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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를 배낭여행으로?

라스베이거스만큼 배낭여행과 어울리지 않는 곳도 없을 것 같았다. 차를 타고 기라성 같은 건물들이 있는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거리에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그런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5성급은 우습고, 끝을 알 수 없는 고급 호텔들과 온갖 요란한 외장으로 치장한 건물들은 6개월간 세계를 여행한 관록의 여행자마저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레이저를 뿜는 피라미드와 에펠탑,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자유의 여신상이 내 눈앞에 동시에 펼쳐지는 그곳에서 커다란 배낭 하나 멘 여행자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 패리스, 뉴욕뉴욕, 베네시안, 일루전 호텔(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 라스베이거스의 대표적인 호텔들 - 패리스, 뉴욕뉴욕, 베네시안, 일루전 호텔(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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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라인을 뽐내며 우뚝 서있는 화려한 건물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실내에 들어서면 마치 여기가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을 자연 채광이 아름다운 복도와 꽃들로 장식된 중앙 홀, 진짜 나무와 꽃을 물론이고 그 아름다운 로마의 조각상조차도 이곳에서는 그저 계단을 받치는 기둥으로 쓰인다.

건물 옥상으로는 롤러코스터가 달리고, 말 그대로 '스트립'에 가까운 여인들은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쉴새 없이 눈빛을 날린다. 도대체가 가난한 사람이라고는 나 혼자뿐인 것만 같았다. 만약 옆에 누군가 말 걸어 주는 이가 없었다면 나는 꿈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 라스베이거스의 호텔 내부는 하나 같이 크고 화려해 이런 곳에서의 편안한 휴식은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 화려한 호텔 내부 - 라스베이거스의 호텔 내부는 하나 같이 크고 화려해 이런 곳에서의 편안한 휴식은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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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의 정보력은 정말이지 놀랍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몸집을 부풀린 호텔들 사이에서 단돈 40달러면 더블 룸에 예약할 수 있다니. LA에서 만났던 그들과 나는 7km에 이르는 스트립 거리를 아침부터 밤까지 다리가 부러지도록 걸었다.

어디서부터 구경해야 할지 몰랐던 우리는 가장 단순하게 끝에서부터 끝까지 걷기로 한 것이다. 누군가가 가져온 라스베이거스 지역신문에는 각종 상점에서 쓸 수 있는 무료 쿠폰들이 가득 쏟아졌다. 그 화려함 속에서 맛보는 한 조각 공짜 샌드위치의 맛이란.

사막의 용광로와 같은 라스베이거스

 - 라스베이거스 유흥 사업의 원동력은 역시 카지노다. 호텔은 물론이고 거리, 음식점, 심지어 공항에서도 특별한 절차없이 카지노 게임을 할 수 있다.
▲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 라스베이거스 유흥 사업의 원동력은 역시 카지노다. 호텔은 물론이고 거리, 음식점, 심지어 공항에서도 특별한 절차없이 카지노 게임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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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의 상징인 카지노는 그야말로 어디에든 있었다. 공항에서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길에도, 밥을 먹는 식당의 테이블, 유리 천장으로 자연광이 들어오는 테라스 벽에도, 서로 얼굴을 보고 얘기해야 할 바에서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운을 빌며 베팅을 한다. 유일하게 예외인 곳은 화장실이었다. 마치 눈에 띄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집어삼킬 것처럼 라스베이거스의 거리는 하루 종일 잠들지 않는다.

 - 해가 진 뒤의 라스베이거스가 진짜다.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 요란한 네온사인과 야외의 무료 공연은 사막 한가운데의 밤을 더욱 황홀하게 만든다.
▲ 라스베이거스의 밤 - 해가 진 뒤의 라스베이거스가 진짜다.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 요란한 네온사인과 야외의 무료 공연은 사막 한가운데의 밤을 더욱 황홀하게 만든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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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밤이 오면, 라스베이거스의 모든 것이 깨어난다. 오랜 시간 카리브 해에서 모습을 감추었던 해적선은 트래저아일랜드 호텔 앞에서 나타나 대포를 뿜고,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거리의 모든 카지노들은 옥외간판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그 속에서 잠자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큰 금 덩어리, 골든 너깃을 노리는 사람들은 마치 불 속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달려든다.

 - 엄청난 면적의 호수를 자랑하는 벨라지오 호텔의 분수쇼는 매일 오후부터 자정까지 일정 간격을 두고 반복된다. 정면에서 보는 것 만으로 아쉽지만 벨라지오 호텔의 스위트 룸에 묵을 수 없다면, 맞은편에 있는 에펠탑 꼭대기 전망대에 오르는 것이 최선이다.
▲ 벨라지오 분수 쇼 - 엄청난 면적의 호수를 자랑하는 벨라지오 호텔의 분수쇼는 매일 오후부터 자정까지 일정 간격을 두고 반복된다. 정면에서 보는 것 만으로 아쉽지만 벨라지오 호텔의 스위트 룸에 묵을 수 없다면, 맞은편에 있는 에펠탑 꼭대기 전망대에 오르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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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 윈, 시저스 팰리스, 미라지, 엑스칼리버… 이름만 들어서는 호텔인지 소설 제목인지 알 수 없는 호텔들을 지나치다 마침내 '벨라지오'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분수대라는 단어가 마치 부록처럼 이어졌다. 이윽고 시작된 분수쇼에서는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 'My heart will go on(마이 하트 윌 고 온)'이 흘러나왔다.

애달픈 선율에 따라 이리 흔들 저리 흔들리는 물줄기가 마치 파도 같다. 후렴부가 다가오자 점점 높아지던 물줄기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담벼락을 만들어 내고는 화려한 막을 내렸다. 이것이 거친 대지를 뚫고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호수의 분수라니.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의 오아시스치고는 너무나 화려하고 거대해서 무슨 감탄사를 뱉어야 할지조차 몰랐다.

 - MGM 호텔의 사자, 미라지 호텔의 호랑이와 초대형 수조, 플라밍고 호텔의 플라밍고
▲ 라스베이거스 호텔의 대표적인 볼거리들 - MGM 호텔의 사자, 미라지 호텔의 호랑이와 초대형 수조, 플라밍고 호텔의 플라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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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호텔에서는 아프리카 초원과 밀림을 탐험하던 사자와 호랑이가 온실을 거닐고, 야외 정원에서는 볼리비아 4000미터 고원지대에서 고산병과 싸우며 만났던 플라밍고들이 태연하고 풀을 뜯고 있다. 험난한 고행을 거쳐 전 세계를 돌면서 마주쳤던 장면들을 라스베이거스의 안뜰에서 모두 볼 수 있다니. 맥이 풀리는 기분이다. 사막의 모래바람을 뚫고 홍해 바다 속에서 마주친 수천마리 열대어와 산호초를 마주쳤을 때, 나는 마침내 이곳에 세계를 창조한 조물주가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것 같은 이 용광로 같은 도시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누군가 카지노 앞에 서서 욕망을 밀어 넣으면, 다음날 짠 하고 이 거리 어디쯤엔가 새로운 세상이 생기는 것이다. 사자와 호랑이를 가졌으니 이번에는 알래스카의 북극곰은 어떤가. 펭귄과 북극곰.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마야의 피라미드가 들어서고 그 끝에 서서 버튼을 누르면 나타나는 숨겨진 방 안에서 사람들은 또 다시 쉬지 않고 욕망을 밀어 넣겠지.

 -  24시간 꺼지지 않는 불빛과 거리의 자동차들이 마치 거대한 용광로 같다.
▲ 에펠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스트립의 야경 - 24시간 꺼지지 않는 불빛과 거리의 자동차들이 마치 거대한 용광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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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끝에 다다른 나는 문득 이 펄펄 끓는 용광로 같은 도시가 정전이 되면 어떻게 될지에 이르렀다. 사막의 끝에 신기루처럼 서 있는 도박의 도시까지 가서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빛을 잃은 사람들은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궁금했다.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결국은 패배할 운명이라고 해도 끊임없이 소망하고 다시 꿈꾸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 것일까. 라스베이거스는 배낭 하나가 삶의 전부였던 어느 여행자의 슬픈 꿈이었을까.

간략여행정보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의외로 라스베이거스는 공짜가 많다. 7km에 이르는 스트립 거리의 모든 호텔은 주차비가 무료며 각 호텔에 비치된 지역신문이나 안내책에는 무료 혹은 1+1 쿠폰 등이 쏟아진다. 이름만 들어도 손이 떨리는 초특급 호텔들 사이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저렴한 호텔들도 많다.

각 호텔에서는 저마다 독특한 콘셉트의 전시를 하는데 미라지 호텔의 호랑이, MGM 호텔의 사자, 벨라지오의 숲이 대표적이며 이런 관람조차도 대부분 무료다. 전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쇼와 파티가 벌어지지만 그에 못지 않은 무료 쇼도 거리 곳곳을 메운다. 한마디로 라스베이거스는 카지노를 제외한 모든 것은 덤인 셈인다. 여행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쇼와 전시 시간에 맞춰 각 호텔을 방문하는 것뿐이다.



태그:#라스베이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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