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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3일 이집트 정부는 '무르시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판사 56명에 대해 자격정지처분을 내렸다. 또한 미얀마(버마) 군사정권은 2009년 5월 18일, 아웅산 수지를 만나기 위해 잠입한 미국인과 아웅산 수지 여사를 기소하고, 이들의 변호를 신청한 아웅 테인 변호사의 자격을 박탈하였다.

국제적으로 민주주의가 요원하고 권력이 독재화 된 국가에서 양심수와 정치범을 비호하고 사법정의를 부르짖는 변호사들은 징계와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 과거 군부독재시절에나 있을 법한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였다.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검찰의 민변 회원 징계신청에 따른 기자회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검찰의 민변 회원 징계신청에 따른 기자회견
ⓒ 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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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민변 소속 회원 7명(권영국, 이덕우, 송영섭, 김태욱, 김유정, 장경욱, 김인숙)에 대한 징계 개시 신청을 대한변호사협회(아래 대한변협)에 하였다. 검찰이 밝힌 징계 신청 이유는 다음과 같다.

권영국 변호사는 2013년 7월 대한문 앞에서 경찰들을 밀치고 상해를 입혔고, 이덕우, 송영섭, 김태욱, 김유정 변호사는 동일한 시기에 경찰 간부를 체포하고 상해를 입혔으며, 장경욱 변호사는 간첩사건 피고인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종용했다. 마지막으로 김인숙 변호사는 시위 참가 피고인(당시는 피의자)에게 '적극적'으로 진술을 하지 못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고 있는 자타공인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다. 전직 대통령의 운명도 본인들에 의해 좌지우지 될 정도다. 이런 검찰이 재판상 상대 측인 대한변협에 징계를 신청하였다. 이미 권영국 변호사를 비롯한 5명의 변호사는 불구속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참으로 어이없고 터무니없이 느껴진다.

그런데 징계절차를 조금만 세밀히 따져보면 검찰의 의중이 파악된다. 절차상 대한변협에서 어떠한 징계 심사 결정이 나온다 해도 이 결정에 대해 징계개시 신청인인 검찰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법무부 징계위원회에서 이 사안을 다시 다루고, 자체 징계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법무부 징계위원회는 전체 위원 9명 중 6명이 법무부(법무부장관, 검사2명, 법무부장관 임명 3명) 측 사람들이다.

대한변협에서 검찰에 불리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최종적으로는 법무부에서 징계할 수 있기 때문에 변협 징계 신청은 검찰에게 꽤 괜찮은 수단이다. 또 검찰은 징계조사 및 심사, 법무부에서의 심의 그 지난한 과정을 보수언론을 통해 알릴 것이다. 그러면 본인들이 목적하는 바를 충분히 이룰 수 있다는 계산이 이미 있었을 것이다.

더 심각하게 우려되는 것은 따로 있다. 언론에 따르면, 이 시기에 검찰이 '애국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국가안보를 위해 검찰의 압수수색 요건이 완화되고, 위법하게 취득한 증거(도청 등)도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는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려는 것이다. 결국 민변 변호사들에 대한 검찰의 징계 신청은 누구나 보장 받아야 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무력화시키기 위함이다.

민변 변호사 일부가 불구속 기소되었지만 이미 경찰의 부당한 집회방해 및 권한 남용에 따른 정당한 대응이었음이 서울지방변호사회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또 피의자에 대해 묵비권 행사 및 진술에 대한 변호인의 조력은 굳이 국제 인권기준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국내 헌법상의 권리이다. 그렇기에 이번 검찰의 징계신청은 부당하다 못해 왜 검찰이 전면적인 개혁의 대상인지를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조금 우려스러운 것은 보수언론과 종편이다. 이들은 연일 민변에 대한 흠집내기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 변호사가 경찰을 폭행하고 심지어 연행하였으며, 간첩이 명백하고 범법자가 확실한데도 변호사가 허위진술과 묵비를 강요했다고 계속 강조하고 있다. '민변은 나쁘다'라는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각인하는 작업을 하는 듯하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먹힐 것이다. 당분간 민변 앞에서 보수 어르신들이 꽤 시끄럽게 집회하며 민변 사무처를 괴롭힐 것 같다. 역사적으로 변호사에 대한 권력의 부당한 탄압은 인권변호사를 탄생시키고 다수의 국민들이 지지하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민변을 포함한 여러 인권시민단체들은 이번 징계의 부당함을 널리 알리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 검찰에 의한 공안정국 조성 및 애국법 제정 시도를 막아낼 것이다. 이 와중에 안타까운 것은 검찰의 월급을 우리 국민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세금 내는데 이 돈이 너무 아깝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이동화 기자는 민변 국제연대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인권연대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민변, #검찰, #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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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아디(ADI)에서 상근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디는 아시아 분쟁 재난지역에서의 피해자와 현장활동가와 함께 인권과 평화를 지키는 활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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