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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겨울부터 농사를 지은 배추이지만, 거의 폐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3월 29일에 찍은 사진, 남편은 배추를 지난 4월에 폐기했다.
 2013년 겨울부터 농사를 지은 배추이지만, 거의 폐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3월 29일에 찍은 사진, 남편은 배추를 지난 4월에 폐기했다.
ⓒ 김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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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농사를 짓는 것은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자기가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마음 편한 직업이라고 말한다. 농사를 경영이라고 한다면 농민 개개인이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니 다들 고집에 센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마음 편하게 살고자 내려온 시골에서 이장도 하면서 나름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마음은 무거워지고, 속은 점점 답답해지고, 현실은 어두워져만 갔다.

농사짓는 남편에게는 이 나라, 저 나라와 맺는 FTA가 상황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특히 양파와 마늘 농사가 주농산물인 남편에게 다른 나라와의 FTA보다 한중FTA는 훨씬 더 큰 타격을 안겨 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농민들은 올해 좀 값이 비싼 농산물이 있으면 다 그쪽으로 몰린다고, 그래서 다음해에는 풍년으로 제값을 못 받는 일이 허다하다고 말이다. 그 말에는 농민들이 부화뇌동한다는 인식이 들어있다. 도시에 사는 친인척에게서도 그 말을 들었다.

나는 답답했다. 억울한 것은 실상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도시인들의 선입견에 농민의 시름만 깊어진다

남편의 경우를 봐도 어디서 돈 많이 번 작물이 있다고 해도 그냥 그걸 따라서 농사짓지 않는다. 작년이나 올해나 작물은 배추, 콩, 양파, 마늘이다. 그 작물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돼지고기 값이 비싸다고 남편이 양돈을 하겠는가? 아니면 도라지가 비싸다고 도라지를 심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작년에 재미를 보든 안 보든 자기가 심는 작물은 쉽게 바꾸지 않는다.

문제는 FTA 협정국가가 늘어날수록 작물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는 점이다. 한-칠레 FTA로 포도 농가의 타격이 있었고, 한-EU FTA로 삼겹살의 타격이 예상됐다. 이 나라들은 한국과 다소 멀다. 하지만 중국은 아주 가깝다. 겹치는 작물도 아주 많다. 김치가 들어오는 판에 배추가 무슨 대수겠는가. 참깨, 참기름도 중국산이다.

가능하면 FTA 협정에 해당되지 않는 작물 중에서 농사 작물을 선택하려고 할 텐데 문제는 그 수가 한정될 수밖에 없고, 한정된 작물 수에서 선택을 하다보니 특정 작물에 몰리는 현상이 안 생길 수가 없다. 여기에 그 지역의 날씨나 토질에 따라 작물 선택의 폭은 더욱 더 좁아진다. 한정된 작물을 농사짓는 농민이 많아진다. 그 해 풍년이 들면 농산물 값은 싸질 것이고, 흉년이 되면 물가 안정을 위해 외국에서 그 농산물을 수입해 올 테니 이래저래 농민들은 농사로 돈 벌기는 어렵다.

올해는 배추가 아주 풍년인가 보다. 무안 밭마다 배추 작업이 한창이지만 농민들 얼굴에는 가격이 너무나 떨어진 배추값 때문에 그리 밝은 얼굴을 아니다.

배추를 뽑고, 배추를 차에 싣고, 운반하고, 다시 내리고 하는 모든 작업에 인건비가 들어간다. 인건비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배추망이나 간식비, 식비도 무시할 수 없다. 인건비는 비싸면 하루 10만 원이 넘을 때도 있다. 배추 작업의 경우 배추 한 망을 담으면 250원인데 많이 담는 사람은 1000망도 담는다. 그러면 한 사람이 받아가는 돈이 25만 원이 된다. 작업 과정을 거쳐 그렇게 배추는 차에 실려 나가지만 손에 쥐어지는 돈보다 이런저런 이름으로 나가는 경우가 더 많다.

남편의 통장은 돈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잠시 머무르는 정류장이다. 며칠 안에 남편은 어느 한 밭의 배추를 작업할 예정이다. 거기에 들어가는 돈이 220만 원이라고 한다. 하루 동안의 배추 작업 일부를 위해서 말이다. 나가는 돈은 뭉텅 나가고, 들어오는 돈은 찔금이다.

남편은 나의 한숨에 묻는다. 그 검은 얼굴로 태양 아래서 농사지으며, 지금까지 어떤 시대에 농사꾼이 대접 받은 적이 있었냐고….


태그:#배추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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