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괴물이 된 사람들>을 번역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책의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기 전이었다. 원제인 <낫 몬스터스>(Not Monsters)가 마음에 들었다. 한국 사회의 경우 조두순을 대표주자로 '아동성폭력가해자=괴물'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사람들은 이런 '괴물들'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다양한 형태의 아동성폭력에 무관심하다. 잘못된 통념이 형성된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고 싶은 의욕이 컸다. 

그러나 책을 번역하고 수정을 위해 몇 번이나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의 제목이 옳은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내용이 버거웠다. 이 책은 어린 시절 아동성학대를 오랫동안 경험했던 슐츠 교수가 (감옥에 구금되어 있는) 아동성학대 범죄자 9명을 몇 년간에 걸쳐 여러 번 인터뷰한 내용을 9개의 서사로 엮고, 자신의 이야기와 이론적 관점을 다룬 장을 보태 쓴 것이다.

아동성폭력 가해자는 진짜 '괴물'인가

<괴물이 된 사람들> 책 표지.
 <괴물이 된 사람들> 책 표지.
ⓒ 한국성폭력상담소

관련사진보기

슐츠 교수는 가해자의 구술 내용을 정리하는 형식으로 그들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삶의 궤적과 생각을 자세히 적었다. 범죄 사실도 그들이 말한 대로 정리하였다. 이렇게 자세하게 서술된 가해자 9인의 개인 서사는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 경우도 많았고, 성적 피해를 입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성학대피해가 잘못된 일이라고 자각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이들이 아동성학대를 저지른 데는 이런 배경도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들이 아이들에게 한 짓을 자세히 설명하는 대목을 읽게 되는 순간, '괴물 맞네' 하는 생각의 지배를 당하게 된다. 9명의 성범죄자 중 몇몇은 아무 죄의식도 없이 아동을 대상으로 극단적인 일을 저질러 '괴물스럽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주었다. 

그런 까닭에 과연 이 책이 '아동성폭력가해자=괴물'이라는 통념을 깨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다. 이 책을 번역하려 했던 근본 의도가 흔들려버린 것이다. 이런 내 흔들림에 답을 준 것은 저자인 슐츠 교수였다.

지난 9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이 주최한  '성폭력 가해자를 말한다 - <괴물이 된 사람들-아홉명의 아동 성범죄자를 만나다> 북토크를 준비하면서 저자와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나는 그에게 공격적으로 질문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괴물같은 성범죄자들과 이 책에 나온 이들이 어떻게 다른가'라고. 저자는 답변은 단호하고 차분했다.

"이 책을 본 미국 독자들의 반응은 아동성학자대들에 대한 '심각한' 착각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교정당국이나 공공정책에서 아동성학대자들은 공포와 혐오의 혼합물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다. 연쇄살인범들에 대해서도 공포심은 갖고 있지만, 그들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망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동성학대자에 대해서는 왜 그들이 그런 짓을 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아동성학대자들이 평범하고, 다른 범죄자들과 비슷한 배경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꽤 과격하다고 여긴다. 마약판매자나, 살인자들과 같은 평범한 괴물성에도 포함되지 못한다. 거의 9·11 테러리스트 수준의 인간들로 평가되어 왔다."

'아동성폭력 가해자를 알려고 하는 것조차 옳지 못한 짓'이라는 격렬한 반응, '왜 우리가 그들까지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반응은 이 책에 대한 북토크를 처음 열었을 때 일부 사람에게서 경험했다. 안다는 것을 무언가 우호적인 감정에서 이해하려는 것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시에 제대로 알고자 하는 욕구가 별로 없는 것도 북토크를 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거의 모두 그 책을 읽지 않고 왔다. 아동성폭력 가해자를 안다는 게 부담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슐츠 교수가 말한 대로 한국에도 '아동성폭력가해자는 가장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괴물'이라는 딱지 외에 다른 여지를 두고 싶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이런 나의 흔들림에 가장 큰 답을 주었던 것은 슐츠 교수 자신도 아동성폭력피해자였다는 사실에 다시 주목하면서였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이라는 것을 번역하는 내내 깨닫지 못했다. 슐츠 교수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가해자는 사회가 이미지화 한 괴물이 아니었다. 슐츠 교수가 가해자에 갖는 감정도 '괴물'같은 건 아니었다.

슐츠 교수는 어린 시절 옆집 아저씨에게 오랜 시간 성학대를 당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 언니도 그런 경험이 있었고 동네의 많은 아이들이 같은 경험을 당했을 것이라 짐작이 가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동네에서 다정한 이웃으로 평판이 좋았던 가해자는 일을 하지 않아 낮에 부모들을 대신하여 동네 아이 여럿을 오랫동안 돌보았고, 슐츠 교수도 그런 상황에서 성적인 학대를 당했기 때문이다.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심지어 슐츠 교수는 자기가 당한 게 성폭력이었음을 성인이 된 한참 이후에야 깨달았다. 그러나 자신이 경험한 성폭력범은 사회에서 취급하는 즉, 9·11 테러리스트 수준의 이미지와 너무 다르다는 것에 주목했다. 사실은 자신이 그 아저씨를 좋아하기도 했었다는 마음에도 직면했다. 슐츠 교수는 이것이 갖는 의미를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피해자가 경험하는 가해자는 사회가 생각하는 괴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해자를 괴물로 취급하고 분노하지만, 피해자들의 감정이나 내면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을 아동성폭력피해자로 규정하면서 가해자에게 엄청난 분노를 느끼겠지만, 사회적으로 기대하는 괴물에 대한 분노는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친숙한 사람에게 오랫동안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큰 아동성폭력의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애착이나 친근감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 사회가 도덕성과 윤리에 기초하여 아동성폭력 가해자를 최소한의 이해도 불가능한 괴물로 취급하고 선을 그어버릴 때 피해자의 느낌은 어떨까? 슐츠 교수의 혼란스러움과 다를까? 맘 놓고 미워하고 증오하라고 사회적으로 '괴물'이라 인정했으니, 거기에 동조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게 안전하고 쉬울 것이다.

그라나 그것이 피해자가 느끼는 느낌과 판단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피해자가 정작 두려워 하는 것은 사회가 기대하는 만큼 가해자를 괴물로서 완벽하게 미워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기 평가, 혼란, 또 다른 의미의 죄의식은 아닐까. 그런 혼란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경험을 성폭력이라고 말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자신의 느낌에 직면하지 못한다면, 치유는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아동성폭력의 평범함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

지난 9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이 주최한  '성폭력 가해자를 말한다 - <괴물이 된 사람들-아홉명의 아동 성범죄자를 만나다> 북토크 현장.
 지난 9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이 주최한 '성폭력 가해자를 말한다 - <괴물이 된 사람들-아홉명의 아동 성범죄자를 만나다> 북토크 현장.
ⓒ 한국성폭력상담소

관련사진보기


북토크 패널로 출연한, 성폭력범죄자를 오래 분석해온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이 책에 대해 '진귀한 기록'이라 평했다. 성폭력 가해자 한 사람을 알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분석한 노력은 아주 특별하다는 것. 가해자의 어린 시절을 안다는 것, 그들의 사고방식과 합리화의 기재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해자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그들의 다양한 상황과 배경이 알려질수록 '아동성폭력 가해자가 외계에서 온 사람'이라는 사회적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피해자의 경험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아동성폭력의 평범함을 조금이라도 더 익힐수록 우리는 훨씬 더 타당한 경계심을 가질 수 있다. 슐츠 교수가 가해자에게 눈을 돌려 이렇게 성실한 기록을 남긴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책에 상세하게 나온 9명의 서사는 너무나 많은 분석 자료를 제공한다.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만을 경계한다면 범죄자 본인의 인터뷰 의도가 무엇이었든 우리는 다양한 삶의 여러 측면과 주목할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사회든 아동성폭력 가해자의 생산을 완전히 멈출 수는 없다. 그들은 늘 우리 안에 있다. 공권력에 의해 범죄자로 인정되기 전까지는 우리 안에서 분류해낼 수 없으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피해자를 이해하고 타당한 보호와 대안을 제시하려면 그들이 가까이 경험한 가해자들을 사회가 잘 이해해야 한다.

성폭력 가해자를 미워하고 분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면 성폭력 피해자의 입장에서 현명하게 대처하고 판단하는 것, 이해 능력을 높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 새로운 시작을 <괴물이 된 사람들>과 함께 시작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권인숙님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소장입니다.



태그:#괴물이 된 사람들, #한국성폭력상담소
댓글2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991년 4월 문을 연 이후로 성폭력 피해에 대한 상담, 지원 활동과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법/정책 마련 및 인간중심적인 성문화 정착과 여성의 인권 회복을 위한 활동들을 해 오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