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는 아내와 함께 꾸따(Kuta)에서 1시간 30분을 달려 발리(Bali) 중부, 문화와 예술의 고향인 우붓(Ubud)에 도착했다. 우붓 시내는 내일 차분히 둘러보기로 하고 우붓 시내를 통과하여 우붓에서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끄데와딴(Kedewatan) 마을로 향했다.

네카 미술관(neka art museum)을 지나 길을 따라가다가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차를 꺾자 잘란 끄데와딴(JL. Kedewatan) 거리가 나왔다. 아! 우리는 한 순간에 예술인 마을에서 인도네시아의 정겹고 한적한 한 시골 마을로 들어서게 되었다. 

끄데와딴 마을의 서쪽에는 발리의 래프팅 명소로 이름난 아융강(Ayung River)이 있다. 하지만 끄데와딴 마을 언덕 아래 계곡에 자리한 아융강은 래프팅을 하는 남쪽의 아융강과 느낌이 다른 아융강이다.

이곳의 아융강은 과거부터 힌두교를 믿는 끄데와딴 주민들에게 매우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다. 치유의 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우붓에서도 끄데와딴 마을은 정녕 치유의 효과가 생겨날 것만 같은 평온함이 있다. 이곳은 아융강과 열대우림의 정글이 신비롭게 조화를 이루고 완벽하게 호흡하는 곳이다.

평온한 숲으로 향하는 마을 골목길이다.
▲ 끄데와딴 마을에서 아융강 가는 길 평온한 숲으로 향하는 마을 골목길이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나는 새벽안개 피어오르는 아융강을 보러 다음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열대우림에 둘러싸여 너무나 아름다운 아융강. 그래서 아융강 옆 열대림 언덕에는 아융강 전망을 자랑하는 호텔들이 강을 내려다보고 들어서 있다.

아융강을 볼 수 있다는 사얀테라스 리조트(sayan terrace resort) 쪽 언덕으로 내려가 보았다. 강을 향해 아래로 내려가는 아주 이 좁은 길이 아융강 옆길을 트래킹할 수 있는 길이다. 절벽 쪽으로 이어지고 있는 길은 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나무가 무성하다. 열대림의 나무들을 이리저리 헤쳐가며 앞으로 전진해야 하는 길이다. 길을 찾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직감이 든다.

아융강 바로 옆까지 가서 아융강을 끼고 둘러보는 길은 현지인의 사유재산인데다가 길이 너무 험하다. 한 현지인이 1시간당 약간의 돈을 요구하며 아융강 옆길을 안내해 주겠다고 접근한다. 돈을 조금 주면 안전한 길을 알려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현지인은 이 땅의 주인인 것 같지도 않고 트래킹을 즐기는 여행자들에게 접근하여 용돈을 벌려는 사람인 것 같다. 호젓한 산책을 원하는 나는 이들의 가이드를 받기보다는 내가 걷고 싶은 길을 찾아서 걷기로 했다.

계곡 주변을 보니 이곳에 자리한 숙소 이름이 꾸뿌꾸뿌 바롱(Kupu Kupu Barong)이다. 인도네시아어로 '꾸뿌꾸뿌'는 '나비'라는 뜻이다. 발리 우붓, 아융강 유역의 열대림에는 과거부터 '꾸뿌꾸뿌(Kupu Kupu)'들이 많이 살았고, 지금도 아융강 상류의 서편 계곡은 나비가 노니는 아름다운 열대정원이다. 이름만큼 발음도 귀엽고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며 나는 모습이 이름에서 연상된다. 나는 꾸뿌꾸뿌 바롱의 빌라와 이국적인 방갈로 건물들 사이로 연결된 길을 내려가면서 아융강까지 이어지는 길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열대의 계곡 위로 야자수 가득한 열대우림이 이어진다.
▲ 열대우림 열대의 계곡 위로 야자수 가득한 열대우림이 이어진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아융강의 아름다운 계곡이 바로 눈 아래에 보인다. 계곡을 조금 내려가자 계곡에서는 물소리만이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한다. 물살은 그리 세지 않아서 물 흐름을 따라가면서 보는데 흐르는 물소리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강변 산등성이의 숲 속에 울창한 야자나무들이 키 크게 빽빽이 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고, 야자나무 숲 사이로 파인 계곡에 강물이 시원스럽게 흐르고 있다. 나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진짜 열대 밀림 안에 서 있었다. 열대의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더욱 자극적으로 보이는 정경이다. 여행마다 하이라이트가 되는 풍경을 만나는 곳이 있는데, 나는 이 작고 거친 오솔길에서 햇빛 가득한 밀림을 바라보면서 하이라이트를 감상하고 있었다.

아융강의 동안(東岸), 북쪽으로 이어진 길도 아닌 길을 따라가니 작은 관개시설을 만난다.  이 밀림의 경사지에도 현지인들이 개간한 논이 있는데, 그 논에 아융강의 물을 대기 위한 작은 관개수로다. 우붓 지역은 발리 내에서도 토지가 비옥한 곳이지만 비가 많이 내리지는 않아서 이 아융강은 우붓 사람들에게 중요한 식수원과 함께 농작물을 위한 수원지가 되고 있다.

나의 기분이 이끄는 데로 가는 길. 나는 내가 스스로 개발한 트래킹 코스를 물 한 병 들고 내 멋대로 걸었다. 큰 길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길. 다른 사람과는 함께 헤쳐 나가기 힘든 정글 속의 길이지만 새롭고 멋있는 나만의 트래킹 길이다.

계곡의 물소리를 따라가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 아융강 계곡 계곡의 물소리를 따라가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내 앞에는 아융강의 절경을 독점하려는 듯한 언덕의 빌라들이 마치 정글 속 타잔의 집같이 서 있고, 초록의 열대우림과 푸른 하늘, 얕게 깔린 구름들이 있다. 열대밀림의 풍경 속에서 나무를 타던 원숭이가 숨어서 나를 지켜보는 것만 같고, 열대밀림 만큼이나 화려한 색상을 자랑하는 열대의 새들은 청아한 목소리로 지저귀고 있다. 나는 발리의 자연 속에 들어가서 자연과 함께 하고 있었다.  

나의 시야 앞으로는 무성한 열대림으로 가득한 산이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다. 황토빛 아융강은 쉬지 않고 흐르면서 협곡을 이루고 있다. 크지 않은 협곡이 거대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협곡이 이루는 산사면의 경사가 심하고, 강변 밀림 속에 자란 키 큰 야자수들의 군락 때문일 것이다. 이른 아침이라 협곡 위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마음이 취해가는 것 같다. 밀림의 향기로운 산소를 깊이 들어 마셨다. 열대밀림에서만 날 것 같은 특이한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오고 있었다. 열대 밀림의 산소와 향기가 나의 가슴을 뚫어준다.

걷다 보니 어디로 가야할지 판단이 필요한 갈림길이 한 곳 나온다. 이 지점이 내 트래킹 코스가 끝나는 곳으로 삼아야 할 듯 싶다. 이곳에서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가면 현지인들도 많이 찾지 않는 뜨갈꾸닝(Tegalkuning) 지역의 열대우림이다. 뜨갈꾸닝의 마을을 찾아가려면 열대우림 속에서 길게 1km는 더 걸어야 할 것 같다. 멀리서 보이는 길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한참 이어진다. 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꽤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갔다. 그곳에는 끄데와딴 마을이 있고, 이 마을의 메인도로인 잘란 끄데와딴(JL. Kedewatan) 거리가 나왔다.

우붓 시내와는 달리 한적하고 아침 공기 참 맑은 곳이다.
▲ 끄데와딴 마을 우붓 시내와는 달리 한적하고 아침 공기 참 맑은 곳이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마을에 들어섰는데도 야자수는 높고 높았다. 마치 열대우림 야자수들 사이에 집들이 군데군데 들어서 있는 것 같다. 우붓 안에 있는 마을이지만 우붓 시장이 있는 시내의 번잡함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한적한 곳이다. 곳곳에 들어선 발리 전통양식의 힌두교 사원들과 가옥들은 맑은 아침 공기 속에서 편안히 쉬고 있다. 나무에서 나오는 듯한 향긋한 냄새와 이국의 새소리가 나의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한다. 나는 아침 일찍 깨어서 이 정경을 놓치지 않은 사실에 감사했다.

우붓 외곽의 농촌마을은 평온하고 매력적이다. 끄데와딴 마을도 관광지인 우붓 안에 있지만 전혀 관광지화 되어 있지는 않다. 이곳에는 우붓 시내에 다양하게 포진한 상점과 갤러리들이 없고 외국 관광객들을 위한 그 흔한 숙박시설도 없다. 시골집들의 석벽에는 이끼가 가득 끼어 있고, 각 석벽마다 장식된 힌두교의 힘찬 문양들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길가의 한적한 곳에도 야자수가 서 있고 열대의 붉은 꽃들이 자연스레 피어 있다. 발리하면 떠오르는 남국의 나른한 전원풍경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아침에 들르는 손님들에게 팔 열대과일을 정돈하고 있다.
▲ 아침을 준비하는 가게 아침에 들르는 손님들에게 팔 열대과일을 정돈하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연 곳은 구멍가게의 부지런한 아주머니들이다. 아주머니들은 좌판에 아침 손님들이 사갈 열대과일들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있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집안의 아낙네들 마냥 이들의 손길은 부지런하다. 조금 더 큰길가로 걸어 나가니 채소가게 아주머니가 좌판에 양배추, 오이 같은 야채를 내다놓고 팔고 있다. 내게 사진을 찍으라고 흔쾌히 허락을 해주는데 사진기를 바라보는 눈빛에 고단한 인생이 담겨 있다. 
 
사진기를 보는 눈빛이 인생의 많은 고락을 건너온 눈빛이다.
▲ 야채가게 아주머니 사진기를 보는 눈빛이 인생의 많은 고락을 건너온 눈빛이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마을 어귀의 작은 식당에서는 식당의 유일한 식탁에 여학생들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어린 이 여학생들은 과자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모두 머리를 뒤로 묶고 단정하게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아침부터 수다를 떨고 있다. 우리나라 여학생들 같으면 아침에 학교 가면서 식당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을 것 같은데 참으로 여유로운 풍경이다. 경제적으로는 우리보다 풍요롭지 않으나 이렇게 편안한 삶을 사는 학생들의 모습과 아침부터 학교를 향해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 서울의 여학생들의 모습이 머리 속에 겹쳐진다. 

아침 등교시간인데 여유 있게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식당의 발리 여학생들 아침 등교시간인데 여유 있게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끄데와딴 마을의 길가에는 마치 하늘로 솟은 용의 몸통이 흔들리는 것 같은 '펜조르(penjor)'가 눈길을 강하게 잡아당긴다. 펜조르는 발리의 종교행사나 축제 때마다 발리 거리의 가정집 앞과 사원을 장식하며 서있는 거대한 조형물이다. 대나무로 기둥을 만든 이 장대 장식물은 발리인들이 가장 신성스럽게 여기는 종교적 장식물인데, 축제가 끝나면 불 태워져 하늘로 날아간다. 이곳 발리에서만 볼 수 있는 미학적이고 독특한 힌두교 장식물이다. 요새는 자동차가 다니는 거리 곳곳에도 펜조르를 세워둔다. 펜조르가 연이어 서 있는 곳은 마치 용들이 도열해 있는 것 같은 장관을 연출한다.

축제 때 집 앞에 내걸리는 이 종교적 장식물은 마치 용의 몸통 같다.
▲ 펜조르 축제 때 집 앞에 내걸리는 이 종교적 장식물은 마치 용의 몸통 같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대나무 몸통의 기둥에는 열대의 붉고 샛노란 꽃들과 함께 얇게 썰은 코코넛 잎이 마치 용의 척추 뼈 같이 마디마디마다 장식되어 있다. 자세히 보면 하늘에서 휘어져 땅을 향해 늘어뜨린 용의 머리 끝에 힌두교의 신에게 바치는 공양물들이 매달려 있다. 펜조르의 끝에 둥둥 매달려 있는 공양물은 코코넛 열매나 아직 탈곡하지 않은 벼 이삭 그리고 떡이다. 발리인들이 용의 머리라고 생각하는 깃대의 정점이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코끼리 얼굴을 한 이 힌두교 신은 장사가 잘 되게 하고 지혜를 갖게 해 준다.
▲ 가네샤 코끼리 얼굴을 한 이 힌두교 신은 장사가 잘 되게 하고 지혜를 갖게 해 준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잘란 끄데와딴 거리를 걷는데 길가에서 나를 쳐다보는 어떤 눈길이 느껴진다. 총천연색으로 치장한 코끼리신 가네샤(ganesha)가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다. 가네샤는 힌두교 3대신의 하나인 시바(shiva)의 아들로서 행운과 지혜의 신이다. 발리의 힌두교도들이 가네샤를 숭배하는 것은 이 가네샤가 장사가 잘 되게 하고 지혜를 갖게 해 준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가네샤 신은 인간의 몸에 코끼리의 얼굴형상을 하고 있다. 가네샤가 아버지인 시바에게 대들었다가 목이 잘린 후 시바가 코끼리 머리를 붙여주어 살게 해주었다고 한다.

가네샤의 얼굴에는 코끼리의 긴 코가 붙어있고 팔은 넷이며 배는 툭 내밀고 있다. 특이한 점은 상아 한 쌍 중 한 개만 제대로 붙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힌두교의 선악사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왼편의 정상적인 상아로 좋은 것은 취하고 오른편의 잘린 상아를 통해 나쁜 것은 멀리한다는 뜻이다. 현대에 이 힌두교 신화들의 내용을 접하면 황당하기도 하지만 이 신화들은 당시 인도네시아 사회의 사회와 생활상, 사람들의 생각을 지금까지 전해주고 있는 훌륭한 문화유산들이다.

우붓 시내로 출근하는 오토바이들이 함께 이동하고 있다.
▲ 끄데와딴 마을의 오토바이 행렬 우붓 시내로 출근하는 오토바이들이 함께 이동하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잘란 끄데와딴 거리의 아침에는 이미 해가 밝았다. 우붓 도심으로 향하는 오토바이의 행렬이 오토바이의 엔진소리와 함께 길가에 계속 이어지고 있다.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수단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직 소형 오토바이들만이 아침의 직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출근시간이지만 양복을 입은 사람은 없고 발리답게 모두 자유분방한 복장들이다. 열대의 발리지만 아침은 선선해서 이른 아침시간부터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황금빛 논이 어울린 정겨운 농촌을 지나 우붓의 시내로 향하고 있다. 눈이 시리도록 맑은 아침에 주변의 녹색 야자수들이 거리 뒤의 숲을 물들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350여 편이 있습니다.



태그:#인도네시아 여행, #발리, #우붓, #끄데와딴, #아융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