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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의혹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이 27일 오전 자신의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의혹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이 27일 오전 자신의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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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재판이 시작됐다. 27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방법원 320호 법정에서는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허위 기사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측근 정윤회씨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다. 지난달 8일 기소된 이후 49일만이다. 법정은 국내 취재진과 일본 취재진, 각종 보수단체 관계자들까지 몰려 방청석에 발디딜 틈이 없었다.

준비기일임에도 검찰과 변호인단 양 측은 팽팽했다. 검찰은 '가토 전 지국장이 마치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과 정씨가 함께 있었고 긴밀한 남녀관계인 것처럼 허위 기사를 작성해 두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보도 내용이 허위일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사실관계 확인 노력을 하지 않아 고의성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변호인단은 '기사 내용이 거짓임을 아직 단정할 수 없고, 거짓이라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했으며, 비방 목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설사 거짓이라 하더라도 당시로서는 사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고, 보도 목적이 한국 대통령의 레임덕 조짐을 일본 독자들에게 알리는 공익적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입증 책임을 놓고도 양쪽은 서로 갈렸다. 검찰은 없는 사실을 마치 있는 것처럼 보도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입증을 가토 전 지국장 측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변호인은 핵심은 비방 목적이 있었느냐이므로 당연히 검찰에서 입증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또한 반의사불벌죄인 명예훼손죄의 성립 요건을 놓고 변호인은 피해자로 적시된 박 대통령의 처벌의사 확인이 부족하다고 주장했고, 검찰은 청와대 홍보수석의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발언(8월 7일)으로 충분하다고 맞섰다.

이렇게 사안마다 쟁점이 형성되며 향후 치열한 다툼을 예고했다. 하지만 정작 이 재판에서 제일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법정 안이 아니라 밖에 있다.

반의사불벌죄의 특징

재판에서도 언급됐다시피, 명예훼손은 대표적인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다. 이번 사건에서 검찰이 피해자로 지목한 사람은 박 대통령과 그의 측근인 정씨 두 사람이다. 만약 수사 단계에서 두 사람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면 기소 자체가 되지 않았겠지만, 일단 기소돼 재판이 시작됐다 하더라도 그런 의사를 밝히면 공소가 기각된다.

단, 기한은 1심 판결 전까지다. 만약 1심 판결이 나온다면, 그 이후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더라도 정상참작 사유가 될 뿐 공소기각 사유가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1심 판결 전까지 박 대통령이 구체적인 의사를 밝힐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이번 사건은 보통 명예훼손 사건이 아니다. 양쪽 당사자가 한쪽은 대통령이고 한쪽은 외국 언론의 기자다. 유무죄 여부를 떠나 기소 자체가 대단히 이례적이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논쟁과 외교적 갈등을 촉발시켰다. 청와대로서는 재판에서 지면 말할 것도 없고, 설사 이겨도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또한 법리적으로 볼 때 허위사실이라 하더라도 상당성과 공익성을 넘어 유죄가 나오기가 쉽지만은 않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통상적으로는 직접 법정에 출두해 판사 앞에서 진술하지만, 그게 힘들 경우 인감증명을 첨부해 서면으로 제출해도 인정된다.

박 대통령의 선택

박근혜 대통령. 사진은 지난 10월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5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박근혜 대통령. 사진은 지난 10월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5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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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두 명이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처벌 불원 의사를 밝히고, 정씨는 처벌을 원할 수도 있다. 그러면 공소사실 중 박 대통령의 명예훼손 부분은 기각되지만, 나머지 정씨에 대한 공소사실은 살아있기 때문에 재판 자체는 계속된다. 이러면 박 대통령의 부담은 다소 덜 수 있다. 그러나 이럴 경우 정씨가 박 대통령의 측근 중 측근임을 감안할 때 꼼수라는 비난을 피하기는 힘들다.

가토 전 지국장의 변호인 측도 이런 사건의 특성을 충분히 감안해 재판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초 13일로 잡혔던 첫 번째 공판준비기일이 27일로 연기된 것도 변호인 측의 신청 때문이다. 재판을 최대한 오래 끄는 목적이 엿보인다. 또한 아직 확정적으로 신청하지는 않았지만, 첫 준비기일에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증인으로 부를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최대한 청와대를 힘들게 하겠다는 전략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전략에서 가토 전 지국장이 힘든 점은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지연된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 8월 이후 계속 출국 정지 상태다. 변호인 측은 법정에서 재판장에게 출국 정지 해제를 법무부에 건의해줄 것을 요청했고, 검찰은 "현재 1월 15일까지 출국 정지 상태인데, 그 이후 계속 연장할지 여부는 재판 진행 상황에 따라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키는 박 대통령이 쥐고 있다. 일단 재판은 시작됐다. 박 대통령은 이 재판을 끝까지 갈 것인가, 아니면 중간에 끝낼 것인가. 혹은 자신만 빠지고 정씨만을 내세울 것인가. 아직 박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의사를 직접 밝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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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근혜 대통령, #카토 타쓰야, #산케이신문, #정윤회, #명예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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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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