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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정홍원 국무총리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성호 국민안전처 차장, 정홍원 국무총리, 이근면 인사혁신처장.
▲ 총리와 나란히 선 국민안전처 차장-인사혁신처장 지난 19일 정홍원 국무총리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성호 국민안전처 차장, 정홍원 국무총리, 이근면 인사혁신처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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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대국민 담화에 포함되었던 인사혁신처 출범

지난 19일에 국민안전처와 인사혁신처가 공동 출범했다. 기존 안전행정부가 정부의전, 민방위, 지방자치, 재난대응, 치안, 인사조직 등 세부적으로 10개가 넘는 업무를 관장하면서 전문성과 집중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과거부터 계속됐다.

특히 이번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재난대응 시스템과 공무원들의 복무기강 문제가 집중 조명됐다. 그 결과,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세월호 관련 대국민 담화를 통해 해경 해체 등 각종 대안을 제시했는데 두 부처의 독립신설도 담화내용에 포함되어 있었다.

본래 정부인사와 공무원 연금 업무는 전통적으로 국무총리 직속 총무처에서 관장해 왔다.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수립된 총무처는 인사 외에도 법령 및 조약의 공포, 국무회의 의안정리 및 서무, 행정사무 및 민원제도 개선, 공무원 상훈 등의 업무를 했다. 그러나 총무처는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내무부와 함께 행정자치부(행자부)로 통폐합됐다. 행자부는 그 후 행정안전부, 안전행정부 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지만, 업무 범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는 1999년 인사업무의 전문성과 중립성을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중앙인사위원회를 신설한다. 그러나 중앙인사위원회는 당초 설치 취지와는 달리 인사정책에 대한 권고와 이미 행해진 인사에 대한 심의 업무만을 담당했다. 자신의 고유권한을 뺏기는 데 대한 기존 총무처 출신 관료들의 반발이 상당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인사업무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오면서 행정안전부로 다시 이양되고 중앙인사위원회는 폐지되었다.

초대 인사혁신처장에 삼성 출신 인사 등용

인사조직업무가 다시 독립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제기되었지만, 주로 과거의 위원회형 조직의 부활이 바람직한 모델로 제시되었다. 인사업무의 정실성을 배제하고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합의형 조직이 낫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인사혁신처는 처장 개인이 지휘하는 독임제 조직이다. 이에 대해 정홍원 국무총리는 공직사회개혁의 속도감 있는 추진을 위해 필수적인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리하여 공직사회개혁을 지휘할 초대 인사혁신처장으로 이근면 삼성광통신 경영고문이 임명되었다. 그는 1976년 삼성그룹 입사 이후로 여러 계열사를 두루 거치면서 주로 인사업무를 담당한 인사전문가로 SSAT(삼성직무적성검사) 도입이나 연구원 직제 도입 등을 주도한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는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의 행복한 일자리추진단에서 활동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삼성 출신 인사가 인사혁신처 장관을 맡게 된 것에 대해 벌써부터 많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우선, 기업 인사와 공공부문 인사는 그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민간 전문가라고 등용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것이다. 민간기업이야 실적만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으면 되지만 공공부문은 청렴성, 공정성 등 복잡한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삼성은 무노조 경영과 총수 일인지배 체제로 수십 년간 운영되어 온 조직이다. 이런 조직문화에서 오래 근무해 온 사람이 과연 민주적 절차에 입각한 인사제도를 제대로 정착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공무원 연금 개혁 문제다. 공무원노조가 정권 신임투표까지 거론하며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신설부처인 인사혁신처로 주무부처가 변경되어 버렸다. 게다가 신임 이근면 처장은 "연금개혁 문제는 솔직히 이름만 안다. 시간을 주시면 공부하도록 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연내 처리 강행을 지시한 상황에서 불과 한 달 남짓한 시기에 어떻게 공부를 해서 사회적 합의까지 이끌어 내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노조와 협상경력이 전문한 삼성 출신 인사 아닌가? 결국 기존안대로 밀어붙이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삼성 출신 등용의 또 다른 의도는 없을까?

이상 거론된 부분들은 사실 원론적인 차원에서 제기되는 우려이고, 이번 인사에서 가장 심각하게 의심되는 부분은 따로 있다. 사실, 현재의 공무원 연금 개혁은 신호탄에 불과하고 연쇄적으로 국민연금 전체를 손 본 다음 민간보험사가 주관하는 민간퇴직연금 위주로 노후보장 체제를 개편하지 않겠냐는 의혹은 수차례 제기됐다.

공교롭게도 현재 민간퇴직연금 시장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는 기업은 다름 아닌 삼성생명으로 시장점유율은 약 14%다. 이외에 삼성화재도 3% 정도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삼성그룹에 막대한 이익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공무원연금개혁의 총책임자가 삼성 출신이라는 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인가?

이번 공무원연금개혁안의 초안을 만든 것은 한국연금학회다. 현재, 이 학회의 부회장을 삼성화재 현직임원이 맡고 있으며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소장도 이사로 등재되어 있다. 이외에도 한국투자증권,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등의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 미래에셋, 대우증권, 동양증권 등이 기관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모두 민간퇴직연금 시장에 이권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다. 삼성을 포함한 민간보험사들이 주축이 된 단체가 제도를 만들고 삼성 출신 공직자가 법제화를 완료하는 그림인 것이다.

한미FTA와도 관련 있는 연금개혁

지난 9월 22일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공무원노조 지도부와 노조원 200여 명이 토론회장에 대거 참석해 "연금개혁 해체", "새누리당 해체" 등의 구호를 외치며 소란을 피워 결국 토론회를 취소했다.
▲ 공무원연금개혁 토론회 공무원노조 저지로 무산 지난 9월 22일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공무원노조 지도부와 노조원 200여 명이 토론회장에 대거 참석해 "연금개혁 해체", "새누리당 해체" 등의 구호를 외치며 소란을 피워 결국 토론회를 취소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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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은 이미 발효된 한미FTA와도 연관이 있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은 서비스부문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포괄적인 개방을 원칙으로 한다. 즉, 개방할 부분만을 명시하는 포지티브 방식과 개방하지 않을 부분만을 명시하는 네거티브 방식 중 후자를 택한 것이다.

이것은 퇴직연금시장도 개방 분야에 포함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협정문에 공적퇴직연금제도와 법정 사회보장제도는 예외로 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적연금 얘기고, 민간연금은 역시 개방의 대상이다.

결국, 국가의 노후보장 시스템이 민간연금 중심으로 가게 되면 국민들의 노후가 FTA와 직접적 연관을 맺는다. 한미FTA 협정문에 래칫(Rachet) 금지조항이 있는데 이는 '역진방지조항'으로 번역되며 한 번 자유화된 내용을 뒤로 후퇴하지 못하도록 개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번 개방의 대상이 되면 폐해가 드러나더라도 다시 되돌릴 수 없고 무리하게 되돌리려 하면 외국 기업들이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등의 조항으로 국가에 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

국내 퇴직연금 시장에는 이미 AIA생명 등 외국기업이 진출해 있는 상태다. 이것은 결국 국민의 노후를 이용해 손쉽게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수단을 재벌과 외국자본의 손에 쥐어주고 대대손손 지켜줄 수 있는 무기까지 쥐어준 셈이다. 민간연금의 폐해가 드러나 심각한 사회이슈로 대두되더라도 외국과의 협정을 핑계로 공적연금을 다시 강화하는 것을 '합법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공적연금의 강화로 민간연금 가입률이 떨어지면 국가에 배상까지 청구할 수 있으니 이보다 완벽한 기득권이 있을 수 있을까? 국내 재벌들은 연금을 포함한 각종 서비스 시장에서 외국기업들과 카르텔을 형성해 파이를 어느 정도 그들에게 나누어 주는 대신, 그들의 막강한 보호장벽을 함께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일면 아무 연관도 없어 보일 수 있는 한미FTA, 연금개혁, 인사혁신처 문제가 하나의 거대한 끈으로 묶여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직시해야 한다.

인사혁신처장 교체하고 공적연금 문제해결 위한 사회 협의체 구성해야

이번에 새로 임명된 국민안전처장과 인사혁신처장에 대한 청문회가 곧 열릴 예정이다. 언론이나 야권의 관심은 주로 국민안전처에 쏠려 있다. 재난대응기능 강화라는 당초 취지와는 무색하게 군장성이나 경찰의 고위직 늘려주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인사혁신처장 인사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우려의 목소리가 있을 뿐 격렬한 반대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인사혁신처 인사와 조직구성 또한 청문회에서 소홀히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야권은 재벌 출신 처장 인사를 철회하고 신설 인사전담부처가 위원회형 조직으로 다시 구성되도록 압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개혁 문제에 관해서는 관련 전문가와 시민단체가 망라된 사회적 협의기구를 신설해 권한을 일임할 필요가 있다. 가뜩이나 신설조직인 데다 연금에 대한 전문 지식보다는 인사조직 전문가가 수장이 되어야 할 부처에 갑자기 국민생활의 중대사인 연금개혁을 맡기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신설 인사전담부처로 업무가 이관되더라도 공적연금 전반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틀이 완성될 때까지는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야 한다. 또, 기존 공무원연금 담당 부서와 인력은 사무처 형식으로 위원회 아래에 두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진보정책연구원 홈페이지(www.uppi.or.kr)에도 게재되었습니다.
* 글쓴이는 진보정책연구원 연구원입니다.



태그:#인사혁신처, #삼성, #공적연금, #FTA, #이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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