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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마을의 귀환> 독서 토론을 통해 협동조합 연구회 회원들은 공동체에 대한 소박한 희망을 갖게 됐다. 더불어 사는 삶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협동조합에 대한 어렵고 딱딱한 고정관념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중이다.

그 기세를 몰아 선택한 다음 책은 <협동조합, 참 좋다>(2012년, 김현대 외 지음, 푸른지식)다. 주로 외국의 사례긴 해도 실제로 잘 운영되고 있는 여러 협동조합의 사례를 들여다보며 성공에 대한 가능성과 다양한 상상력을 키우고자 함이었다. 매우 재밌게 읽었다는 회원의 반응에 힘을 얻었다. 두 번째 책의 토론이 시작된 것이다.

독서 토론만으로는 한계...

하지만, 독서 토론만으로 연구회를 유지해 나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기도, 미련한 일이기도 했다. 3주차쯤 지나자 하나둘씩 낙오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애초 모든 회원이 협동조합에 대한 강렬한 욕구와 실천 의지를 가지고 출발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큰 기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한두 분씩 자리를 비우게 되자 조금씩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시작한 연구회란 말인가? 척박한 이 지역에 협동조합의 싹이라도 틔워 보고자 머리 빡빡 밀고 시작한 연구회 아니던가? 손에 잡히지도 않는 짧은 머리칼을 쥐어짜며 고민했다.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역시 재미였다. 무슨 일이든 재미가 있어야 사람들이 모이는 법이다. 재미가 있는 곳에 신명이 있고, 바로 그곳에서 열정이 끓어오르게 돼 있다.

두 시간의 모임 중 절반은 책 토론에 할애하고, 나머지 절반을 다른 곳에 투자하기로 했다. 연구회를 만들고자 했을 때, 사실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협동조합의 대략적인 윤곽을 파악할 것과 토론하는 근육 키우기. 이 두 가지만 얻는다면 6개월 정도로 구상한 연구회의 과정은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협동조합에 대한 개념이야 차츰 책을 읽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될 터인데, 토론하는 훈련은 참 쉽지 않았다. 더구나,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빙 둘러 앉아 이야기 하다 보면, 한두 명쯤은 끝날 때까지 입도 뻥끗 안 하는 경우가 생긴다. 사람들을 나누어 최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도록 하는 게 급선무였다.

조를 나누어 토론을 진행하면 평소 발언이 없던 회원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 조별 분임토론 조를 나누어 토론을 진행하면 평소 발언이 없던 회원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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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분임 토론은 두 개조로 나누어서 진행됐다. 그리고 조별로 매주 수행 과제를 주었다. 첫째 주의 미션은 '협동조합을 기획해보시오'였다. 실질적으로 협동조합 설립을 위한 준비과정으로 만든 연구회이므로 각자마다 생각하고 원하는 협동조합의 형태가 있을 것이었다. 개개인이 생각하는 협동조합 중 토론을 통해 한 가지를 고르고 기획안을 작성해보기로 했다.

동네 빵집, 커피 전문점을 시작으로 대안학교, 요양원 등 다양한 협동조합을 제안하고 필요성을 호소했다. 이 자리에서 기획안으로 채택만 되면 내일이라도 당장 설립할 수 있을 듯 의욕에 넘쳐 열띤 토론이 오고갔다. 이것이 창업자의 설렘일까? 눈빛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조별로 한 가지씩 협동조합 기획안이 만들어졌다.

첫 번째 조의 기획안은 '건강수제치킨 협동조합'. 줄여서 일명 '꼬꼬쿱'이라는 치킨 협동조합이었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인기 식품인 치킨을 내 가족에게 먹일 수 있는 안전한 것으로 만들어 지역사회의 건강한 외식문화에 일조한다, 라는 다소 거창한 목적을 세웠다. 지난 회에서 잠시 소개됐던, 생닭을 튀겼던 바로 그 조다.

두 번째 조는 '텃밭에서 반찬까지' 라는 이름의 협동조합을 기획했다. 성당 주변의 텃밭을 어르신들께 일구도록 하여 일거리를 창출하고, 생산된 농산물을 가공하여 밑반찬으로 만들어 직접 판매하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혼합된 형태의 협동조합을 구상하였다. 협동조합의 가치에 한걸음 더 다가간, 약간은 교과서 냄새가 나는 조다.

기획안부터 사업계획서까지

조별로 2주간에 걸쳐 준비한 사업계획서를 발표하는 시간
▲ 사업계획서 발표 조별로 2주간에 걸쳐 준비한 사업계획서를 발표하는 시간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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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주는 기획안까지 작성하고 마무리 지었다. 둘째 주는 구체적인 사업계획서를 만드는 미션을 주었다. 1주일간 회원들이 각자 정보를 구하고, 모임 자리에서 바로 사업계획서를 만드는 것이었다. 꼬꼬쿱팀은 세부적인 사항에 굉장한 공을 기울였다. 기름 한통으로 몇 마리까지 튀겨내야 과연 건강한 치킨이라 말할 수 있는가를 가지고 한참을 토론했다. 당연히도 결론은, 일단 튀겨서 먹어보자였다.

텃밭과 반찬 팀은 협동조합의 취지와 목적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했다. 소비자들에게 신선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한다, 어르신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하고 젊은 세대들의 욕구에 대응한다, 세대 간 전통 음식 문화를 전수한다, 등등 새마을 운동 때와 같은 각종 원칙적인 구호들이 오고갔다.

그렇게 모인 아이디어와 계획으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다음 주에 발표하기로 했다. 3주차의 시작은 조별 사업계획서의 발표와 함께였다. 월 예상 매출액과 수익까지 예상해온 꼬꼬쿱 팀의 열정과 1년간의 세부 진행 일정표를 작성해온 텃밭과 반찬팀의 꼼꼼함에 모두 박수를 쳐주었다.

그 다음 미션은 당연히 상대조의 계획서를 평가하는 시간이 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세 번째 미션으로 제시한 것은 '상대조의 사업계획서를 수정 보완하시오'였다. 어차피 연습 삼아 진행한 과정인데, 마지막까지 협동의 의미를 느끼게 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내부에 매몰되지 않고 밖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를 끄집어냈던 것이다.

다름의 미학, 발휘하다

성당 주방에서 직접 튀기며 색깔과 맛등을 조사한다
▲ 건강 수제치킨 제작 과정 성당 주방에서 직접 튀기며 색깔과 맛등을 조사한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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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이 끝날 때마다 돌아가며 밴드에 올리는 후기에서 한 회원이 이런 글을 적었다.

"서로의 사업계획서를 보완하기 위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과 효용을 위해 포기한 부분을, 또 다른 우리가 보태고 알게 하는 시간이었다고 할까요? 다름의 미학이 발휘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연구회 모임을 시작하고 한 달 여쯤 지난 시점이었다. 협동조합을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지만, 적어도 협동의 의미는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기분은 나만의 것은 아니었을 게다. 또한, 조별로 나뉘자 침묵을 지키고 있던 회원들도 적극적인 자세로 토론에 임하게 되는 큰 선물까지 받게 되었다. 협동조합 연구회는 순항 중이었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태그:#협동조합, 참 좋다, #협동조합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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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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