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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교육청 인터넷 누리집에 올린 학생들의 글이 눈물겹다.
▲ . 경기도교육청 인터넷 누리집에 올린 학생들의 글이 눈물겹다.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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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로 교문 앞에서 학생 잡을 시간에 학교폭력이나 더 신경 써 주셨으면 합니다."
"백 번 양보해서 교문 앞에서 학생 잡고 추운 날 외투를 빼앗아 교실에서 벌벌 떨게 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해도 왜 외투 속에 마이를 꼭 입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학교에서 겉옷의 색깔을 남색, 검은색만 입으라고 하는데 금전적 부담이 있고 이런 교칙 이해가 안 갑니다."

"치마를 입자니 스타킹은 얇고 무릎담요는 외관상 좋지 않다고 하는데 이렇게 추운 날 치마만 입고 다니니 정말 춥습니다. 그렇다고 체육복 바지를 입자니 남겨서 깜지를 쓰거나 벌을 서곤 합니다. 벌점제도 없어진 이후 깜지 쓰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추운 겨울에 (치마 안에) 체육복 바지 입는 것 허용부탁드려요."
"고등학교 마지막 학교생활을 추위 때문에 고통스럽게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따뜻하게 히터를 틀어주신다면 교실 안에서 깔끔하게 교복만 착용하고 있겠습니다."

이제 완연한 겨울, 제대로 추위와 한판 붙어야 하는 철이 되었다. 그러나 춥지만 결코 추워해서는 안 되는 곳이 있다. 아무리 추워도 외투를 입어서는 안 되고, 그 외투가 알록달록 화려한 원색이어서는 더더욱 불가하다. 바로 대한민국 학교이야기다.

위에 소개한 내용들은 모두 경기도교육청 인터넷 누리집에 학생들이 올린 글이다. '교문지도'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외투를 단속하고 빼앗는 학교에 대한 원망이다. (교문지도는 2010년 경기도교육청이 단속 중심의 생활지도 대신 인권중심의 교육을 한다며 폐지했으나 사실상 거의 모든 학교에서 '등교맞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겉옷(외투)의 색깔까지 제한하는 부당함, 치마 안에 체육복 바지라도 입어서 추위를 견딜 수 있게해 달라는 여학생의 하소연에 이어 교실만이라도 충분히 따뜻하게 해주면 학교가 그토록 바라는 교복을 깔끔하게 입고 앉아 고등학교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고3생의 소망까지 학생들의 하소연이 눈물겹다.

여학생들은 치마 안에 체육복 바지라도 입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하소연한다.
▲ . 여학생들은 치마 안에 체육복 바지라도 입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하소연한다.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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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로 접어들면서 중·고교마다 춘추복에서 동복으로 교복을 바꿔 입었다. 말은 동복이지만, 정장 스타일의 양복 바지와 재킷, 치마 등으로 된 그것만 '달랑' 입고는 겨울 추위를 견디기에 무리다.

아무리 피가 끓는 1318 청춘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교복 위에 겨울 외투를 입고 다닌다.

그런데 바로 그 외투를 입고 아침에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일은 벌어지고야 만다. 교문을 지키고 선 학생부장 교사에게 압수당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외투 안에 교복 재킷을 안 입었거나, 외투의 색깔이 빨강, 파랑, 노랑 등의 알록달록하고 예쁜 원색 계열인 탓이다.

대한민국 학교는 학생들의 외투뿐만 아니라 '색'도 미워한다. 세상은 초고화질(UHD)의 형형색색을 자랑하지만 학교는 아직 흑백시대다. 검거나 회색이거나 우울하고 우중충한 색은 그나마 넘어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등교 불가, 입장 불가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오라고 명령하는 학교(교사)들도 있다. 빼앗긴 외투는 벌점에 모진 욕을 실컷 듣고 두번 다시는 입고 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후에야 돌려받거나 아예 졸업할 때 주겠다며 압수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해마다 겨울이면 학교마다 '외투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학교가 추워도 너무 춥다는 데 있다(여름에는 더워도 너무 덥다). 교복은 그런 추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옷이다. 대한민국 학교는 대체로 교실(특별실 포함)과 복도, 운동장이 전부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거의 하루 종일을 보내는 교실에는 에어컨과 히터 기능을 함께 지닌 냉난방기가 있고, 에어컨을 안 틀어주는 여름 대비용 선풍기 두서너 대가 있거나 없기도 하다.

복도는, 그냥 벌판이다. 운동장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다만 벽이 있어 실내와 실외를 나눌 뿐이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그나마 교실이 조금 낫기는 하지만 학교는 어디든 춥다.(어김없는 여학생들의 '무릎담요'는 이미 10년도 더 된 겨울철 학교 풍경이다).

그러니 겨울이 되면 학생들은 교복 위에 외투를 입고 학교에 오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교가 이 외투를 허용하지 않거나 매우 희한한 방식으로 허용하고 있다. 외투 착용을 허용하지 않는 학교는 학생들이 외투를 입고 오면 교문에서 압수를 하거나 징계를 주는 것으로 해결한다.

외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학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외투의 색깔을 검정이나 회색 등의 무채색 계열로 한정하고 원색 계열은 못 입게 하고, 교실이나 복도에서는 벗도록 하고 있다. 교실과 복도는 모두 '실내'이므로 겉옷인 외투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실이 춥다보니 겨울에는 무릎담요를 온몸에 두르고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많다.
▲ 무릎담요를 온몸에 덮고... 교실이 춥다보니 겨울에는 무릎담요를 온몸에 두르고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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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보태어서 교복 재킷을 입지 않고 외투를 걸치면 그 역시 문제가 된다. 학교 입장에서 볼 때 '규정대로 교복을 안 입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학생들은 정장 스타일의 재킷을 입고 그 위에 외투를 입으면 팔이 끼고 뻣뻣해서 '로봇이 된다'며 불편함을 호소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학교는 규정을 들이밀며 '불가'와 '징계'를 앞세우고, 교사에 따라서는 외투를 압수해서 돌려주지 않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거의 모든 중고교의 교복이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정장 스타일의 바지와 재킷이거나 치마와 재킷이다 보니 학생들의 활동성을 제약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듯해 보일 수 있지만 한창 몸으로 움직이며 활동하는 학생들에게는 잘 안 맞는 스타일인 것이다.

이 같은 학생들의 사정을 고려하고 냉난방 대책에서 사실상 소외 지역인 학교 상황을 감안해 겨울철 외투만이라도 자유롭게 입게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까. 교복을 규정대로 입었느니 안 입었느니의 시비로, 외투 색깔이 너무 화려하다거나 원색이라는 말 같지 않은 규정을 들이밀면서까지 학생들의 외투를 빼앗아서 학교가 얻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전교생이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색의 외투를 입으면 학교가 망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몇 년 전 겨울 핀란드에 다녀왔다. 방문하는 건물이나 학교마다 입구에는 옷걸이가 마련돼 있었다. 내부인이나 방문객을 가리지 않고 모두 외투를 벗어 걸도록 마련해놓은 것이다.

겨울에는 영하 40~50도까지 내려가는 워낙 추운 나라인데도 실내에서는 어김없이 외투를 벗어야했다. 헬싱키 시의 한 종합학교(우리나라 초등~중학교)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실내로 들어서는 순간 복도며 교실이 하나같이 훈훈했다. 외투 없이도 충분히 지낼만한 실내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외투 색깔도 다양했다. 부러웠다.

핀란드는 교실과 복도 모두 냉난방이 완전하고 건물 입구에는 외투를 벗어 걸어놓을 수 있는 옷걸이를 마련해 두고 있다.
▲ 핀란드의 종합학교 핀란드는 교실과 복도 모두 냉난방이 완전하고 건물 입구에는 외투를 벗어 걸어놓을 수 있는 옷걸이를 마련해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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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나라 학교의 현실을 보면 겨울왕국, 얼음나라다. 꽁꽁 얼어있다. 그마저도 학생들은 외투조차 편히 마음대로 입을 수 없는 상황이다. 외투의 색깔을 두고 징계 운운하며 압수를 하고, 외투 안에 교복 재킷을 입었네 안 입었네를 가지고 학생들과 씨름하는 우리 현실은 함량 미달의 블랙코미디다.

당장 학생들이 교실과 복도 모두 외투 없이도 다니며 생활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기온이 아니라 벽으로 실내․외를 구분 짓는 우스꽝스러움도 당분간 학교에서 유지될 것 같다. 상황이 이런데도 겨우 겉옷, 외투 하나 가지고 현실성 없는 규정을 무기삼아 학생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학교(교사)는 얼마나 더 추워져야 하는 것일까.

때문에 경기도교육청 누리집에 글을 올린 학생들의 이야기는 모두 아프고 춥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학생들 의견을 따라 9시 등교를 밀어붙였고, 지금도 학생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소통하겠다며 학생들과 토크쇼를 벌이고 있다. 그가 이 추운 학생들에게는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태그:#학생인권, #경기도교육청, #이재정, #교문지도, #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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