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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월정사 부주지 원행 큰스님이 10.27법난 당시 피해상황을 강연하고 있는 모습. 스님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 곧 한국불교의 명예회복의 길이라고 화두를 던졌다.
 오대산 월정사 부주지 원행 큰스님이 10.27법난 당시 피해상황을 강연하고 있는 모습. 스님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 곧 한국불교의 명예회복의 길이라고 화두를 던졌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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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퍼 차림의 군인들이 갑자기 들이닥칩니다. 권총을 머리에 겨누고 '가보면 안다'고 무작정 끌고 갔어요. 당시 함석헌, 장준하 선생의 주옥같은 어록을 메모한 걸 보고 이게 간첩의 암호라고 자술서를 강요하더군요. 하다하다 안 되니까 각목으로 두들겨 패고 고춧가루 물을 들이붓고 잠도 재우지 않는 등 혹독한 고문이 이어졌어요. 결국 그들은 스님들의 승려복을 죄수복으로 갈아 입히거나 삼청교육대로 끌고 갔습니다"

11월 25일 오후 6시, 인천 로열호텔에서 열린 10.27법난 강연회장. 300석 규모의 원형 테이블은 스님과 불자들이 운집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범종단 연합회 소속이 아닌 대한불교조계종 단일 종단만 모였음에도 그 열기는 뜨거웠다. 열악한 인천불교계의 사정을 고려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풍경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강연자로 나선 대한불교조계종 4교구 본사 오대산 월정사 부주지 원행 큰스님의 입술은 심하게 떨렸다. 스님은 전두환 정권이 사회정화 차원에서 저지른 1980년 10.27법난 당시 직접 피해를 입은 당사자였다. 속세 나이로 스님은 원로 스님의 입지에다, 다리를 다쳐 절룩거리는 아픔이 있었다. 그럼에도 스님은 강연을 통해 그날의 피눈물 나는 기억을 또렷이 토해냈다. 마치 그날의 원한과 아픔이 다시 되새겨지는 것처럼 말이다.

10.27법난, 한국불교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

대한불교조계종에 따르면 10.27법난은 제5공화국 출범을 앞두고 신군부가 일으킨 불교탄압 사건이다. 당시 피해를 입은 원로 스님들은 법난을 일컬어 '1700년 불교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당시 전두환 신군부는 군인과 경찰 3만2000명을 동원해 전국 사찰 5317곳을 압수수색했다. 그리고 2000여명이 넘는 스님과 신도를 무차별 연행, 감금했다. 하지만 정부는 언론 조작을 통해 한국불교가 사회악인 양 매도했다. 이로 인해 많은 불자들이 개종하는 등 한국불교는 큰 피해를 입었다.

원행 스님은 당시를 회상하며 만일 이런 엄청난 사건이 이웃 종교에 발생했다면 결코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러며 지금이라도 불교계가 단결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정당한 보상, 불교의 명예회복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리의 사과, 법률 제정이 됐지만...

10.27법난 강연회에는 스님과 사부대중 400여명이 참석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10.27법난 강연회에는 스님과 사부대중 400여명이 참석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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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법난 명예회복과 관련해 조계종은 1986년 9월 해인사에서 최초로 전국승려대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1988년 11월 16일 당시 피해자였던 원로 스님 중심으로 '10.27법난 진상규명 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이후 강영훈 전 국무총리의 사과문 발표 후 2008년 2월 국회에서 '10.27법난 피해자의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이후 국무총리 산하 기구로 '10.27법난 피해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가 설치됐다. 최근 10.27법난 역사교육관 건립 예산을 국비에 반영하는 등의 성과를 냈다. 향후 2015년 6월까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법난 피해자 심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원행 스님은 "현재 법률이 제정되었음에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일부 보수신문은 기념관 예산을 두고 종교편향 예산이라며 왜곡하고 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어 스님은 "당시 이 사건을 주도한 불교계 내부의 적까지도 샅샅이 밝혀내 책임자를 퇴출시켜야 한다. 진실규명을 이제라도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이것이 곧 한국불교의 명예회복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권 하수인 역할 한 불교계 과거사도 씻어내야

한편 대한불교조계종 인천사암연합회 고문인 선일 스님도 당시 피해를 회상하며 정권에 하수인 역할을 한 불교의 과거사도 함께 씻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선일 스님은 "하수인 역할만 하다 보니 스님들 스스로 정부에 순종적으로 변했다. 이 탓에 결국 불교계가 신군부 정권의 사회정화 사건에 가장 만만한 대상이 되어 엄청난 탄압의 피해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고 소회를 전했다.

선일 스님은 당시 법난이 일어났던 시대를 두고 전두환 신군부의 공포정치 시대라 명명했다. 스님은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 스님이 전두환 지지를 반대하고, 광주민주화운동 성금모금을 해서 미운오리새끼가 됐다고 전했다. 결국 이런 시대상황으로 인해 1700년 불교의 유구한 역사가 한 순간에 범죄집단으로 매도당하는 법난이 발생했다고 스님은 피력했다. 스님은 이 때문에 10.27법난의 진실규명이 더더욱 절실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인천사암연합회장인 종호 스님도 10.27법난 사건을 한국불교 위상이 땅바닥에 떨어진 사건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종호 스님은 "법률이 제정되었어도 아무도 법난의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불거진 기념관 예산 논란도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왜곡된 역사의 아픔을 현재에 되살려 두고두고 기억하게 해야 한다. 지난날의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다시 10.27법난을 꺼내게 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덧붙이는 글 | <인천불교신문> 공동 게재



태그:#10.27법난, #전두환 정권, #대한불교조계종, #원행 스님, #인천조계종사암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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