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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서 냄비 장수 될 거야."

어린 대열은 항상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가 음식 할 때, 옆에서 돕는 걸 좋아했다. 군산 서흥중 2학년 때 우리나라 최초로 생긴 한국 조리과학고등학교를 알게 되었다. "저기 가야겠다"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던 대열은 처음으로 학업에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부었다. 1년 동안 열심히 해서 바라던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고민할 때, 조리고등학교 학생들은 분명한 목표를 향해 매진한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학교. 번듯한 학교 건물 뒤엔 철근이 나와 있는 공사장이 있었다. 자기 꿈이 확실한 학생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배우려는 의지가 충만했다. 대열도 그랬다. 뜨거웠다.

김대열 셰프
 김대열 셰프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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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밑에서 못하겠다, 하지만 많이 배웠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칼질을 배워요. 무생채 썰기 대회도 열리고요. 자기 손가락 써는지도 모르고 막해요. 진짜 얇게 써는 친구들은 바늘귀에 들어갈 만큼 썰기도 해요. 얇게, 빨리, 곱게 써는 것에 비중을 두죠. 1학년 때는 한식과 양식을 배워요. 자격증 위주로요. 2학년 때는 중식과 일식, 3학년 때는 고급 요리를 배워요."

유명한 요리사들이 학교에 와서 요리하는 것도 보여주고 강연도 한다.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해체 작업하는 것도 볼 수 있다. 학생들은 각종 요리대회에 많이 나간다. 대열은 나온 재료만 가지고 에피타이저, 수프, 메인 요리, 디저트를 만드는 '블랙박스 요리대회'에도 나갔다. 한 달 동안 합숙하면서 연습했지만 입상은 못했다. 그래도 배운 게 많아서 좋았다.

대열은 어떤 교수님만 보고 한 지역 대학의 조리과로 갔다. 입학해 보니 그 교수님은 다른 학교로 옮겨간 뒤였다. 학교는 요리 실습동도 항상 개방하지 않았다. 더구나 수업은 대열이 고등학교 때 배운 칼질부터 시작했다. 이미 자격증까지 딴 대열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는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해 버렸다. 

제대하고 아프리카를 다녀온 대열은 학교에 다시 복학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요리했다. 전 과목 A 학점을 맞고 2학년 2학기 때 서울로 실습을 갔다. 도곡동 타워팰리스 맞은편에 있는 테이블 10개짜리 레스토랑이었다. 사장님은 대열에게 모든 습관을 바꾸라며 밥 먹을 때도 욕했다. 대충대충 하지 말라고 행주 빠는 것부터 가르쳤다. 버티는 사람이 없었다.

"3개월 일하고 나서 정장 입고 갔어요. 청소를 싹 해줬어요. 그리고는 '당신 밑에서 못하겠다. 근데 많이 배웠다'고 했어요. 그때 하루 14시간씩 일하고 130만 원 받았어요. 휴대폰비랑 고시원비 내고, 생활비 하면, 모이는 돈이 없었어요."

대열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에 있는 크고 작은 레스토랑을 돌며 2년간 일했다. 워커힐 호텔에 가서도 3개월만 일했다. 130만 원으로 시작했던 월급. 진득이 오래 일했다면 오를 수도 있었겠지. 그러나 명동의 꽤 큰 레스토랑에서 오래 일한 선배가 "메인 셰프가 3백만 원 받는데 그게 내 미래야"라고 했을 때 '빨리 일 배워서 장사하자'고 결심을 굳혔다.

스물여섯 살 요리사 김대열, 그는 '내 가게'를 하고 싶었다. 통장에 돈은 없었다. "나중에 한 명이 잘 되면 끌어주고, 못 되면 도와주자"고 말한 고등학교 친구 윤영재에게 전화를 했다. 영재는 모 대기업 외식 사업부에 다니며 월급 200만 원을 받고 있었다. 대열은 자기 고민을 솔직담백하게 말했다. 

"영재야, 나 장사하고 싶어. 파스타 집."
"어떻게?"
"트럭 사서. 가스 불판 깔고 장사하면 되지 않냐? 트럭 알아봤는데 3백만 원이야."

그는 야박하지 않은 식당. 재미있는 가게, 손님들이 아지트처럼 여기는 작은 가게로 꾸려나가고 싶다고.
▲ 청춘호텔 김대열 셰프 그는 야박하지 않은 식당. 재미있는 가게, 손님들이 아지트처럼 여기는 작은 가게로 꾸려나가고 싶다고.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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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는 트럭값을 보내줬다. 대열은 트럭 안을 세팅하기 위해 3백만 원을 더 신용대출 받았다. 천막까지 만들었다. 압구정에 살던 때라서 가로수 길 끝에서 유원지로 빠지는 곳을 조사했다. 시간당 50명이 지나갔다. 그 중 10%, 1시간에 5명만 와도 좋겠다는 목표를 잡았다. 8천 원에서 1만 원 하는 파스타를 팔았다. 2011년 7월 1일이었다.

"제가 복이 있어요. 손님들이 간이 테이블까지 꽉 찼어요. 하루 매출이 15만 원에서 20만 원. 재밌는 게, 손님들이 '주인 초미남' 하면서 SNS에 막 올렸어요. 소문이 쫙 나서 포장마차인데 예약제로 장사를 한 거예요. 영재는 수원이 직장인데 1시간 40분 동안 차를 타고 압구정까지 와서 도와주고 갔어요."

냉장고에 재료 채우는 게 재밌던 나날

영업 시간은 밤 9시부터 다음 날 새벽 3시. 대열은 파스타 그릇 50장을 고시원에 갖고 와서 설거지하고 뒷정리를 했다. 그러고 나면 아침 7시, 잠깐 눈 붙이고서 낮에 일어났다. 장을 봤다. 여름이니까 얼음 사다 맥주까지 팔았는데 재미있었다. 고시원 냉장고가 작아서 따로 큰 걸 사서 들였다. 냉장고에 요리 재료 넣는 것도 재미있었다. 모든 것이 그랬다.

대열은 한 달 만에 단속에 걸렸다. 모은 돈도 없는데 벌금 맞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마침 트럭으로 타코 장사하는 형님이 인천 록 페스티벌 행사에 가자고 했다. 영재가 천만 원을 대출 받아 줬다. 사흘간의 푸드 코트 입점비 3백만 원 내고, 나머지는 몽땅 재료를 샀다. 그걸 트럭에 꽉 차게 실었다. 대열은 "이거면, 천만 원 벌고 나오겠다!" 완전히 신이 났다.

"비가 많이 왔어요. 혼자 냉장고를 옮기는데 차가 진흙에 빠졌어요. 다른 푸드 코트는 네다섯 명이 와서 일하는데 저는 혼자였어요. '영재가 나한테 천만 원도 줬는데...' 그래서 이 악물고 세팅했어요. 파스타 천 명분을 준비했는데 장사가 안됐어요. 냉차 파는 데만 잘 됐어요. 8월이었고, 습하고. 사흘 만에 천만 원을 다 까먹은 거예요."

압구정 고시원으로 돌아온 대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침, 그의 트럭에 와서 파스타를 사 먹던 사람을 길에서 만났다. "저, 단속 맞았어요"라고 했더니 그 사람은 장소가 있다고 했다. 차가 두 대 들어가는 상가 주차장이었다. "밤에는 비어요" 대열은 월세 100만 원에 임대차 계약서를 쓰고 사업자 등록을 냈다. 그 정도 월세는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트럭을 세워놓고 장사했다. 그런데 웬걸! 엔진오일을 안 갈아서 트럭은 고장 나고 말았다. 대열은 주차장에다 해체형으로 가게를 만들었다. 뗐다 붙일 수 있는 문틀을 달았다. 그곳은 낮에는 주차장, 밤에는 대열의 가게가 됐다. 그걸 재밌게 여긴 손님들이 저마다 블로그에 대열의 가게를 올려주었다. 장사는 잘됐다.

대열은 주차장 자리에 월세 100만원을 내며 레스토랑을 꾸려갔다. 
가게는 6개월째 성업 중, 주인은 갑자기 월세를 두 배로 올려주라고 했다.
대열은 정성을 바치던 일을 접었다.
▲ 낮에는 주차장 밤에는 간이 레스토랑 대열은 주차장 자리에 월세 100만원을 내며 레스토랑을 꾸려갔다. 가게는 6개월째 성업 중, 주인은 갑자기 월세를 두 배로 올려주라고 했다. 대열은 정성을 바치던 일을 접었다.
ⓒ 김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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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가 생겼어요. 주차된 차가 밤 9시 지나도 안 빠질 때가 있어요. 그래서 낮에 도시락 장사했어요. '청춘도시락'이라고, 압구정에 전단을 뿌리고 다녔어요. 치킨 마요, 카레 덮밥, 소고기 덮밥을 3900원에 팔았어요. 군대 선임이었던 김은영형도 우연히 찾아왔어요. '혼자 하는데 너무 힘들어'했더니 형도 장사하고 싶어 해서 같이 헤쳐나가자고 했죠."

장사 잘되니 월세 두 배로 올려달라던 주인, 마음이 정리됐다

대열과 은영이 형은 스쿠터를 사서 도시락 전단을 뿌렸다. 바비큐 오븐을 사서 케밥까지 만들어 배달했다. 찾는 사람이 많았다. 주차장에서는 저녁 장사를 했다. 입소문을 타고 <GQ>나 <바자르> 같은 잡지사가 와서 촬영도 해갔다. "너무 재밌었어요" 대열은 신이 나서 달마다 소주나 맥주와도 잘 어울리는 이탈리안 음식 메뉴를 개발했다.

대열이 밑바닥에서 무턱대고 연 파스타 집은 6개월째 성업 중이었다. 2012년 2월, 건물주는 느닷없이 그를 찾아와서 "월세를 2백만 원으로 올려줘야겠다"고 했다. 장사는 계속 재투자를 해야 했다. 월세 내고, 대열을 믿고 온 은영이형 월급을 줘야 했다. 대열은 분명히 월세 백만 원으로 임대차 계약서를 썼다. 그 두 배를 낼 순 없었다. 마음이 딱 정리됐다.

"영재랑 은영이 형이랑 나랑 셋이 다 청춘이고, 나중에 호텔 하는 게 꿈이니까 '청춘호텔'이라는 이름 달고 한 장사였어요. 망한 거죠. 저는 나락으로 떨어졌고요. 잠원지구에서 한 달 장사하고 접고, 록 페스티벌에서 완전 망하고. 주차장에서 장사하니까 가게 꾸미느라 또 빚내고. 고시원비도 못 내니까 은영이형네 집에서 얹혀살게 됐어요."

그가 완전히 나가떨어진 건 아니었다. '돈 벌어서 작은 가게부터 하자'고 결심했다. 레스토랑으로는 가지 않았다. 한 달 월급 2백만 원으로는 돈을 모을 수가 없다. 이 일 저 일을 하다가 부동산 영업 시장으로 갔다. 출퇴근이 힘들어서 부동산 사무실에서 잤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고, 한숨 자고 밤 12시에 일어나 강남 전 지역에 전단을 붙였다.

가뭄에 콩 나듯 실적이 나왔다. 야전 침대서 쪼그려 자니 허리만 망가졌다. 그는 은영이형과 저녁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고등학생들 틈에 끼어서 맥도날드 배달 알바를 했다. 4시간 일하면 햄버거 하나를 줬다. 재미가 없는 편도 아니었다. 그는 또래인 가게 점장과 농담하면서 많이 웃었다. 내심 벌리는 돈이 없어 답답했다.

"빚 갚아줄 테니까 집으로 와라."

작년 3월, 대열은 부모님 말을 듣고 군산으로 내려왔다. 그는 집에 누워서 "스물여덟 살인데 아무것도 된 게 없잖아요"하며 짜증을 삭혔다. 몸과 맘이 추슬러질 때까지 그러고 있었다. 영재랑 은영이형한테 미안했다. 대열이 다시 한 일은 지방과 서울을 다니며 화장품 판매를 하는 것. "젊은 친구가 열심히 하네" 하면서 사주는 사람이 늘어났다. 1년 넘게 일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청춘호텔해라"

올해 5월, 대열의 어머니는 "네가 서울에서 했던 '청춘호텔' 해 봐"라고 했다. 대열은 무서웠다. 요리를 하는 것도, 발목을 묶는 장사라는 것도. 그런데도 마음이 갔다. 사람들이 "너는 석고보드도 못 붙이고, 가구도 못 짤 거다"라고 했지만 혼자서 가게 공사를 했다. 철거하고, 가구 짜고, 타일 붙이고, 철판 작업을 했다. 서울에서 파스타 트럭을 만들 때처럼.

돈이 없었던 그는 3개월 동안 '셀프 공사'를 하고 '청춘호텔'을 열었다. 테이블 세 개에 바 테이블 하나. 가게 절반을 차지하는 주방은 오픈, 요리하는 모습이 다 보인다. 그는 "인색하지 않게 장사하고 싶어요. 제가 요리하고 서빙도 해요. 손님들이 음식 질문을 하면, 정확하게 답변할 수 있죠"라고 말했다. 테이블 세 개가 꽉 차서 두세 번 회전하는 지금이 좋다고 했다. 

김대열 셰프가 돈 아낀다고 3개월 동안 혼자서 작업해서 만든 '청춘호텔'
 김대열 셰프가 돈 아낀다고 3개월 동안 혼자서 작업해서 만든 '청춘호텔'
ⓒ 김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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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에서 대열과 '청춘호텔'을 같이 했던 은영이형은 서울에서 터를 잡고 부동산 실장으로 일한다. 음식 사업에 대한 꿈은 여전하다. 11월 말이면 군산으로 내려와서 대열과 함께 일할 예정이다. 자신이 대출받아 온 돈 천만 원을 대열이 날려 먹었을 때도 "잘 놀았다"고 한 영재는, 그 경험을 밑천 삼아 회사를 나왔다. 신사동에서 음식점을 한다.

장사는 인생과 같다. 빚을 질지 돈을 벌지 앞날은 모른다. 그래서 대열은 "우선, 재밌는 가게로 자리 잡고 싶어요. 사람들이 아지트처럼 올 수 있는 작은 가게요"라고 말한다. 곤두박질을 많이 치고서도 여전히 낙관주의자인 셰프 김대열. 그는 가게 잘돼서 큰 유원지가 있는 군산 은파로 진출하고 싶단다. 하지만 돈 벌어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다고.

"영재 머리가 많이 빠졌어요. 열심히 돈 벌어서 머리카락 심어 줘야지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매거진군산> 12월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작은 가게, #청춘호텔 김대열, #셀프 공사, #거듭된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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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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