든 차별해서는 안된다. 이 당연한 얘기를 나는 왜 하고 있을까? 내 코도 석 자 인데….

겨울이 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쪽방촌 주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함께 밥을 지으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 주민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더불어 함께 사는 이웃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어려운 이웃에게 관심 갖는 것, 한겨울에만 하지 말고 1년 내내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올 크리스마스에는 오랜만에 쪽방에서 수육 삶아 막걸리나 마셔볼까. 좁은방에 꼽사리 끼어 앉으려면 살부터 빼야하나? 그것도 나름 괜찮은 추억인데….

식도락의 활동을 알리고 재정을 돕기위해 홍보 리플렛을 받아왔다. 관심 있는 분들의 후원을 기다리고 있다.
▲ 식도락 리플렛 식도락의 활동을 알리고 재정을 돕기위해 홍보 리플렛을 받아왔다. 관심 있는 분들의 후원을 기다리고 있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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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겨울, #쪽방촌,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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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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