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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 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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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소년이 있다. 가족과 학교 그리고 마을의 기대에 파랗게 질려버린 미약한 소년이. 그는 슈바르츠발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소년은 아주 비상하고 똑똑했다. 속된 말로 개천에서 용이 났기에 가족은 그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그의 진로는 아주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그 옛날 공부를 잘 하면 적성과 흥미에는 상관없이 '사'자가 붙는 직업을 가졌던 것처럼 그는 신학교 입학을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개천을 벗어나 넓은 바다로 간 그는 무수히 많은 용들에게 둘러싸이게 된다. '영재','수재' 혹은 '천재' 소리를 듣던 아이는 자괴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과연 신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그가 정말 원하던 것인지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이 소년은 바로 작가 헤르만헤세에 이해 1906년에 출간된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다.

내가 이 작품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이유는 한스 기벤라트와 비슷한 나이었을 무렵 독서실 책상 아래에서 읽었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친구가 나를 꼬드겼다.

"야, 우리 독서실 가서 놀자."
"무슨 소리야. 독서실에서 어떻게 놀아."

친구의 제안은 어린 내게도 터무니없이 느껴졌지만 손해 볼 건 없겠다는 생각에 따라나섰다. 독서실에는 우리 둘 밖에 없었고 참 조용했다. 가방을 벗어놓자마자 친구는 자리를 마련해줬다. 사실 그 독서실은 새벽 5시까지 영업을 해서 각 책상 밑에 이불이 놓여있었는데 그걸 널찍한 바닥에 깔고 그 아래 앉아서 책을 보자는 것이었다.

"나 종종 이러고 놀아. 이러려고 오거든."

마치 다락방에 숨어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책을 덮고 나니 독서실 책상 아래서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었다는 게 참 묘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독서실을 빠져나오면서도 한스 생각에 진땀이 났다. 두통을 달고 살면서도 쉴 수 없었던 소년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러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들에게 자신과 같은 삶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아버지. 어릴 때는 많이 놀아야 한다는 구둣방 주인.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그의 단짝 하일너까지. 하지만 정작 그에게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건지 사랑은 무엇인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너무 크게 좌절하고 실망한 나머지 어린나이에 삶을 등져야 했다.

백 년도 훨씬 전에 쓰인 이 소설의 한 소년이 더 가엾게 느껴지는 건  독일의 한스를 대한민국의 철수로 바꿔도 별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 곁에는 한스와 같은 소년들이 많이 있다. 정작 배워야 할 것은 배우지 못하고 세상에 대해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환상만 키우고 있을 그들. 어른이 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그들. 하지만 사실 어른이 된다고 뾰족한 수는 없다.

"아주 지쳐 버리지 않도록 해라.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에 깔리게 될 테니까."

소설 속 교장선생님의 말처럼 우리는 지쳐서는 안 된다. 그러면 세상 아래에 깔리게 될 테니까.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지음, 소담출판사(1998)


태그:#수레바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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