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청소년들의 필독서로 꼽히던 만화 <슬램덩크>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북산고를 전국 대회로 이끈 '슈퍼루키' 서태웅은 감독인 안 선생을 찾아가 미국진출 의사를 밝힌다. 더 넓은 무대에서 '진짜 농구'를 배우고 싶다는 서태웅의 의지는 단호했다.

하지만 대학농구 감독 시절 애제자 조재중(미국 유학 부적응 후 교통사고 사망)의 실패 사례를 경험했던 안 선생은 서태웅의 미국 유학을 반대한다. 그리고 서태웅의 심장을 끓게 만드는 진심 어린 충고를 남긴다.

"태웅아, 우선 전국 최고의 선수가 되거라. 미국은 그 후에 가도 늦지 않다."

실망스런 응찰액, 고민 끝에 포스팅 수용 거부한 KIA

프로야구 KIA타이거즈가 26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한 좌완 에이스 양현종의 포스팅 결과를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팀을 대표하는 에이스에 걸맞은 수준의 응찰액이 아니라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다.

양현종 본인은 물론이고 그가 미국 무대에서 공을 던지는 장면을 상상하던 야구팬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런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양현종은 현지 에이전트를 고용해 미국 진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때 500만 달러까지 추정됐던 때를 생각하면 150만 달러 내외로 추정되는 양현종의 포스팅 금액은 다소 불만족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포스팅 금액이 낮다고 해서 미국 무대에서 실패한다는 뜻은 아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2번의 200안타와 3번의 타격왕을 차지했던 '포스트 이치로' 아오키 노리치카는 미국 진출 당시 밀워키 블루어스로부터 250만 달러의 불만족스런 포스팅 금액을 제시 받았다. 하지만 아오키는 올 시즌 캔자스시티 로얄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공헌하는 등 3년째 성공적인 메이저리그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양현종 역시 조금 실망스런 조건으로 미국에 진출한다 해도 본인의 활약에 따라 얼마든지 빅리그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양현종이 없는 내년 시즌 마운드 구상을 상상할 수 없었던 KIA에서는 리스크가 큰 정글에 에이스를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난 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두산과 KIA의 경기에서 KIA 선발 양현종이 역투하고 있다.

양현종, 가능성 쌓을 때다. ⓒ 연합뉴스


빅리그 도전, 국내 최고의 투수가 된 후에도 늦지 않다

양현종이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선발투수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양현종이 현존하는 리그 최고의 투수인가'하는 물음에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양현종은 올 시즌 16승 8패 평균자책점 4.25를 기록했다. 다승 2위, 탈삼진 3위에 해당하는 호성적이다. 하지만 평균 자책점 부문에서는 리그 12위로 뚝 떨어진다. 전반기 평균자책점 3.56으로 호투했던 양현종은 후반기 평균 자책점이 5.62로 급락했다.

양현종은 작년에도 6월까지 9승을 기록했다가 옆구리 부상으로 팀을 이탈한 후 시즌이 끝날 때까지 1승도 추가하지 못했다. 이는 양현종의 내구성과 체력을 의심해 볼 수 있을 만한 기록이다.

매 시즌 꾸준한 활약을 하지 못했다는 것도 치명적이다. 양현종은 2009~2010 시즌 2년 연속 10승을 기록한 이후 3년 동안 두 자리 승수를 거두지 못했다. 데뷔 후 6년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한 류현진(LA다저스)과 크게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개인 기록에서 정상에 서본 적도 없다. 양현종은 리그 MVP는 물론 프로 7년 동안 어떤 개인 타이틀도 수상한 적이 없다. 올해 제정된 '최동원 상'이 양현종이 받은 유일한 타이틀(?)인데 최동원 상은 아직 미국의 사이영 상 같은 권위를 갖지 못했다.

현재 다저스의 3선발로 활약하고 있는 류현진은 말할 것도 없고, 올해 빅리그 마운드에 서보지도못한 윤석민(볼티모어 오리올스), 심지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연봉 협상중인 김광현(SK와이번스)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로야구 MVP출신이다. 이들에 비하면 양현종의 실적은 초라하다.

포스팅을 통한 미국 진출이 좌절된 양현종은 일본에 진출하거나 KIA에 잔류하는 방법만이 남았다. 하지만 '명분'을 앞세워 메이저리그의 포스팅을 거절한 KIA에서 쉽게 양현종의 일본 진출을 허락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따라서 양현종이 2년 후 FA자격을 얻고 빅리그에 재도전하려면 앞으로 남은 2년 동안 리그 최고의 투수로 군림하며 자신의 가치를 더욱 끌어 올리는 수밖에 없다. 양현종이 최고 투수가 될 재목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이제는 양현종이 그 가능성을 실적으로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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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KIA타이거즈 양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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