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0월 17일 부산 고리 핵발전소 인근 주민 이아무개씨 가족이 한국수력원자력㈜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은 장기간 방사선 노출로 인해 갑상선암을 앓게 된 부인 박아무개씨에게 1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번 판결은 지역 주민의 갑상선암 발병에 핵발전소의 책임이 있다고 인정한 최초의 판결입니다.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의 대표 김영희 변호사의 비평문을 통해 이번 판결의 쟁점과 의의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는 3일 오전 부산고등법원 앞에서 고리원전 방사선 피해자 공동소송 진행 계획 등을 알리고 암 발병에 대한 한국수력원자력의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는 3일 오전 부산고등법원 앞에서 고리원전 방사선 피해자 공동소송 진행 계획 등을 알리고 암 발병에 대한 한국수력원자력의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정민규

관련사진보기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은 2014년 10월 17일 고리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인 이아무개씨 가족이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이하 한수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인근 주민 원고 박아무개씨의 갑상선암 발병에 대해 '박씨는 핵발전소 부근에 거주하면서 상당한 기간 핵발전소에서 내보내는 방사선에 노출되었고, 그로 인하여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한수원은 방사선 방출로 인하여 박씨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였다.

법원이 평상시 핵발전소에서 배출되는 방사선으로 인한 암 발병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이 판결은 매우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환경단체들은 즉각 추가소송을 제기하기 위한 원고 모집에 들어갔다. 그동안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이 유난히 각종 암과 질병에 시달린다는 것은 주민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소제기까지 한 경우는 없었는데 이번 판결을 통하여 한수원의 책임이 확인된 것이다.

핵발전소에서 평상시에 액체, 기체 형태의 방사성폐기물을 배출한다는 것은 한수원이 공식적으로 홈페이지에서 발표하고 있는 사항이기 때문에 결국 여기서 나오는 방사능으로 인하여 인근 주민이 암에 걸렸다고 할 수 있는가, 즉 '인과관계'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원고 박씨는 1996년 3월 30일부터 현재까지 고리핵발전소에서 약 7.6㎞ 떨어진 지역 및 그 부근에 거주하여 왔고, 2012년 2월경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갑상선암의 가장 중요한 위험요인은 치료적 방사선 노출과 환경재해로 인한 방사선 노출이며, 노출된 방사선 용량에 비례하여 위험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학교 의학연구원 원자력영향·역학연구소에서 2011년 4월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한 '원전 종사자 및 주변지역 주민 역학조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원자력발전소에서 거리가 멀수록 갑상선암 발생률은 감소하였으며, 핵발전소 주변지역(핵발전소에서 5㎞ 이내) 여자 주민의 갑상선암 발병률은 원거리 대조지역(핵발전소에서 30㎞ 이상 떨어진 지역) 여자 주민의 2.5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과 부산 기장군은 공동으로 2010년 7월경부터 2013년 12월경까지 '기장군민 건강증진사업'의 일환으로 기장군민 4910명을 대상으로 종합건강검진을 실시하였는데, 위 기간 동안 암 검진을 받은 기장군민 총 3031명 중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주민은 41명이었다. 한편,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의 암 진단율(대장암, 폐암, 전립선암 등 모든 종류의 암 포함)은 1.06%, 삼성서울병원은 1.04%이다.

'한수원은 방사선 방출로 박씨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한수원은 방사선 방출로 인하여 원고 박씨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였다.

① 갑상선암의 발생에는 방사선 노출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점.

② 한수원은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서 총 6기의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원고 박씨는 그로부터 약 10㎞ 이내 또는 10㎞ 남짓 떨어진 지역에서 20년 가까이 거주하여 오면서 방사선에 장기간 노출되어 온 것으로 보이는 점.

③ 원고 박씨의 갑상선암 발생에 고리핵발전소에서 방출된 방사선 외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볼 뚜렷한 자료는 없는 점.

④ 고리핵발전소에서 방출된 연간 방사선량(제한구역 경계 기준)은 원자력안전법 시행령 제2조 제4호, 별표 1에서 규정한 연간 유효선량한도(1mSv), 원자력안전위원회 고시 제2012-29호 제16조 제2항 제2호에서 규정한 제한구역 경계에서의 연간 유효선량(0.25mSv)에 미치지 못하고, 핵발전소 주변지역 주민 역학조사 결과 갑상선암과는 달리 위암, 간암, 폐암은 핵발전소로부터의 거리와 발병률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조사되기는 하였으나, 관련 법령에서 정한 연간유효선량은 국민 건강상 위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정한 최소한도의 기준으로서, 인체가 노출되었을 경우 절대적으로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수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점.

⑤ 핵발전소 주변지역 주민 역학조사결과 근거리 대조지역인 핵발전소에서 5㎞ 이상 30㎞ 떨어진 지역에서도 원거리 대조지역에 비하여 1.8배의 높은 갑상선암 발병률을 보이고 있고, 원고 박씨가 거주해온 지역이 고리핵발전소의 방사선 유출 영향을 받지 않는 지역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점.

⑥ 다른 암과는 달리 갑상선암의 경우에 핵발전소로부터의 거리와 발병률 사이에 상과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된 점.

⑦ 원고 박씨가 침해당한 이익은 신체의 건강과 관련된 것으로서 재산상 이익 기타 다른 이익보다 중요할 뿐 아니라 공공의 필요에 쉽게 희생되어서는 안 되는 법익인 점 등에 비추어, 원고 박씨는 핵발전소 부근에서 거주하면서 상당한 기간 핵발전소에서 내보내는 방사선에 노출되었고, 그로 인하여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고 봄이 상당한 점.

위 판결은 핵발전소의 평상시 가동 중에 배출되는 방사능으로 인한 갑상선암 발병을 인정한 첫 사례로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그러나 환경소송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사건 판결은 전통적인 입장에 충실한 판결이지 이례적 판결이 아니다.

국제암연구소, 방사선을 I등급에 해당하는 발암물질로 규정

고엽제소송이나 대기오염소송에서 대법원은 특이성질환의 경우 역학조사의 상관관계만으로도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비특이성질환의 경우에는 개연성을 증명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는데, 갑상선암의 경우 사실상 특이성질환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방사선을 I등급에 해당하는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으며, 특히 갑상선암은 방사능과 매우 관련성이 높다는 것이 국제적으로 학계에서는 기정사실화 되어 있다. 미국암학회(ACS)와 대한갑상선학회, 국립암센터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는 방사선 노출을 갑상선암의 주요한 원인인자라고 지목하면서 노출된 방사선량이 증가하거나 노출연령이 어릴수록 발병 위험도가 증가한다고 발표했다.

갑상선암이 비특이성 질환이라고 하더라도, 위 판결은 고엽제소송, 대기오염소송 판결에서 비특이성 질환의 경우 증명할 것을 요구한 개연성의 모든 요소가 증명되었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역학조사 결과만으로 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이 아니고, 개인이 위험인자에 노출된 시기와 노출 정도, 발병시기, 그 위험인자에 노출되기 전의 건강상태, 생활습관, 질병 상태의 변화, 가족력 등 고엽제소송이나 대기오염소송에서 대법원 판결이 지적한 '개연성'의 모든 구성요소를 빠짐 없이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사건 판결은 향후 2심, 3심에서도 원고 승소 판결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한다.

위 역학연구를 주도했던 서울대 의대 안윤옥 명예교수는 "해당 연구는 통계적인 유의성을 밝힌 것일 뿐 원전의 방사선 노출과 갑상선암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까지 입증한 것은 아니다"라며 법원이 보고서의 내용을 충분히 해석하지 못한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안 교수의 이러한 발언은 손해배상소송에서 입증이 요구되는 인과관계가 의학적, 자연과학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법적인 판단의 문제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 잘못된 의견이다. 손해배상소송에 있어서 인과관계는 '현실로 발생한 손해를 누구에게 책임을 부담시킬 것인가'를 가리기 위한 개념이므로 자연과학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법관의 자유심증에 의하여 얻어지는 확신에 의하여 얻어지는 법적 판단의 영역인 것이다.

핵발전소 가동이나 사고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소송에서는 핵발전소와 관련한 거의 모든 정보가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 한수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관련 기관이 그나마 공개하는 정보들도 객관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아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 그동안 핵발전소와 관련하여 드러난 여러 비리나 범죄사건들을 보면 은폐, 축소, 조작이 만연했다는 점, 핵발전소로 인한 피해의 광범위성과 장기간에 걸친다는 점 등에 비추어 핵발전소 관련 손해배상소송의 경우 일반 환경소송보다 훨씬 입증책임을 완화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법원에서는 역학적 인과관계론을 수용하고, 입법론으로는 원자력손해배상법에서 독일 환경책임법과 같은 인과관계의 추정 규정을 둘 것을 제안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판결비평 사업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참여연대 블로그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태그:#고리, #핵발전소, #갑상선암, #한수원
댓글

참여연대는 정부, 특정 정치세력, 기업에 정치적 재정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2004년부터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지위를 부여받아 유엔의 공식적인 시민사회 파트너로 활동하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