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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우리는 세월호 사고를 통해 한 사회의 문화가 생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무고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우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새들마을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 즉 교육이 이 사회의 문화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배움으로 바른 문화를 만들기 원하는 이들이 모여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과 산하 '새들마을학교'는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를 10월 9일부터 12월 25일까지 12회 진행합니다. 이를 계속 연재합니다. - 기자 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을 이끌어야 할까, 내버려 두어야 할까, 인생의 주요한 걸음을 눈앞에 두고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 때, 작고 큰 게 어디 있겠냐만은 소소하고 작은 일상부터 주요하게 획이 그어질지도 모르는 걸음을 앞에 두고 '잘 모르겠다'는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그래, 결심했어"라며 두 가지 인생을 그려 냈던 90년대 어느 오락 프로그램처럼 이렇게 저렇게 해 보면 좋으련만, 닥쳐온 시간 앞에 나의 선택은 늘 비슷하다.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 대로 선택을 하거나 어찌할 줄을 몰라 손 놓고 있게 된다. 이리저리 돌려도 보고 흔들어도 보지만 찰나의 순간 뒤에 벌어질 일은 도통 알 수가 없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남의 얘기 같지 않게 느껴진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바로 그 정답을!

수학 문제도 문제고 인생 문제도 똑같은 문제. 수학 문제를 잘 풀기 위해서는 교과서를 잘 공부하면 되겠다만 인생 문제를 잘 풀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 대학에 가기 위한 수능 공부, 학점을 잘 받기 위한 전공 공부, 취업을 잘 하기 위한 토익 공부, 그리고 이후부터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격증 공부 등 많은 이들이 인생의 문제를 잘 풀어 가기 위해 많은 배움의 과정을 거치는데, 어찌 인생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삶의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복잡하게 남아 친구의 답을 따라 답안지 써 내기 급급하게 될까.

답지를 내는 것으로 끝인가. 내가 내놓은 답들이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생의 생과 연결되어 있는데. 내 욕망을 위해서라면 모든 맥락과 관계를 단절하고 파괴하며 매진하는 호기심에 기반한 공부, 함께하는 이를 결국에는 밟고 올라가서 열매를 따먹었으나 결국 굶주림에 금새 지쳐버리는 경쟁과 지배의 공부로 인해 다른 이의 생명을 앗아가고 결국 스스로의 생명까지 잃게 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단순히 멈추어 서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공부를 해야 할 것인가 치열하게 머리 싸매고 진지하게 자신을 성찰해야 할 때다.

교육문화연구학교 일곱번째 시간,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을 읽고 토론하는 참가자들.
 교육문화연구학교 일곱번째 시간,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을 읽고 토론하는 참가자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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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마을학교에서 진행되는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일곱 번째 시간, 참가자들과 함께 읽고 토론한 파커 팔머의 책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에서 참된 공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파커 팔머는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대한 가르침이란 '연결됨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위대한 교사는 학생, 주제 그리고 그들 자신 사이에 관계의 망을 엮어 내는 사람들입니다. 학생이 스스로 의미 있는 삶을 엮어 낼 수 있도록, 그래서 그들의 삶을 통해 이 갈가리 찢어진 세계를 다시 엮어 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위대한 가르침이 연결됨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위대한 배움, 위대한 공부는 연결됨의 역량을 쌓는 것이 되겠다. 너와 내가 한 존재라는 공동체적 배움, 우주 전체가 나와 단절된 존재가 아닌 나와 연결된 '너'가 되는 인격적 배움이, 바로 연결됨의 역량을 쌓는 온 존재와 공동체적 관계를 맺게 되는 배움이다. 파커 팔머는 이 공부를, 이 지식을 '진리'라고 말한다.

새들마을학교 초등과정 친구들의 "절기와예술" 수업시간. 24절기를 공부하며 마을과, 땅과, 이 땅의 역사와 연결되는 시간
 새들마을학교 초등과정 친구들의 "절기와예술" 수업시간. 24절기를 공부하며 마을과, 땅과, 이 땅의 역사와 연결되는 시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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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말하기 앞서 우리는 우리가 지식을 쌓고 찾는 기반, 즉 인식틀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 파커 팔머는 현대인의 인식 방식을 객관주의라 부르는데 이는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의 단절과 결별을 의미한다. 배우는 이가 배우는 대상과 어떠한 관계도 맺지 못한 채 대상을 관조하며 조작과 지배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이 객관주의다.

객관주의는 서양 중세의 역사에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던 종교의 광기에서 많은 생명을 구하기도 하고 문학·예술·과학의 영역에서 인류를 윤택하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의 결별은 "인식 주체로서의 자아와, 인식 대상으로서의 세계 사이의 공동체성과 책임성의 붕괴를 가져왔다"고 파커 팔머는 말한다.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의 결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배우는 이가 배우는 대상을 조작과 통제의 영역으로만 두는 것, 자신이 배우는 지식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온 세계와 공동체적 관계로 전환되는 걸음이 아니라 파괴하고 착취하는 관계로의 전락이 바로 주체와 대상 간의 결별이 초래한 결과다.

온 인류를 죽음으로 몰고갈 뻔했던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은 인식 주체와 대상이 단절되어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다. 최초의 원자폭탄을 만들어 낸 미국 과학자들은 원자폭탄 실험으로 대기권이 폭파되어 지구가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말이 오갔음에도 실험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44쪽>)

피타고라스의 정리.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다른 두 변의 제곱과 같다.
 피타고라스의 정리.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다른 두 변의 제곱과 같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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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수학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다른 두 변의 제곱과 같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알고 있지만, 피타고라스가 공동체를 이루어 '세계는 수로 이루어져 있다'는 고백 가운데 그 진리를 더욱 밝혀내기 위해 자신의 삶을 투신했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한다.

지식이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인류의 소망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고 이를 평가하는데 국한되어 있는 현대의 교육은, 결국 타인과 나의 관계 사이에 생존 경쟁이라는 고리 이외에는 어떤 것도 만들어 줄 수가 없다.

피타고라스 학파가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걸음 속에 발견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통해 우리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숫자를 대입해 문제를 푸는 산수뿐만 아니라 진리를 향한 간절함을 함께 배우고, 모든 만물이 수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믿었던 피타고라스와 연결되는 배움을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파커 팔머는 진리를 인격적이며 공동체적이라고 말한다. 진리가 인격적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주 안의 모든 비인간 형태의 생명과 공동체의 유대를 이루어 배우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며(위의 책 85쪽), 진리로의 나아감은 결국 공동체로의 나아감을 의미하다는 것이다. 결국 삶의 문제는 한 개인이 대상과 분리된 지식을 쌓는 것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가 없다. 인격적인 만남이 있는 공동체적인 삶에 기반하지 않는 지식과 진리는 그 의도가 어찌됐든 온전히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할 수 없다.

그래서 배움은 학과 과목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함께 식사하는 점심시간, 함께 뛰노는 시간, 간식을 나눠 먹는 시간, 타인을 믿지 못하거나 위하는 마음 없이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 발견되는 모든 순간과 현장이 배움의 시간이 된다. 학과 과목 시간에는 그 과목의 세계와 온전한 만남을 이루는 것과 함께 공부하는 이와 우정 어린 만남을 이루는 것이 공존해야만 한다. 이때 우리는 참 진리를 만날 수 있다.

친구들과 신나게 뛰노는 시간!
 친구들과 신나게 뛰노는 시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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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삶의 문제로 돌아오자. '모르겠다'는 말은 결국 함께 하는 이들을 잘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하는 이가 아닌 나만을 생각하는 마음은 진리를 마주하지 못하게 한다. 내가 아닌 다른 이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꼭 나를 잃어 버리게 할 것 같은 두려움을 준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이와 진실하게 만나고, 다른 이를 온전히 도우며 사는 것이 우리가 본연의 모습 그대로를 사는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그 두려움은 눈 녹듯 사라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와 인격적 관계를 맺어 만물과 공동체적 관계를 맺게 될 것이며, 우리 모두가 서로서로를 살리는 존재로 전환되어져 가는 배움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태그:#새들마을학교, #가르침과배움의영성,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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