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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북한군의 포격으로 포탄에 맞아 구멍이 뚫린 옹진군 연평면 대연평도 공설운동장 담벼락. 연평도 곳곳은 안보체험장이 됐다. 이곳 주민들은 군부대의 잦은 사격훈련과 함께 안보체험장이 되는 것에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4년 전 북한군의 포격으로 포탄에 맞아 구멍이 뚫린 옹진군 연평면 대연평도 공설운동장 담벼락. 연평도 곳곳은 안보체험장이 됐다. 이곳 주민들은 군부대의 잦은 사격훈련과 함께 안보체험장이 되는 것에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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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밀려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완전히 무시를 당하는 것(이런 일이 물리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보다 더 잔인한 벌은 생각해낼 수 없을 것이다. (중략) 만나는 모든 사람이 죽은 사람 취급을 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물건을 상대하듯 한다면, 오래지 않아 울화와 무력한 절망감을 견디지 못해 차라리 잔인한 고문을 당하는 쪽이 낫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월리엄 제임스는 <심리학의 원리(The Principles of Psychology. 1890)>에서 사랑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했다.

4년 전, 북한군의 포격으로 말미암은 연평도 주민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온전히 치료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난 20일부터 1박 2일 동안 연평도에 다녀왔다. 연평도의 늦가을은 4년 전 포격사건을 잊은 듯 평화로웠다.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김장을 하거나 굴이나 꽃게를 손질하고 있었다.

연평도 선착장에서 바라본 연평도. 포격 4주기를 맞아 늦가을에 찾은 연평도는 평화로웠다.
 연평도 선착장에서 바라본 연평도. 포격 4주기를 맞아 늦가을에 찾은 연평도는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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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구리동해변. 북녘 해안이 보이는 곳에 위치한 자연 해변으로 길이 1km, 폭 200m의 모래사장과 기암괴석, 흰 자갈, 고운 모래가 장관을 이룬다. 하지만 군 시설물과 초소 등이 일반인의 접근을 망설이게 한다.
 연평도 구리동해변. 북녘 해안이 보이는 곳에 위치한 자연 해변으로 길이 1km, 폭 200m의 모래사장과 기암괴석, 흰 자갈, 고운 모래가 장관을 이룬다. 하지만 군 시설물과 초소 등이 일반인의 접근을 망설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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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로 유명하던 연평 앞바다, 이젠 분쟁의 바다로 '악명'

연평도 하면 조기를 연상할 만큼, 연평도는 조기의 명산지였다. 어황은 매해 4월 중순부터 6월 초순까지인데 어기가 되면 수많은 어선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이렇게 몰려든 배가 3000척이 넘어 장관이 연출됐다. 1960년대 후반까지 조기 어장으로 유명해, 정일권 전 국무총리가 연평도를 찾기도 했다.

그러나 조기가 잘 잡히지 않자, 연평도는 바닷사람들 사이에서도 잊혔다. 그런 연평도가 1999년 1차 연평해전 이후 남북이 NLL(북방한계선)을 사이에 두고 다툼을 벌이면서 다시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4년 전인 11월 23일엔 북한군이 연평도에 포격을 감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포격으로 해병대 군인 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민간인도 2명이 죽었다.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로 이뤄진 연평도의 면적은 7.25㎢로 2000여 명이 사는 작은 섬이다. 2년 전에 찾았을 때는 공사 장비와 인부를 실은 트럭, 굴착기 등이 분주히 다녔는데 다시 찾은 연평도는 여느 섬과 다름없는 평온함이 느껴졌다. 다만 그동안 개·보수한 집들과 골목길들이 도심을 걷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포격 4주기를 맞아 언론사 기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21일 연평도에서 만난 해병대원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21일 연평도에서 만난 해병대원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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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으려 하는데, 상처에 소금만 뿌리나"

뭍에서 온 기자들을 바라보는 연평도 주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각을 사실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불신이 꽤 많았다. 주민들은 "언론이 아물지 않은 상처에 소금만 뿌리고 있다"고 질타하기까지 했다.

지난 21일, 김장을 하던 50대 주부는 "기념식을 왜 해마다 하는지 모르겠다. 좋은 것도 아니고 연례행사처럼 가끔 와서 아물지도 않은 상처에 왜 소금만 뿌리고 가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날 새마을리 망향공원 인근에서 공공근로를 하는 여성 네 명도 만났다. 세 명은 결혼하면서 연평도에 정착한 사람이고, 나머지 한 명은 연평도가 고향이다. 기자들에 대한 불신이 많아 조심스럽게 몇 마디를 건네고서야 겨우 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한 주부는 "기자들은 우리가 한 소리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지들 입맛에 맞는 것만 뽑아서 방송(보도)한다. 한두 번도 아니고, 때 되어 섬에 나타나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기자들은 이제 보기도 싫다"며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다른 주부도 "우린 목숨 걸고 이 섬에 살고 있는데, 때 되어 나타나 호들갑 떠는 정치인이나 기자들이 우리의 힘든 상황을 뭘 아느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연평도 이곳저곳에서 주민들을 만나고 있을 때, 군부대에선 '21일 오후 3시에 사격연습이 있을 예정이니 참고하라'는 방송을 한두 시간 간격으로 계속 내보냈다.

포격사건 4주기라 평상시보다 더 많은 사격이 이뤄질 것이란 이야기가 주민들 사이에서 나왔다. 김장하고 있던 김아무개(여·53)씨는 "사격을 자주 하니 쏜다는 느낌이 별로 없지만, 우린 포격 소리가 싫고 무섭다. 좋은 일도 아닌데, 4년 전 일이 상기된다"고 말했다.

연평도 구리동해변의 흰 자갈과 고운 모래 위에 설치된 해병대 막사. 해병대는 21일에 상륙작전 훈련을 진행하려했지만, 높은 파도 등으로 인해 훈련을 진행하지 않았다.
 연평도 구리동해변의 흰 자갈과 고운 모래 위에 설치된 해병대 막사. 해병대는 21일에 상륙작전 훈련을 진행하려했지만, 높은 파도 등으로 인해 훈련을 진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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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근로하던 여성 4명도 모두 군부대의 사격연습 때문에 고통이 심하다고 했다.

"아이들과 여성들은 사격훈련 때마다 대부분 대피소로 이동한다. 생활에도 지장을 주지만, 사격훈련 할 때마다 전쟁 연습하는 분위기라 힘들다."
"군부대가 사격훈련 할 때마다 '참고하라'고만 방송하는데, 책임을 면피하려고만 하는 방송 같다. 대피소에 들어가라고 하면 주민들이 싫어하고, 혹시 사고가 나면 우리는 방송했다고 할 것 같다."

21일 연평도 선착장에서 만난 50대 후반의 초등학교 직원도 "한 번은 포 사격훈련 때문에 학생들이 수업 도중에 모두 대피소로 이동했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고 연평도 분위기를 전했다.

선착장에서 만난 50대 남성 박아무개씨도 "남자인 나도 사격훈련 할 때는 그 소리가 매우 커 귀가 아플 정도다. 심장이 약한 사람은 충격이 크다. 심장이 쿵쾅쿵쾅 한다"고 털어놓았다.

형식적인 추모식, 확대 재생산되는 포격 공포, 계속되는 사격훈련 등은 기자가 만난 연평도 주민들의 바람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사랑과 평화가 필요할 때, 오히려 울화와 무력한 절망감으로 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연평도의 볼거리 중 하나인 가래칠기해변. 조기역사관에서 내려다보이는 비경으로, 알록달록한 자갈과 굵은 모래알이 밟히는 자연해변이다.
 연평도의 볼거리 중 하나인 가래칠기해변. 조기역사관에서 내려다보이는 비경으로, 알록달록한 자갈과 굵은 모래알이 밟히는 자연해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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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isisa.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연평도, #연평도 포격, #구리동 해변, #연평도 사격훈련, #외상후스트레스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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