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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광문고에서 도서정가제 시행을 이유로 지난 11월 24일자로 받은 공급율 인상 공문. 기존에 비해 5%씩 올리겠다는 내용이다.
 불광문고에서 도서정가제 시행을 이유로 지난 11월 24일자로 받은 공급율 인상 공문. 기존에 비해 5%씩 올리겠다는 내용이다.
ⓒ 불광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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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인해 매입율 인상되어 부득이하게 25(화) 출고율이 인상됨을 아래와 같이 알려드리오니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동네서점인 불광문고에는 지난 24일 한 장의 공문이 도착했다. 도서정가제 시행과 함께 도서 공급가를 기존보다 5%씩 올리겠다는 내용이었다.

현재까지 이 서점에 공급가를 올리겠다고 통보한 출판사는 총 4곳. 장수련 불광문고 실장은 "앞으로 공급가를 올리겠다는 출판사가 더 늘어날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안 그래도 어려운 동네서점 입장에서는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고 말했다.

중소서점 활성화를 취지로 도입된 새 도서정가제 시행 첫주부터 출판사들의 도서 공급률 인상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이 제도가 반어적으로 중소서점의 목을 죌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출판계 관계자들은 "공급율을 올리겠다는 출판사가 많아지면 협상력이 떨어지는 중소 서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유통사 "도서정가제로 할인 폭 줄고 서점 이익 늘어나"

국내에서 유통되는 도서들은 크게 두 종류의 가격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책 겉면에 인쇄되는 정가, 다른 하나는 출판사에서 도·소매상에 공급할 때 받는 공급가다. 정가는 동일하지만 공급가는 책마다, 공급처마다 제각각이다.

공급율이란 정가 대비 공급가의 비율을 말하는데 여기에 도서 할인율과 신용카드 수수료율 등 부대비용을 합쳐 계산하면 서점에서 남기는 이익율을 구할 수 있다. 공급율은 서점 할인비율 등 판매 조건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출판사와 서점이 합의하는 방식으로 정해진다.

지난 21일부터 실시된 개정 도서정가제는 출판시장 할인 경쟁으로 중소 서점들의 폐업이 속출하자 판매처를 불문하고 책 할인율을 정가의 15% 이하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제도다. 공급율 5% 인상을 통보한 곳들은 그 이유를 묻자 이 지점을 지목했다. 도서정가제로 책값 할인을 이전보다 덜 하게 됐고, 서점이 그만큼 이전보다 돈을 더 벌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용도서 전문 출판사인 영진닷컴은 정가제 시행 이후 모든 도서 공급가를 5% 올렸다. 지역 중형 서점인 불광문고 기준으로 70%였던 공급율이 75%가 됐다. 그러나 일선 중소서점들이 심하게 반발하자 중간 유통사가 마진율 감소를 감수하고 70%에 공급 중이다.

아동 도서로 유명한 삼성출판사는 서울 서부 지역 판매를 담당하는 중간 유통사가 나서서 이 지역에 공급되는 일부 도서의 공급율을 65%에서 70%로 올렸다. 불광문고 역시 이 지역에 포함돼 있다.

이 유통사 관계자는 "도서정가제로 서점 이익이 늘어난 반면 재정가도서 등장으로 유통사 이익은 줄었다"면서 "각 서점의 양해를 받고 올린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장 실장은 "공급율 인상에 앞서 공문이나 통보 받은 적이 없다"면서 "현재 70%에 들어온 책은 반품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잔칫날이라고 엉뚱한 집에 와서 숟가락 들이대는 것"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불광문고.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불광문고.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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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서점 업주들은 이런 논리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전반적으로 책값 할인율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새로 시행된 도서정가제 내용을 따져보면 사실상 온라인 서점에 유리하기 때문에 중소서점 손님 자체가 줄어들기 쉽고, 이전보다 나은 수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마포구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김국인(가명)씨는 "새 도서정가제에서도 여전히 대형 온라인 서점이 할인폭이 더 크기 때문에 중소 서점은 책 팔기 어렵다"면서 "잔칫날이라고 엉뚱한 집에 와서 숟가락 들이대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공급율을 5% 올리면 당장 문닫아야 하는 동네서점이 수두룩하다"고 덧붙였다.

중형 서점인 불광문고의 경우 대학교재류 도서의 공급율은 85%, 어학교재는 80%이다. 인문·수험·기술서는 정가의 75%, 아동도서는 65%의 가격에 책을 가져온다. 일부 책은 정가 그대로에 책을 떼어와 파는 경우도 있다.

영세 서점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참고서류도 동네에 들어올 때는 대부분 공급률이 75% 이상이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찾는 EBS 교재의 경우 반품이 안 되는 조건인 80%에 들어오기도 한다. 장수련 실장은 "자체할인 10%와 카드 결제 수수료를 감안하면 10000원짜리 EBS 교재 팔아서 670~770원 정도가 남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종로구에서 소형 서점을 운영하는 이철희(가명)씨는 "불광문고 정도 되면 그래도 형편이 나은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규모가 작은 서점들은 더 수익구조가 열악하다는 것이다.

이씨는 "도서정가제 시행 전부터 공급율 인상 얘기가 있었는데 이렇게 빨리 올지는 몰랐다"면서 "이제 출판사들이 하나둘 눈치보면서 공급율을 따라 올리면 동네 서점은 문 닫을 일만 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서점을 살리자며 도입된 제도가 적절한 수정·보완이 없다면 취지와는 달리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출판사들 공급율 따라 올리면 동네 서점 폐업 속출할 것"

26일 <오마이뉴스>가 출판사 공급율 인상 문제에 대해 취재에 나서자 일부 출판사에서는 날선 반응을 보였다. 자신들이 동네 서점만 골라서 공급율을 올리는 것도 아닌데 취재 대상이 되는 것이 불쾌하다는 것이다.

지난 24일 공급율을 인상한 한 실용서 출판업체 대표 오지건(가명)씨는 "우리는 직원이 총 2명에 책은 여태껏 4종 발행한 소규모 출판사"라면서 "저희도 먹고살아야 할 것 아니냐"고 답했다. 그는 "그간 주요 온라인 서점들이 이 업체의 실용서 할인율을 25~30%에 가깝게 높게 책정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헐값에 책을 공급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오 대표는 "서점들이 이전처럼 할인을 많이하지 않으니 공급율을 올려달라는 것"이라면서 "대형 온라인 서점과 동네 서점 모두 동일하게 공급율을 올렸고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출판사 관계자는 이에 "출판사가 대형 서점과 중소 서점 모두 동일하게 공급율 인상 요청을 한다고 해도 공급율이 동일하게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공급율 계약은 출판사와 서점 간 합의로 정해지기 때문에 암묵적인 힘싸움과 갑-을 관계가 작용하는데 중소 서점에는 대형 서점만큼의 협상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민음사나 문학동네 같은 정말 큰 출판사가 아니면 대형 서점이 정해주는 공급율을 그냥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 "어떻게든 공급율이 오르면 그 피해는 대형 서점보다는 대부분 중소 서점들에게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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