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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회사를 나가 보니 기타가 여기 문앞에 있다.
▲ 기타가 왜 여기에? 오전에 회사를 나가 보니 기타가 여기 문앞에 있다.
ⓒ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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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는 기타 모임과 글쓰기 모임이 있는 날이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작은책> 사무실 문을 열었다.

"어, 이게 왜 여기 있지?"

기타 한 대가 문 바로 앞에 있는 분리수거 통 위에 올려 있다. 누가 치고 갔나? 어라? 창문 높이 비슷한 책장 위가 내려 앉아 있다. 이건 또 왜 이러지? 이상하다. 작은책 일꾼이 나오면 물어봐야겠다. 나 없는 새 누가 왔다 갔나? 기타를 제자리에 갔다 놨다 등등 이런 생각을 한 끝에 별 생각 없이 컴퓨터를 켜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오후 2시가 돼 작은책 일꾼 한 명이 나왔다.

"이게 왜 무너져 있지?"

기타를 치워 보니 책장 위가 내려앉아 있다.
 기타를 치워 보니 책장 위가 내려앉아 있다.
ⓒ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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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꾼이 들어오면서 나한테 물었다. 그 소리를 듣고 아 참, 기타가 왜 거기 있었는지 물어봐야겠다, 하는 순간, 아차 도둑이 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번뜩 스쳤다. 내 방으로 얼른 가 봤다. 기타가 없어졌다. 마틴 미니기타가 없어졌다. 또 뭐지? 내 기타는 있나? 있다. 그런데 내 기타 케이스 하나가 없어졌다. 일꾼 얼굴이 하얘진다. 그 기타는 작은책 일꾼 기타다. 미니 기타.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인 에드 시런 모델로 나온 한정판 기타다. 가격은 82만 원 정도로 아주 비싼 기타는 아니지만, 아주 귀엽고 앙증맞아 일꾼이 아끼는 기타다. 일꾼 얼굴이 울상이다.

마틴 기타는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 모델로 한정판이다.
▲ 도둑 맞은 기타 마틴 기타는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 모델로 한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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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없어진 게 있나? 이것저것 살펴봤지만 없는 것 같다. 사무실 가운데 놓여 있는 의자 위에 카메라도 그대로 있다. 독자사업부 금고를 열어 보니 만 원짜리 한 장하고 천원짜리 두 장이 있다. 이것도 건드리진 않은 거 같은데?

도둑이 들어 온 창문을 다시 살펴봤다. 내려앉은 책장 위에 도둑이 밟은 운동화 바닥 무늬가 흐릿하게 보인다. 그런데 왜 기타 한 대는 못 가져가고 여기에 걸쳐 놨을까? 도둑 것하고 우리 마틴 기타에다가 또 이것도 가져가면 세 대라 무거워서 못 가져갔을까?

주방에 딸려 있는 창고로 가봤다. 웬 헌 기타 케이스가 하나 있다. 헐. 이건 누구 거지? 그 도둑이 두고 간 것이다. 내 기타 케이스에 자기 기타를 넣어 갖고 간 건가, 뭐지? 근데 이걸 왜 여기 창고에다 버려 놓고 갔을까? 이건 아는 놈이 한 짓이다. 누굴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 둘레엔 그렇게 도둑질 할 사람이 없다. 일단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두 명이 왔다. 사진을 찍고 둘러보고 진술서를 쓰라고 한다. 잃어버린 물건을 적었다. 또 있느냐고 물어보는데 아무리 봐도 없다. 컴퓨터 내장 하드는 있는지 경찰이 물어 컴퓨터를 켰다. 아무 이상이 없다. 경찰은 사무적인 태도로 사진 몇 장 찍고 진술서 받고 한마디 했다.

"신고 접수 됐으니까요 담당 형사한테 한 번 전화가 오든 할 겁니다."

참, 성의가 없다. 운동화 발바닥 무늬, 창문에 붙어 있는 지문들, 도둑이 버리고 간 기타케이스, 등등 금방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증거들이 있어도 별 관심이 없다. 역시 과학수사는 영화에서만 보는 거로구나. 영화에서 보니까 뭐 돋보기 같은 걸로 바닥을 보고, 밀가루 같은 가루를 뿌려 지문을 찾아내고 하던데 다 뻥이구나.

이 기타 말고 그 사이에 있던 기타 한 대와 기타 케이스가 없어졌다.
 이 기타 말고 그 사이에 있던 기타 한 대와 기타 케이스가 없어졌다.
ⓒ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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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동네 CCTV 확인만 하면 그 도둑은 금방 잡을 수 있다. 시간은 21일, 금요일 저녁 5시 이후부터 그 다음날 토요일 아침이다. 그 시간대에 기타 케이스 두 대를 들고 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잡을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잃어버린 게 기타만이 아니다. 월요일 아침에 나와 지난번 편집회의 때 남긴 자료를 찾다 보니 넷북이 없어졌다. 소니 사진기, 일꾼 책상 서랍에 있던 외장 하드 두 개도 없어졌다. 가격은 기타 82만 원, 케이스 대충 15만 원 정도, 카메라 살 때 든 가격은 80만 원 정도, 넷북 60만 원, 외장 하드 한 15만 원 정도? 합치면 252만 원이다. 그게 살 때 가격이지 지금은 다 팔아도 100만 원도 못 받을 거다. 아참, 금고에 들어 있던 돈 중에도 딱 1만 원만 갖고 갔다. 왜 다 안 가져가고 1만 원밖에 안 가져갔을까? 집에 갈 택시비?

기타에 시리얼 넘버가 있다. 함부로 팔 수도 없는 기타다.
 기타에 시리얼 넘버가 있다. 함부로 팔 수도 없는 기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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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잃어버린 물건을 신고하려고 다시 112에 전화했더니 사건이 마포서로 넘어갔다고 한다. 마포서로 전화했다. 왜 형사들이 안 오느냐고 물었다. 전화 받은 이가 대답하기를 어제 밤 근무라서 내일 아침에 온다고 한다. 어제 밤 근무면 그저께 또는 어제 와 봐야 되는 거 아닌가? 우리나라 경찰은 이런 자잘한 절도 사건엔 이렇게 신경을 안 쓴다. 그저 노동자 집회에서 노동자들 채증 사진만 찍고, 벌금 매기고, 잡아들이는 데만 정신을 쏟고 있다. 어디 두고 보자. 잡을 수 있는 도둑도 못 잡는다면 경찰 자격이 없다. 해경처럼 해산하라는 소리 안 듣고 싶으면 얼른 잡아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도둑은 어떤 놈일까? 추리를 해 봤다. 먼저 기타를 치는 자, 거기다 마틴 기타를 아는 자, 작은책 사무실에 한 번이라도 온 자. 누군지 짐작이 간다. 혹 진범이 따로 있을까 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한 명 짐작 가는 사람이 있다. 경찰이 못 잡으면 내가 몇 날 며칠 미행이라도 해서 잡는다. 얼른 갖고 와서 백배 사죄하라. 봐줄지 말지는 그다음 결정하겠다.

창고에는 자기 기타 케이스를 버리고 갔다. 이상한 놈이다.
 창고에는 자기 기타 케이스를 버리고 갔다. 이상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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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작은책, #기타, #안건모,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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