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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눈에 비친 내 모습
▲ 하늘강샘 누군가의 눈에 비친 내 모습
ⓒ 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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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통이 문제였습니다. 반찬통에서 새어 나온 김치 국물, 삐져나온 된장 장아찌 양념, 책 속 깊숙이 스며든 간장, 가방 한 구석에서 굼실굼실 피어나는 이상한 냄새…. 반찬통은 뚜껑을 열고 나서도 문제입니다.

계란을 입혀 구운 동그란 햄, 엿기름이 흐르는 마른 육포, 광고에서 본 동그랑땡, 설탕 단맛이 뼈 속까지 스며든 잔멸치 볶음, 친구들이 가져온 반찬입니다. 소 풀 무침, 된장 장아찌 고추, 신 김치 볶음, 장에 조리고 비늘이 덕지덕지 붙은 큰 멸치 무침, 비교되는 내 반찬통 앞에서 초라해지고 친구들에게 미안합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면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광고에 나오는 비엔나 소시지를 더 먹기 위해 친구 반찬통 앞 젓가락 싸움에도 슬쩍 끼는 척 해야 합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점심을 먹지만 내 반찬 쪽으로 오는 젓가락은 없습니다. 난 눈치껏 내 반찬통 반찬을 한 번에 많이 표 안 나게 빨리 먹어야 합니다. 친구 반찬보다는 늦지만 적당한 속도로 비워져야 합니다. 친구들 반찬통들이 바닥을 드러낸 후 마지막에 한두 번 젓가락질이 오는 것으로 위안을 받습니다.

급식의 꿈은 실현됐지만... 여전히 불안해 하는 아이들

지난 3월 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전농초등학교 학생들이 급식을 먹고 있다.
 지난 3월 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전농초등학교 학생들이 급식을 먹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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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애늙은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난해서 친구들과 같은 반찬을 싸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고, 부모님도 도시락을 내놓을 때마다 가슴 아파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늘 기다렸던 점심시간은 우리 집의 경제적 수준과 부모님 능력을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잔인한 시간입니다. 우연히 TV에서 본 외국 학교처럼 '학교에서 같은 반찬과 같은 밥을 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꿈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교사가 되고 나서 이 꿈이 현실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1~2학년 학생들은 학교 오자마자 "선생님, 언제 점심 먹어요?"라고 묻습니다. 급식소로 갈 때 아이들 얼굴은 집 나온 강아지처럼 들뜨고 촐랑거립니다. 말도 많아지고 목소리도 높아집니다. '행복하고 즐겁다'는 감정을 학생들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짜장면이 나오는 날이면 2번, 3번 배식대로 가서 더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든 학생들에게 행복한 급식 시간인 줄 알았지만, 이것도 착각이었습니다. 월말이면 영양사님으로부터 전화 옵니다.

"선생님반 김××가 3달째 급식비가 미납입니다. 이번 달 급식비 미납자 명단입니다. 확인 좀 해 주세요."

말하는 영양사님 맘도 편하지 않고 듣는 교사도 난감합니다.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가 실업자가 되어서 급식비를 낼 형편이 못 됩니다. 급식비를 못내는 아이들은 대부분 사연이 있고 사정이 딱합니다. 아이들에게 급식비 문제를 내색하거나 전화를 해 본적이 없습니다. 전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일은 한 두 번 급식 미납자 이름에 오르내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아이 눈빛에서 불안함이 보입니다.

"부모님이 급식비를 못 냈다."

이 사실을 자기 스스로 알았거나 좁은 지역 사회에서 말들이 돌고 돌아서 '급식비를 못 냈다'라는 말이 아이 귀에까지 흘러들어 갔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점심시간에 스스로 열등감과 불안감을 밥과 함께 씹고 있었습니다.

급식비를 못내는 아이의 고통은 가난을 경험한 어른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마운 일은 눈칫밥 먹는 아이의 심정을 이해하는 지역 독지가나 학부모들이 급식비를 아름아름 후원해 주셨습니다. 개인들 관심과 지원이 돈 없어 학교에서 상처받고 차별 받는 학생들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처럼 보였습니다. 아이의 밥 문제는 국가가 당연히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사실을 정치 지도자라면 그 때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급식비 지원? 못 내는 학생의 다른 모습일 뿐...

서울 한 초등학교의 급식. 2009년 당시 자료사진.
 서울 한 초등학교의 급식. 2009년 당시 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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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몰래 급식비를 지원 받으면 아이가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아이는 여전히 불안해 합니다. 돈이 없어서 급식비를 지원 받는 학생으로 학생들 사이에 낙인 찍혀 있었습니다. 급식비를 지원 받는 학생이 된다는 것은 급식비를 못 내는 학생의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돈을 내고 급식을 하는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그 학생은 여전히 점심시간 때마다 모멸감과 슬픔을 맛보아야 합니다. 무상급식이 학교에서 학생들 행복을 보장해주는 가장 현실적 정책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학생으로서 최소한의 기본 조건을 똑같이 만들어주는 것, 차별이나 차이 없이 함께 보호받는 것, 성장기에 경제적 조건과 상관없이 심신 발달에 적합한 영양식을 똑같이 먹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무상급식입니다.

정치가 문제입니다. 세상에 숨구멍을 내고 뉴스를 보면 우리나라 현실들이 새까맣고 불안하기만 합니다. 중요한 수많은 정책들을 앞에 두고 아이들 도시락 앞에서 이 핑계 저 핑계로 자기 재주와 힘을 자랑하는 정치인을 보면 참 딱해 보입니다. 반짝이는 자기 도시락만 챙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는 사회적 부를 나누는 활동이라고 배웠습니다. 정치인들이 이 활동을 어디에서 어떻게 하고 있고, 아이들 도시락은 어떻게 챙기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이들 도시락도 챙기지 못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존경받고 사랑받는 정치 지도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 정도로 나쁜 심보입니다. 권력을 등에 업고 우리 앞에 당당하게 지나갈 때, 우리는 고개 숙여 침묵합니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땅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벌거벗은 당신들, 당신만 모르고 있습니다. 참 딱합니다. 딱해 보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변영호 시민기자는 <거제뉴스광장>의 칼럼위원이자 오비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이 기사는 <거제뉴스광장>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무상급식, #학교이야기, #하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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