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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그 후, 어떤 코리안> 책표지.
 <탈북 그 후, 어떤 코리안> 책표지.
ⓒ 성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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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탈북의 현장을 담은 <탈북자, 그들의 이야기>(글과 사진: 최순호)에서 결코 잊지 못할 사진을 보았다. 다른 계절에 비해 상대적으로 물이 적은 10월 말의 대동강을 건너는 탈북자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그들은 아랫도리를 모두 벗어 맨살이 훤히 드러난 채로 살얼음이 살짝 언 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간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읽거나 들었다. 하지만 그때 본 사진은 탈북자의 절박함을 가장 잘 말해주었다.

내가 본 그 사진은 아마도 지극히 단편적인 부분에 불과할 것이다. 탈북에는 어떤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위험과 고통이 따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어렵게 대한민국에 오고 난 후에 이곳에서 살지 못하고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왜 떠나는 걸까?

"개울 옆에 널브러져 있던 일행을 한씨가 재촉했다. 이내 일이 생겼다. 헉헉대며 주저앉았던 영호씨가 일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다. 13살 먹은 딸 명희와 함께 있던 오영순씨가 영호씨의 뺨을 세차게 올려붙였다. 함께 살자는 절규였다. '조금만 더 가면,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된다'라는 안간힘이었다. 하지만 영호씨의 맥없이 풀린 다리엔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빨리 가요. 일이 망가진다고요. 빨리 가요." 울먹이는 목소리가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새나왔다. 이들과 동행한 지 한 달 남짓. 보다 못한 취재진의 입에서도 한마디 절박함이 나왔다. "함께 가시죠."

취재진이 손을 내밀었다. 낙오했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되면 어찌되는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1만km 여정 내내 그들을 지배하고 있던 것은 북송의 공포, 죽음의 그림자였다. 일부는 때려죽이고 일부는 굶겨 죽였다. 수용소로 끌려가면 방법이야 어떻든 죽음을 벗어날 수 없었다, 짐승이나 개돼지가 차라리 낫다고 할 정도로 두려웠다."
- <탈북 그 후, 어떤 코리안>에서

<탈북 그 후, 어떤 코리안>(성안북스 펴냄)은 목숨을 걸고 우리나라를 찾아온 그들이 우리나라를 떠나 해외 난민으로 살아가는 사정(이유)과 과정, 그 후 이야기 등을 다룬다.

영호씨는 "죽어도 가야 한다"며 삶의 의지를 밝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시에 고꾸라져 버리고 취재진에게 "탈북자들을 많이 도와 달라"고 부탁하며 삶의 의지를 놓고 만다. 이 책의 프롤로그는 영호씨 가족이 생사를 넘나들며 탈북하는 상황을 소개한다.

탈북자, 대한민국에 왔으나 다시 다른 나라로

이들의 여정은 메콩강을 건너 또 다른 브로커를 통해 한국 대사관에 인계되는 것으로 일단 끝난다. 이들처럼 한국 대사관에 온 탈북자들은 일정 절차를 거친 후 대한민국 사람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탈북자 중에는 대한민국에서의 삶을 희망했지만 다시 다른 나라로 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인터넷에 '미친년 너 죽어라. 우리 학교에 다시 나오지 마라. 걸레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라. 채팅해서 어느 남자를 만날 것이냐. 만나지 않으면 너 죽인다(…)'. 이러니까 한국에 더 있을 수 없더라고요. 애가 예쁘게 생겼으니까 눈을 어떻게 해놓을 것 같기도 하고…. 오죽했으면 담임 선생님이 자퇴를 하라고 했을까요." - (은영이 할머니)

"한국에 돌아가면 사람들이 살 쪘다고 놀릴 것 같고 탈북자라고 안 좋은 시선도 되게 많고요. 그런데 이곳(영국) 사람들은 그런 것은 아예 신경 쓰지 않아요.… 친구들한테 부모님 소개시켜줬는데 부모님 말투를 듣더니 '너희 부모님 어디서 오셨냐', '넌 어디서 태어났냐.' 이런 식으로 물어보기도 하고.…애들이 '빨갱이, 빨갱이' '북한, 북한'하면서 많이 놀렸어요."(선경이) -<탈북 그 후, 어떤 코리안>에서

은영이 할머니는 탈북 과정에서 아들 내외가 죽는 아픔을 겪으며 손녀와 함께 탈북에 성공해, 얼마 전까지 한국에서 살았다. 그러나 은영이가 심한 모욕과 왕따를 당하며 우울증 증세까지 보이자 영국으로 와서 탈북 난민 신청을 했다. 그러나 난민 심사에서 한국에서 잠시 살았던 것이 밝혀져 한국으로 강제 추방될 위기에 몰렸다. 은영이네는 은영이 또래의 딸(선경이)이 있는 탈북 난민의 집에 숨어 살고 있다.

고백하건대,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탈북해 대한민국 국민이 된 탈북자 중 상당수가 다른 나라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보니 묘한 배신감 같은 것이 들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지원받은 것을 바탕으로 좀 살 만하니 탈북자라는 사실을 이용해 좀 더 살기 좋은 미국이나 영국 등으로 가는 그들이 약삭빠르게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오해는 이 책 <탈북 그 후, 어떤 코리안>을 읽기 전까지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들이 '탈남'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동정이 가는 한편 도리어 자꾸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솔직히 사고나 인식 차이로 대한민국에 적응하지 못한다거나 시세에 밝지 못해 지원금까지 날린 후 먹고 살기 어렵거니 지레짐작했던 터다. 위 두 소녀가 겪었을 정신적 고통을 생각하니, 여간 부끄럽고 안쓰러운 것이 아니었다.

<탈북 그 후, 어떤 코리안>은 탈남·탈북자들의 삶을 밀착 취재한 'KBS 스페셜-탈북 그 후, 어떤 코리안'이 바탕이 된 책이다. 방송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와 프로그램 이후 관련하여 추가로 취재한 것을 덧붙여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현재 대한민국에 입국한 탈북자는 2014년 3월말 기준으로 2만6천 명을 넘어섰다. 이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떠나 영국, 벨기에, 캐나다, 미국 등 유럽이나 북미로 가서 난민 신청을 한다고 한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발표한 '해외에서 난민지위를 받았거나 대기 중인 탈북자는 2118명(2013년 말 기준), 그러나 집계되지 않은 불법체류자까지 합하면 상당할 것으로 추정한다.

탈북자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

책은 탈북 난민으로 확인되면 대한민국보다 훨씬 안정적인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탈북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영국에서 만난 탈북자들 인터뷰에서 시작한다. 이후 벨기에, 미국, 캐나다 등지의 탈북자들도 만난다. '왜 어렵게 찾은 남한을 떠나 난민으로서의 삶을 선택했는지, 그들은 남한과 북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정착하게 되었으며 어떤 일상을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미래는 무엇인지' 등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아울러 탈북 청소년들 쉼터 셋넷학교 박상영 교장이나 국내·외의 전문가들과 인터뷰, 탈북자들의 실태와 우리 사회에서의 갈등, 탈북자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과 바람직한 대안, 탈북자들을 상대로 한 브로커들의 수법 등 탈북과 탈남에 관련된 다양한 문제점들을 들려준다.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을 찾았으나 자유를 찾아 제3, 4, 5국을 떠도는 그들은 누구인가? 왜 그들은 떠돌아야만 할까? 무엇이 그들을 떠돌게 할까? 일부 전문가들은 탈북자들을 제대로 품어 안는 것이 통일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나도 동감한다.

최소한 대한민국을 찾은 탈북자들이 탈남하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탈북자들의 현실과 탈남의 이유를, 아울러 북한의 현 실정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는 이 책이 많은 것들을 알려주리라. 이 책을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다.

덧붙이는 글 | <탈북 그 후, 어떤 코리안>(류종훈) | 성안북스 | 2014-10-10 | 14,000원



탈북 그 후, 어떤 코리안

류종훈 지음, 성안북스(2014)


태그:#탈북자, #탈남, #탈북 난민, #노스 코리안,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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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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