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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지난 1일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정부합동분향소 앞에서 진행된 세월호참사 200일 추모식에서 발언하고 있는 유경근 대변인의 모습이다.
▲ 예은이아빠 유경근 대변인 사진은 지난 1일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정부합동분향소 앞에서 진행된 세월호참사 200일 추모식에서 발언하고 있는 유경근 대변인의 모습이다.
ⓒ 강희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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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조용해 보인다. 적어도 세월호와 관련해서, 지금은 그렇다. 세월호는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며, 대형 포털사이트에서 '특별 코너' 대접을 받지도 못한다.

하지만 여전히 주검조차 찾지 못한 아홉 명의 실종자가 있고, 왜 죽었는지 정확한 이유조차 모른 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삼백 명에 가까운 사망자들이 있고, 구사일생 살아났지만 누구보다 가슴 아픈 나날을 살아가고 있는 생존자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에겐 쉽게 풀어낼 수 없는 한(恨)이 있다.

26일 오전 10시 안산 경기도미술관,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가 주최한 안산지역 기자간담회에서 두 아빠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눈에선 여지없이 눈물이 흘렀고, 목소리엔 서운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마이크를 움켜쥔 손에서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결연함이 느껴졌다.

단원고 2학년 4반 고 최성호군의 아버지 최경덕씨. "아들이 몇 반, 몇 번인지 몰랐는데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외국이나 지방에서 주로 근무하다보니 많은 시간을 보내지도 못했는데… 그래서 더 미안합니다"라며 말을 잇지 못한다.

"사고 당시에도 외국에 나가 있다 연락받고 28시간 걸려 진도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민간 잠수사 분들에게 들은 말이 '딱 한 번 물에 들어갔다. 못 들어가게 한다. 배만 여섯 번을 옮겨 탔다'였습니다."

"(4월) 16일 오전 9시 56분에 아들이 반톡(같은 반 아이들끼리 대화하는 카카오톡 대화창)에 '얘들아 살아서 만나자, 우리. 부디'라고 올렸는데 이미 상황이 어려웠던지 읽은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어 10시 4분에는 트위터에 '침몰하고 있는 배 안에 있는데 제발 살려달라'라고 적었고 이어 10시 7분에는 엄마한테 문자를 보냈더군요.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살아서 갈게요'라고…."

최경덕씨의 말은 '구하고자 했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나 정부는 그러한 의지가 없었다'로 해석된다.

"전국을 돌며 받은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용지들을 416박스에 나눠 담을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그러면 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200일이 지나니까 이제 경찰들이 유가족을 때리기도 합니다."

그 간의 험난했던 과정과 현재 처한 상황이 절실히 느껴진다. "TV에서 배 그림만 나와도 눈물이 난다"는 최경덕씨에게 "2002년 아들과 함께 열렬히 응원했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더 이상 없었다.

"가족들이 직접 민간 조사기구를 통해 제 역할을 하겠다"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변인으로 더 알려진 단원고 2학년 3반 고 유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 씨.

"전국을 돌며 간담회를 하고 있고 매번 비슷한 영상을 틀지만 여전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소리만 듣습니다. 되돌리기 싫은 기억들이고, 무엇보다 서러움이 큽니다."

유 대변인이 말하는 서러움은 "100% 지킬 것이라 믿었던 약속들이 철저히 무시되는 것"과 "100일이 지나면 기세가 꺾일 것이라면서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던" 무심한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다.

"더 이상 뜨거운 여론은 없지만 함께 했던 마음들을 알기에, 정확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민 스스로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안전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알기에 우리는 끝까지 갈 것이고 (목적을 이룰) 자신도 있습니다."

비록 뉴스에서는 사라졌지만 전국적으로 쇄도하고 있는 간담회에서 다시 희망을 찾고 있는 유 대변인이다. 예은이 아빠 유경근 대변인은 그동안 가장 서운했던 것 두 가지를 예로 든다.

"여당 지도부들과 세 차례 만났을 때 그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배·보상이 필요 없습니까? 진심입니까?' 그 때 '아, 이 사람들은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우리와 사고 자체가 다르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또 대학특례입학을 말하던데요…. 대학에 갈 자식이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까짓 게 무슨 의미가 있죠?"

"죽어서 아이 옆으로 갈 때 덜 미안하기 위해서 끝까지 갑니다. 아이가 '아빠, 이제 그만해'라고 말할 때까지 완주할 것입니다. 10년, 20년, 30년이 걸려도… 세월호 진상규명을 회피하고 방해하는 자들보다 딱 1분만 더 버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민간조사기구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유경근 대변인은 "국회의 한계를 봤기에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민간차원의 조사 기구를 준비하고 있으며 가족들이 직접 많은 역할들을 해낼 것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다. 특히, 해양, 구조, 선박, 법률 등 전문가들이 많이 필요한데 마땅한 사람들이 없다"고 답했다.

아들, 딸 잃고도 오히려 우리에게 희망을 전하려 하는 두 아빠 앞에서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회피할 수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안산지역 인터넷신문 데일리안산(www.dailyansan.net)에도 게재돼 있습니다.



태그:#세월호,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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