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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가 지난 2011년 8월 기획재정부로부터 법정 기부금 단체로 지정되면서 공무원에게 적십자 회비를 모금하거나 타인에게 의뢰, 권유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울산에서는 할당 금액까지 정해 공무원들이 회비를 모금하도록 사실상 강요하고 있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울산 본부(이하 전공노 울산본부)에 따르면 대한적십자사 울산 지사(회장 김명규)는 울산광역시에 협조를 요청한 후 각 구·군에 2015년 목표액 16여억 원을 모금하도록 지침을 내려오는
12월 1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모금하도록 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울산본부가 26일 오전 11시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무원들에게 할당된 적십자 회비 모금을 중단할 것으로 촉구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울산본부가 26일 오전 11시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무원들에게 할당된 적십자 회비 모금을 중단할 것으로 촉구하고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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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침에 따른 납부 금액은 세대주 9천 원, 개인 사업자 3만 원, 법인은 5만 원~70만 원까지로, 주로 각 구·군의 읍·면·동 담당자들이 기업이나 마을을 찾아 모금하고 있다. 하지만 모금 용지가 백지로 된 회비 납부 의뢰서라 자칫 이해 관계가 있는 기업 등에서 공무원이 준조세 성격으로 징수하는 것처럼 여길 가능성이 있어 공무원들의 반발이 거세다.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을 보면 국가나 지자체 또는 산하 법인과 단체, 그 소속 공무원은 기부 금품을 모집할 수 없고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무원노조는 "적십자 회비를 모금하는 공무원들이 법 위반으로 고발될 우려가 있다"며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공무원들, 백지 납부 의뢰서 들고 사업장 방문... 자괴감 느껴

전공노 울산본부는 26일 오전 11시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무원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전공노 울산본부는 "공무원들이 백지 납부 의뢰서를 들고 사업장을 방문하면서 강제 징수로 보이는 데 대해 자괴감을 갖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공노 울산본부에 따르면 관련 법을 준수하라고 안정행정부가 전국 시도에 지침한 이후에도 울산 지역 공무원들과 통장, 이장이 지난 2년 간 백지용지를 들고 기업이나 주민을 대상으로 모금을 해왔다. 각 구·군에 할당액이 있고, 적십자사 울산지사가 일주일 단위로 모금액을 공개하기 때문에 일선 읍·면·동에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모금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

특히 전공노 울산본부 울주군 지부에 따르면 원전으로 둘러싸여 원전 지원금이 풍부한 울주군의 경우 이장들이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주민들에게 회비 납부를 요구하지 않고 마을기금으로 적십자 회비를 충당하는 경우도 있어 적십자 회비의 본래 취지를 흐리게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공노 울산본부는 "적십자회비 모금 취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하지만 모금 방법이 애초 목적과 다르고, 공무원들이 백지를 들고 다녀 사실상 강제 징수로 보여 공무원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전공노 울산본부 권찬우 본부장은 "백지 의뢰서는 공무원들이 현금을 취급하게 되면서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사업자들에게는 납부 강요로 비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공무원이 기부금품법 위반으로 고발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또한 공무원 노조는 "그동안 여러 차례 적십자사 울산지사에 '모금방법을 개선하라'고 요구했지만 적십자 측은 '관행이다'며 묵살해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면서 "적십자사의 이런 태도에 더 이상 공무원과 통장 이장들이 위법행위에 노출되는 것을 방관할 수 없어 지원 중단을 한다"고 밝혔다.

안전행정부가 지난 2013년 11월 26일 전국 시도에 보낸 '기부금품법 규정 준수 요청' 공문. 안행부는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는 국가나 지자체 또는 산하 법인과 단체, 그 소속 공무원은 기부금품을 모집할 수 없도록 했고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며 규정을 준수하라고 지침했다. 하지만 적십자사 울산지사는 이에 아랑곳않고 공무원에게 백지의뢰서를 배부토록 하고 있다.
 안전행정부가 지난 2013년 11월 26일 전국 시도에 보낸 '기부금품법 규정 준수 요청' 공문. 안행부는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는 국가나 지자체 또는 산하 법인과 단체, 그 소속 공무원은 기부금품을 모집할 수 없도록 했고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며 규정을 준수하라고 지침했다. 하지만 적십자사 울산지사는 이에 아랑곳않고 공무원에게 백지의뢰서를 배부토록 하고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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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모금액 중 4% 내에서 모금자에게 지원... "관행 끊겠다"

전공노 울산지부에 따르면 현재 적십자사는 이 같은 공무원들의 모금 업무를 격려하기 위해 총 모금액의 4% 범위내에서 공무원(해당 읍·면·동)에게 지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공노는 "그동안 회비 납부자의 의사에 반하는 지원금을 받아 공무원과 통장 이장들의 회식비 등으로 사용해 왔다"며 "이 관행을 끊기 위해 4% 지원금 사용을 거부하고 적십자사에 반납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무원노조는 "시·군·구에서도 적십자 회비 모금 목표액을 강제하거나 모금위원회에 공무원과 통장을 함께 구성하라는 지시, 공무원이 현금을 취급하는 모금을 중단시켜야 한다"면서 "또한 모금 실적을 공개하거나 배포해 경쟁을 부추기는 행위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공무원노조는 "만일 이런 행위들이 근절되지 않으면 당사자를 포함한 관계자 모두를 기부금품법 위반으로 고발할 것"이라며 "적십자사가 자구책을 마련 않고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방법으로 추진할 경우 공무원노조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무원노조는 올해 당장 중단하면 본래 적십자회비 모금 취지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됨에 따라 2015년 모금은 세대주 용 회비납부의뢰서 배부 지원만 하고 나머지는 거부하기로 했다. 더불어 내년에는 적십자회비 모급지원 관련 업무를 전면 중단할 방침이다.

한편 대한적십자사 울산지사는 26일, 이 같은 기부금품법 위반과 백지 의뢰서 배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지금은 입장을 표명할 수 없다"며 "윗선에서 회의를 하고 있고, 입장이 정리되면 공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그:#적십자사 울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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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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