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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새벽녘 어렴풋이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이 안 떠진다. 겨우 두세 시간 잔 것 같다. 심야버스로 낭쉐에서 바간까지 근 9시간을 달려 새벽 3시 반에야 숙소에 도착했다. 침대에 달라 붙은 몸은 천근만근의 무게로 의식의 지배를 밀어낸다. 잠시 후 다시 '똑똑똑똑' '똑똑똑' 계속 해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집중하여 들으니 방문 쪽이 아니라 창문 쪽이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라! 분명 2층 방이었는데 뭐지?'

실눈으로 창문을 바라보았다. 밖은 이미 환하게 밝았다. 잠시 후 다시 뭔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서 살펴보니 콩새 크기의 새 두 마리가 창문을 쪼아대는 것이었다.

'와우~ 미얀마 새는 창문을 두드린다. 그야말로 언빌리버블(Unbelievable)! 대박이다!'

이런 경험을 혼자 경험하고 나서 누군가에게 얘기했다면 난 아마 뻥쟁이 취급을 당했을 거다. 다행히 일행도 같이 경험했기에 이렇게 당당하게 쓴다. 솔직히 미얀마 다른 곳의 새들도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바간에서 새들이 창문을 두드렸다는 사실뿐이다.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새들이 했던 친밀한 행동으로 봐서는 우리 이외에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가 있었음은 분명했다.

미얀마에서는 이렇게 달려 있는 벼 이삭 묶음을 종종 볼 수 있다.
▲ 흥앗따잇1 미얀마에서는 이렇게 달려 있는 벼 이삭 묶음을 종종 볼 수 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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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받은 미얀마 참새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양곤에서 본 독특한 것과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미얀마에서는 동네 골목길이나 시장 거리의 나무 또는 벽에 벼이삭을 한 움큼씩 매달아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처음 봤을 때 호기심으로 관찰했는데 참새들이 날아와 낟알을 쪼아 먹는 게 보였다. 현지 사람에게 물어보니 참새밥이라고 한다. 새에게 모이를 주기 위해 일부러 벼 이삭을 묶어 나뭇가지나 담벼락에 달아주는 수고를 한 것이다.

미얀마 말로 '흥애싸'이라고 불렀다. 이것을 처음 봤을 때 신기하기도 하고 멋지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 문화로 치자면 지금은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진 까치밥 문화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와 다르게 현대문명 속에서도 여전히 생활 속에 지켜가고 있는 미얀마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미얀마 참새들은 참 복 받은 새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것 저곳에 매달려 있는 흥앗따잇
▲ 흥앗따잇 2 이것 저곳에 매달려 있는 흥앗따잇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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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지수 세계 1위 미얀마의 비밀?

미얀마 사람들에게 보시는 이처럼 일상이다. 불교의 영향이 크겠지만 그럼에도 생활 속에 실천하며 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거리 곳곳에서 흰 쌀밥이 놓여 있거나 흥애싸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연의 모든 생명과 상생하는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다. 바간의 새들이 진짜 먹이를 달라고 우리 잠을 깨웠던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무엇이든 쪼아대는 새의 습성을 본 것인지는 진실은 아직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 새들이 분명 우리에게 친밀감을 표시한 것으로 보였고 미얀마 사람들의 마음과 관련이 있음을 확신한다. 항상 사람이든 동물이든 나보다 더 어려운 대상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그것을 몸소 행하는 미얀마 사람들의 마음 말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마음이 보석이다. 이 마음이 흥애싸에 달려 있다. 나눔이란 가진 것이 많아서 나누는 게 아니라 많든 적든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기부지수 세계 1위 나라가 바로 미얀마다. 연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270달러(약 140만 원, 2014년 기준)에 불과한 세계 최빈국 중에 하나인 나라가 세계에서 기부지수 1위라니 놀랄 만한 일 아닌가?

영국에 본부를 둔 자선구호재단(Charities Aid Foundation)이 최근 발표한 올해의 국가별 '기부지수'(Giving Index) 순위에서 미얀마가 캐나다(3위)와 아일랜드(4위), 뉴질랜드(5위) 등을 제치고 미국과 함께 공동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연간 1인당 GDP가 2만8739달러인 우리나라는 60위라고 하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미얀마 거리에는 새나 다른 짐승을 위한 보시를 볼 수 있다. 자세히 보면 버린 게 아니라 일부러 준 것을 알 수 있다.
▲ 생활 속의 보시 미얀마 거리에는 새나 다른 짐승을 위한 보시를 볼 수 있다. 자세히 보면 버린 게 아니라 일부러 준 것을 알 수 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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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자신 외에 다른 생명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우리의 순수한 본성 속에는 누구나 때묻지 않은 이 배려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지나친 시장주의와 자본주의 팽배는 배려하는 마음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탐욕과 경쟁 그리고 시기와 질투심으로 채웠다. 나눔의 시작은 물질이 아니라 바로 배려의 마음이다.

많이 가져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에서 나눔은 시작되는 것이다. 미얀마 거리의 흥애싸에서 배려의 마음을 본다. 집집마다 달려 있는 흥애싸에서 나눔의 마음을 배운다. 미얀마 사람들에게는 시기와 질투, 경쟁과 탐욕보다는 배려와 나눔의 마음이 더 많이 달려 있다. 흥애싸에 달려 있는 벼이삭처럼 말이다. 어떤 이는 미얀마를 못사는 나라라고 무시할지 모르지만 아직도 물질적 풍요와 바꿀 수 없는 배려와 나눔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미얀마, 참 멋진 나라다.

흥앗따잇을 보며 우리의 까치밥 문화가 생각났다.
▲ 흥앗따잇과 까치밥 흥앗따잇을 보며 우리의 까치밥 문화가 생각났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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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도 까치밥 정도는 남겨 두며 살자

"서너 개는 남겨 놓고 따거라."

오랜만에 주인 없는 고향집엘 갔다. 벌써 5년째 병상에 계신 어머니의 목소리가 감나무에 달려 있다. 늦가을 감나무는 여름내 살찌웠던 열매를 내놓아야 한다. 감나무에 올라가 낑낑대는 나에게 어머니는 항상 인정머리 없이 다 따지 말고 까치밥 서너 개는 남겨 놓으라고 일렀다. 그리 풍족하지 않은 시절에도 말 못하는 짐승을 생각하며 서너 개의 까치밥을 남겨 두는 아량은 있었다. 함께 살아 가는 푸근한 정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까치밥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물질적 풍요를 가져온 경제성장은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혀주었지만 함께 나누며 살던 마음도 함께 없앴다. 어느 외국인이 1970년대 한국을 여행한 후 우리의 까치밥 문화를 보고 한국인의 마음 씀씀이에 대해 칭찬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이방인이 지금 다시 한국을 찾는다면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다.

까치밥은 우리 문화 속에 들어 있는 배려와 나눔의 마음이다.
▲ 까치밥과 새 한마리 까치밥은 우리 문화 속에 들어 있는 배려와 나눔의 마음이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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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푸근한 고향집 감나무에는 올해에도 까치밥 서너 개가 동그마니 달려 있었다. 미얀마의 흥애싸가 생각났다. 아직 우리 고향은 모든 것을 다 잊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따뜻해졌다. 드시지는 못하지만 이번 주말 요양원 갈 때는 홍시 몇 알 사가야겠다. 고향집 감나무에는 아직도 정정한 어머니의 음성이 달려 있었다.

"까치밥 서너 개는 남겨 놓고 따거라."

덧붙이는 글 | ※ 미얀마말은 현지어 발음 중심으로 표기 하였으며 일부는 통상적인 표기법을 따랐습니다.



태그:#미얀마, #세계기부지수1위, #기부지수, #흥앗따잇, #까치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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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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