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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천탑'으로 알려진 운주사의 석불. 파격적인 생김새를 하고 바위 벽이나 아래에 비스듬히 기대거나 앉아 있다.
 '천불천탑'으로 알려진 운주사의 석불. 파격적인 생김새를 하고 바위 벽이나 아래에 비스듬히 기대거나 앉아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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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는 보통의 절집과 다르다. 소박하다. 대웅전이 위압적이지 않고 불상도 근엄하지 않다. 석탑도 정교하지 않다.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아 자유분방하다. 담장이 따로 없고 천왕문이나 불이문도 없다. 부도도 하나 없다. 소소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절집이다. 그래서 더 정겹다.

운주사는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에 있다. 첫인상은 한 마디로 '제멋대로'다. 석불이 바위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서 있거나 앉아있다. 편안해 보인다. 얼굴도 제각각이다. 홀쭉한 것도 있고 동그란 것도 있다. 눈매는 희미하다. 눈이 이마 쪽으로 올라붙은 비대칭도 있다. 코와 귀는 닳아 없어졌다. 이목구비를 제대로 갖춘 게 없을 정도로 못생겼다. 어찌 보면 우습게 보인다.

"석불의 코와 귀가 떨어져 나간 건 미신 때문이죠. 돌부처의 코를 긁어다가 삶아 먹으면 아이를 낳는다는, 귀를 삶아 먹으면 과부나 처녀가 애를 뗀다는 속설의 결과물입니다. 키가 큰 석불이 상대적으로 성한 것은 사람들의 키가 닿지 않았다는 것이고요."

지난 16일 오후, 운주사에서 만난 양해숙 전남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이다.

운주사 석불과 석탑.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안한 자세로 바위 벽에 기대고 서 있다.
 운주사 석불과 석탑.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안한 자세로 바위 벽에 기대고 서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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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의 코와 귀가 떨어져 나간 이유는? 양해숙 전남문화관광해설사가 석불의 코와 귀가 떨어져나간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석불의 코와 귀가 떨어져 나간 이유는? 양해숙 전남문화관광해설사가 석불의 코와 귀가 떨어져나간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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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야 어떻든 석불에서 위엄이나 자비는 찾아볼 수 없다. 단순하고 투박해 보인다. 그래서 더 친근하게 다가선다. 시인 정호승의 표현처럼 '오랫동안 집 떠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다정한 식구들' 같고 '골목에서 마주친 이웃들' 같다. 그만큼 파격적이고 해학적이다. 그럼에도 있어야 할 곳에 잘 어우러져 있다.

석불 가운데 압권은 석조불감(石造佛龕)이다. 돌집에 석불 두 기가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다. 돌집도 팔작 모양의 지붕 위에 용마루를 얹었다. 나무로 지은 집처럼 생겼다. 문을 열고 닫은 흔적도 남아 있다. 오래전 돌문이 달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다. 보물(제797호)로 지정돼 있다.

운주사 석조불감과 원형다층석탑. '보물'로 지정돼 있다.
 운주사 석조불감과 원형다층석탑. '보물'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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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등성이에 선 운주사의 석탑. 못생겼다고 '거지탑', '동낭치탑'으로 불린다.
 산등성이에 선 운주사의 석탑. 못생겼다고 '거지탑', '동낭치탑'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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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도 매한가지다. 절 언저리 산골짜기에 서 있다. 대부분 자연암반을 그대로 떼어내 기단으로 삼았다. 가장 미려한 9층 석탑의 기단은 크고 작은 돌로 받쳤다. 자세를 낮춰서 보니 크고 작은 돌들로 기단 아래에 촘촘히 박혀 있다. 흡사 고인돌 같다.

호떡이나 항아리 모양의 돌을 쌓아놓은 것도 있다. 동그란 돌탑은 제기 위에 떡을 포개놓은 것 같다고 '떡탑', 호떡 같다고 해서 '호떡탑'으로도 불린다. 항아리처럼 생긴 돌탑은 이른바 '요강탑'이다. 산언덕에 있는 못생긴 탑은 '거지탑', '동낭치탑'이라고 한다. 하나같이 파격적인 생김새를 하고 있다. 규범이 없다. 탑의 층수도 다양하다. 새겨진 문양도 독특하다. 정교한 멋도 없다.

시인 조태일은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을 보고 '견습 석공들의 실습품 같다'고 했다. 이 공작물이 산비탈과 논두렁, 밭이랑, 바위 틈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절집을 다녀간 사람들이 하나씩 올려놓은 소망탑도 지천이다.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이 남도지방 하층계급의 문화유산으로 꼽히는 이유다.

운주사의 석탑과 천불천탑길. 여행객들이 산등성이의 와불을 보고 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다.
 운주사의 석탑과 천불천탑길. 여행객들이 산등성이의 와불을 보고 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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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의 운주사. 제멋대로 생긴 석탑들이 늦가을 단풍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늦가을의 운주사. 제멋대로 생긴 석탑들이 늦가을 단풍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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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아직도 불가사의다. 1980년대 중반부터 전문기관에서 네 차례 발굴조사까지 했지만 밝혀내지 못했다. 창건 시대와 창건 세력, 조성 배경도 오리무중이다. 하여, 설만 무성하다. 노비와 천민들이 미륵이 도래하는 용화세계를 기원하면서 쌓았다는 얘기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도선국사 창건설이다.

도선국사의 눈에 비친 나라의 운세가 위험했다. 동쪽엔 산이 많은 데 반해 서쪽에는 들이 넓어 동쪽으로 기운 탓이다. 국운이 일본으로 떠내려가는 걸 막으려고 절집을 지었다는 것이다. 인체의 명치에 해당하는 자리에 하룻밤 사이 천불(뱃사공)과 천탑(돛대)을 갖춘 절집을 지어 균형을 잡으려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동자승이 장난 삼아 낸 닭울음소리에 석수장이들이 날이 샌 줄 알고 하늘로 가버렸다. 이로 인해 천불천탑의 마지막 불상을 세우지 못했다. 이 불상이 서쪽 산등성이에 누워있는 와불(臥佛)이라는 것이다.

운주사 스님들. 산등성이에 있는 와불로 가는 계단을 오르고 있다.
 운주사 스님들. 산등성이에 있는 와불로 가는 계단을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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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와불. 천불천탑 가운데 마지막 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운주사 와불. 천불천탑 가운데 마지막 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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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불에 상상력을 불어넣은 건 문인들이다. 소설가 황석영은 대하소설 <장길산>에서 운주사를 '혁명의 땅'으로 묘사했다. 관군에 참패한 주인공 길산이 미륵신앙의 성지인 운주사로 숨어들어 전라도의 천민, 노비들과 함께 새 세상을 꿈꾸며 천불천탑을 세우려다가 실패했다고 썼다.

운주사가 '혁명의 성지'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게 그 무렵이다. 1980년의 쓰라린 아픔을 겪은 지역민들도 찾아와 위안을 받았다. 몇 년 전 텔레비전 드라마 <추노>에서도 혁명의 땅으로 묘사됐다. 운주사는 지금도 우리에게 기다림과 희망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제멋대로여서 정감이 가고 아름다운 운주사가 더 애틋한 이유다.

운주사 석불. 여느 절집과 달리 아무 데나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다.
 운주사 석불. 여느 절집과 달리 아무 데나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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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의 석탑. 일정한 틀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올려져 있다.
 운주사의 석탑. 일정한 틀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올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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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과 석탑 외에 칠성바위도 눈여겨 볼 일이다. 와불을 보고 숲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산자락에서 만난다. 칠성바위의 배치가 북두칠성의 배치간격과 많이 닮았다. 경주 천문대에 버금가는 백제권의 천문유적으로 꼽히는 이유다. 대웅전 뒤편 바위 벼랑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도 귀하다.

대웅전 뒤편 공사바위에서 절집을 내려다본다. 도선국사가 천불천탑 건립을 지휘했다는 곳이다. 가을색으로 짙게 물든 용화세계를 보며 눈을 지그시 감고 기원한다. 가진 것 없는 백성이 무시당하는 일 없기를. 힘이 약하다고 핍박받는 일 없기를. 자식 잃은 것도 서러운데 더 이상 마음 아파하지 않기를.

운주사 9층석탑. 운주사에서 만나는 석탑 가운데 가장 유려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운주사 9층석탑. 운주사에서 만나는 석탑 가운데 가장 유려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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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바위에서 내려다 본 운주사 전경. 늦가을 단풍으로 물들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공사바위에서 내려다 본 운주사 전경. 늦가을 단풍으로 물들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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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동광주나들목에서 광주순환도로를 타고 광주대학교 앞으로 간다. 여기서 도곡온천지구를 거쳐 지석천을 건너 남평·도암방면으로 가다가 평리사거리에서 좌회전한다. 817번지방도를 타고 도암면 소재지를 지나면 운주사에 닿는다. 1번국도 나주 남평오거리에서 봉황방면으로 818번 지방도를 타고 다도면 소재지와 불회사 입구를 지나도 된다.



태그:#운주사, #천불천탑, #와불, #동낭치탑, #거지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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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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