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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쁠 희(喜)는 윗부분의 북 고(鼓)와 아랫부분의 입 구(口)가 결합되었다. 북을 여럿이 모여 치면서 입으로 기쁘게 노래한 것에서 ‘기쁘다’는 의미가 추론된 걸로 보인다.
▲ 喜 기쁠 희(喜)는 윗부분의 북 고(鼓)와 아랫부분의 입 구(口)가 결합되었다. 북을 여럿이 모여 치면서 입으로 기쁘게 노래한 것에서 ‘기쁘다’는 의미가 추론된 걸로 보인다.
ⓒ 漢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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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北宋) 시대 문인인 왕안석(王安石)이 젊은 시절 과거를 보기 위해 당시 수도였던 카이펑(開封)으로 가던 길이었다. 어떤 마을을 지나는데 집 대문에 "주마등 불이 켜지니 말이 달리고, 등불이 꺼지니 말도 걸음을 멈추네(走馬燈, 燈馬走, 燈熄馬停步)"라는 대련(對聯) 문구가 붙어 있었다. 알고 보니 마(馬)씨 집안에서 이 상련(上聯)과 가장 잘 어울리는 하련(下聯)을 짓는 사람에게 딸을 시집보내기 위함이었다.

왕안석은 과거 시험을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관청에 비호(飛虎) 깃발이 걸려 있는 걸을 보고, 문득 대문에 붙은 글귀와 잘 어울리는 글귀가 떠올랐다. 돌아가는 길에 그 집에 들러 "비호기의 깃발이 휘날리니 호랑이가 날고, 깃발을 접으니 호랑이도 몸을 숨기네(飛虎旗, 旗虎飛, 旗卷虎藏身)"라는 글귀를 적으니, 그 집의 주인 마원외(馬員外)가 왕안석을 사위로 맞이한다. 왕안석이 결혼하던 날, 마침 그가 과거에 급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니 기쁜 일 두 가지가 겹쳐 찾아온(雙喜臨門) 셈이었다.

왕안석은 이를 기념해 기쁠 희(喜) 두 개를 겹쳐 쓴 희(囍)자를 써서 집안 곳곳에 붙였는데, 이후 결혼식과 같은 경사에 이 글자를 붙이는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왕안석(王安石)이 고안해낸 희(囍)는 비록 사전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지만, 중국인의 경사에 언제나 초대되는 소중한 특수문자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인들은 결혼을 일생의 가장 큰 일(終身大事)로 여기는데, 결혼식 날 신랑 신부가 하객들에게 나눠주는 사탕을 희당(喜糖), 술은 희주(喜酒), 담배는 희연(喜煙)이라고 부른다. 모두 일생의 기쁨을 함께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쁠 희(喜, xǐ)는 윗부분의 북 고(鼓)에서 오른쪽의 북채를 든 손 부분(支)이 빠진 형태와 아랫부분의 입 구(口)가 결합되었다. 가장 오래된 악기 중의 하나인 북을 여럿이 모여 치면서 제사나 주술 의식에서 입으로 기쁘게 노래한 것에서 '기쁘다'는 의미가 추론된 걸로 보인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 행복해진다는 말처럼 불안한 미래일지라도 여럿이 함께 노래하며 맞이하니 기쁜 마음이 된다는 의미로 보인다.

기쁨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喜從天降)이 아니라 스스로 준비하고 만드는 것이다. 기쁨을 빚는 과정에서 때로 화도 내고 슬픔도 견디며 그래도 즐겁게 버티는 것이 희로애락(喜怒哀樂)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까치와 까마귀가 동시에 우는 것처럼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굳이 울상을 하며 슬픔을 향해 고개 숙일 필요는 없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는 것처럼 북을 함께 치며 기쁜 마음을 갖는 것이 곧 기쁨을 불러오는 길이 아닐까.


태그:#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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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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