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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손님이 평소보다 더 없었죠. 도서 정가제 시행 전날(20일) 온라인 서점 서버가 나갈 정도로 사람들이 책을 샀는데 당분간 뭐 있겠어요?"

24일 마포구의 한 동네 서점. 서점 주인 한인식(가명)씨는 주말 매출을 묻자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도서정가제가 자리잡으면 소비자들이 동네 서점을 찾지 않겠느냐'고 묻자 한씨는 "사정 모르는 소리"라면서 손사레를 쳤다. 그는 "여기서 참고서·문제집 사가던 학생들이나 꾸준히 오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출판업계와 동네 서점을 살린다는 취지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도입한 도서정가제가 지난 21일부터 시행됐지만 정작 수혜자로 지목된 일선 중소서점 업주들은 비관적인 반응을 보였다. 시행 전에도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안 했고 앞으로도 기대가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일부 업주들은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뭘 알고 취재하는 것이냐'며 따지기도 했다. 이들은 "도서정가제의 진짜 수혜자는 온라인 서점들"이라면서 "동네 서점을 정말 살리려면 공급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도서정가제 시행 전 사재기 효과... "매출 거의 반절 수준"

 24일 신촌의 한 서점 내부.
 24일 신촌의 한 서점 내부.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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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란 모든 판매처에서 동일하게 도서의 할인율을 정가의 15% 이내(가격할인 10%, 포인트적립 5%)로 제한하는 제도를 말한다.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 간의 압도적인 가격 차이 때문에 중소 서점들의 폐업이 속출하자 정부가 관련법을 고쳐 보완책을 낸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03년 2247개였던 전국 서점 숫자는 2013년 말 기준 1625개로 27.7% 가량 줄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이 시기 폐업한 서점 중 96.7%는 매장 면적이 165㎡(50평) 미만인 소형 점포였다.

대형 서점 위주의 과도한 할인 경쟁을 막아 동네 서점의 숨통을 틔워주자는 취지로 제도가 시행됐지만 일선 서점에서 느끼는 첫 주 효과는 미미했다. 신촌 지역의 중형 서점인 홍익문고의 박세진 대표는 "아직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일단 지난 주말은 매출이 오히려 소폭 줄었다"고 설명했다.

종로구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김영규(가명)씨는 "도서정가제 시행 때문에 손님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새 도서정가제 아래서는 이전처럼 책을 싸게 구입할 수 없다는 소문이 돌면서 제도 시행 직전인 지난주 내내 소비자들이 온라인 서점을 이용해 '책 사재기'를 하는 바람에 평소보다 책 구입 수요가 뚝 떨어졌다는 것이다. 김씨는 "매출은 거의 반절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도서정가제, 동네서점 살리기와 관련 없어"

이날 만난 서점 주인들은 앞으로의 도서정가제 효과에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법에서는 모든 판매처에 정가 15% 이내 까지만 할인을 허용한다고 했지만 빠져나갈 구멍이 많기 때문에 여전히 사실상 온라인 서점쪽의 할인폭이 크다는 것이다. 온라인 서점 할인폭이 크면 소비자는 굳이 중소 서점에서 책을 살 이유가 없어진다.

새 정가제의 대표적인 '구멍'은 신용카드 할인이다. YES24, 알라딘 등 대형 온라인 서점에서는 결제시 자사와 제휴를 맺은 특정 신용카드를 이용하면 많게는 25%까지 추가할인을 해주는데 이 부분은 현재 도서정가제의 규제대상이 아니다.

온라인 문화상품권을 이용한 구매도 '구멍'이다.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정가보다 10% 정도 할인된 가격에 판매되는 온라인 문화상품권을 구매해서 결제할 경우 책값을 10% 할인 받는 효과가 있다. 이 역시 현행 도서정가제와는 관련이 없는 내용이다. 김씨는 "소비자들은 이런 것을 꼼꼼히 따져서 책을 산다"면서 "결국 도서정가제는 중소서점 살리기와는 별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서점 주인들은 "정부가 새 도서정가제 할인 기준으로 제시한 15%도 동네 서점에게는 벅찬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오는 '공급률'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온라인서점이나 교보문고 등 대형 서점들은 출판사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직접 책을 공급받지만 동네 서점들은 중간 유통사를 거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할인 여력이 적다.

"도서정가제로 온라인 서점들만 더 유리"

출판업계에 따르면 4대 온라인 서점의 도서 공급률은 책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65% 전후다. 정가 10000원 짜리 책이 6500원에 온라인 서점에 공급된다는 의미다. 박세진 대표는 "홍익문고의 공급률은 평균 72~73% 정도"라면서 "여기서 15% 할인을 하면 마진이 12% 밖에 안 남는다"고 털어놨다. 그는 "공급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동네서점 살리기는 별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오히려 도서정가제로 온라인서점들이 더 유리해졌다"고 주장했다. 기존에는 옥션, 11번가 등 오픈마켓 판매자들이 출간 후 18개월이 지난 구간 도서를 50~60% 가격에 싸게 팔면서 온라인 서점들과 경쟁했던 것이 이제는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온라인서점인 YES24는 정가제 시행 전인 지난 9월과 10월 두 달 동안 주가가 50% 이상 오른 상태다.

한편 이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90여 권의 재정가도서가 추가로 등록되면서 도서정가제로 3000여 권의 도서 가격이 다시 매겨지게 됐다. 재정가도서란 출판사가 책 겉면에 찍히는 가격을 재설정한 책을 말한다. 정부는 새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면서 18개월 이상 된 구간 도서의 할인을 제한하는 대신 출판사가 정가를 다시 정할 수 있게 허용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등록된 재정가도서 가격은 기존 가격에서 평균 57% 가량 내려간 가격인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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