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사' 손흥민(레버쿠젠)이 A매치 득점 실패의 아쉬움을 소속팀에서 달랬다. 손흥민은 지난 23일(한국시간) 독일 하노버의 HDI 아레나에서 열린 하노버96과의 2014-2015 독일 분데스리가 12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후반 13분 결승골을 터뜨려 팀의 3대1 승리를 이끌었다.

손흥민에게는 지난 4일 제니트(러시아)를 상대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2, 3호 골을 잇달아 기록한 지 18일 만의 골이었다. 정규리그에선 지난달 18일 슈투트가르트와의 8라운드에서 2골을 몰아친 이후 4경기 만이었다. 손흥민은 분데스리가 정규리그에서 5골, 챔피언스리그 본선 3골,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2골, 독일축구협회(DFB) 포칼컵에서 1골을 기록하며 벌써 11골로 시즌 중반을 넘기기도 전에 두 자릿수 득점을 넘겼다. 자신의 한 시즌 최다골인 12골에는 불과 1골 차이로 근접했다.

진화하는 손흥민, 대표팀 골잡이 부재 해결할까

손흥민은 국가대표팀의 지난 중동 원정 A매치 2연전에서는 아쉽게 무득점에 그쳤다. 손흥민은 울리 슈틸리케 신임 감독 부임 이후에는 아직 대표팀에서 득점을 신고하지 못하고 있다. 손흥민의 A매치 마지막 득점은 지난 6월 브라질월드컵 알제리전(2-4 패)이다.

하지만 손흥민은 슈틸리케호에서도 실질적인 공격의 에이스로 자리잡고 있다. 소속팀과 마찬가지로 대표팀에서도 주전 왼쪽 측면 공격수로 중용되고 있는 손흥민은, 특유의 폭발적인 스피드와 드리블을 앞세워 상대 문전을 허무는 파괴력이 일품이다. 이제 A매치에서도 손흥민이 홀로 3~4명의 수비수들을 몰고다니며 공간을 창출하거나 위치를 가리지 않고 슈팅을 날리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대표팀은 현재 '골잡이 부재'에 시달리고 있다. 타깃맨 자원이던 이동국-김신욱이 연이은 부상으로 아시안컵 출전이 불발되고, 중동 원정에 참여했던 박주영-이근호도 만족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한 상황이다.

현재 손흥민은 아시안컵을 앞둔 대표팀의 골가뭄을 해결해 줄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부상중인 이동국(K리그 13골, A매치 3골)을 제외하면 국내파와 유럽파를 통틀어서도 한국 선수 중 지난 1년간 손흥민보다 더 많은 골을 넣은 선수는 없다. 약점으로 지적되던 개인플레이와 기복도 꾸준한 성장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관건은 손흥민의 뛰어난 개인능력을 대표팀의 전술에 어떻게 녹여내느냐다. 손흥민은 뛰어난 골잡이지만 포지션상 최전방이 아닌 2선 공격수에 가깝다. 함부르크 시절에는 종종 최전방 공격수 역할도 수행했으나 레버쿠젠 이적 후 확실히 왼쪽 측면 공격수로 자리잡았고, 대표팀에서도 같은 포지션이다.

대표팀은 손흥민, 이청용, 남태희 같은 2선 공격수 자원들이 어느 때보다 풍부한 반면, 최전방의 꼭지점을 맡아줄 원톱 부재에 시달리고 있다. 이미 지난 브라질월드컵 예선때부터 골결정력과 기술이 뛰어난 손흥민을 최전방 공격수로 써야한다는 여론이 나왔지만, 실제로 이루어진 사례는 거의 없다.

손흥민, 대표팀 원톱은 불가능한가.

그동안 축구 전문가들은 대체로 두 가지 면에서 손흥민이 전형적인 원톱과는 거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첫 번째는 손흥민의 플레이 스타일이다. 기동력과 발재간이 좋은 손흥민은 개인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었을 때 최대한의 위력을 발휘하는 스타일이다. 손흥민이 최상의 모습을 보여줄 때는 역습 상황이나 혹은 수비 뒷공간으로 침투하여 득점을 노리는 장면이다. 반면 중앙에서 상대 수비를 등지고 펼치는 포스트플레이나, 제공권을 통한 공중 볼 경합, 몸싸움 등에는 익숙하지 않다.

상대팀의 성격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이 아시안컵에서 상대해야 할 팀들은 대부분 한국보다 전력이 약한 팀들이다. 아시아팀들은 한국을 상대로 수비 라인을 두텁게 내리고 공간을 내주지 않는 플레이에 치중한다. 이런 팀들을 상대로는 손흥민의 강점이 희석될 수밖에 없다.

최강희 전 감독이 손흥민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아시아팀과의 경기에서 선발기용을 주저했던 이유, 슈틸리케 감독이 이동국-김신욱같은 타깃맨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손흥민은 아시아 예선에서는 벤치멤버에 그쳤으나, 한국보다 한수위의 강호들과 경쟁해야했던 월드컵 본선에서는 오히려 선배들을 제치고 한국 선수들 중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손흥민이 아시아팀을 상대로 골을 넣은 것은 지난 3월 브라질월드컵 예선 카타르전이 마지막이다. 지난 중동 2연전에서도 기회는 많이 만들었으나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손흥민 활용법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팀동료나 전술과의 조화다. 손흥민이 최전방 공격수로서 활동하던 함부르크 시절에는 대체로 팀전력이 뛰어나지 못했다. 강팀을 상대로 역습 위주의 비중이 높은 함부르크에서의 원톱과, 아시아에서 대표팀이 요구하는 원톱의 역할은 차이가 크다.

또한 함부르크 시절의 손흥민에게는 아르티옴스 루드네브스가 있었고, 레버쿠젠에서는 스테판 키슬링같은 타깃형 공격수가 파트너로 있을 때 가장 좋은 호흡을 보였다. 손흥민이 간혹 최전방에 섰을 때도 득점 유무와 별개로, 팀의 전술적 공수밸런스나 경기력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손흥민이 '최전방 공격수도 가능하다'는 것과, '최전방 공격수로 적합하다'는 표현의 차이다.

세계최고의 골잡이로 불리우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역시 포지션은 2선 공격수에 가깝다. 레알 마드리드와 달리,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는 확실한 원톱 자원이 없다는 이유로 호날두가 종종 최전방에 '프리롤'에 가깝게 서는 경우도 많은데, 대체로 호날두와 포르투갈 대표팀 모두 전술적으로 최상의 시너지 효과는 보여주지 못한다는 평가다.

함께 뛰는 동료들의 수준차도 있지만, 오히려 공격에만 치중하는 호날두로 인하여 공수 밸런스가 무너지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손흥민을 원톱으로 기용할 경우, 한국대표팀 역시 그에 맞게 전술과 선수구성에서 변화를 줘야 할 가능성이 높은데 팀이 요구하는 역할이나 다른 선수들과의 상성이 맞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도 높다.

대안은 제로톱?

사실상의 대안은 제로톱이 거론된다. 손흥민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현재 타깃맨이 없는 대표팀의 공격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변칙 전술이다. 대표팀에서는 조광래 감독 시절 잠시 가동해봤지만 미완성으로 그쳤다. 굳이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격수 기근에 시달리는 팀들이 많아지면서 이제 많이 보편화된 전술이지만, 2선 공격수들의 유기적인 움직임과 영리한 공간 이해도가 받쳐줘야만 가능한 전술이기도 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중동 2연전에서 4-2-3-1 전술을 가동했지만 포메이션 개념에 얽매이지 않았다. 이란전에서 원톱에 배치되었던 이근호는 경기 중에 손흥민-이청용과 수시로 자리를 바꿨다. 이근호 역시 2선 공격수였지만 원톱의 역할도 어느 정도 수행할수 있는 선수다. 상황에 따라서는 손흥민과 투톱에 가깝게 보이는 움직임도 여러 차례였다.

손흥민은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들며 과감한 문전침투로 많은 득점찬스를 만들었다. 마무리가 아쉬웠지만 손흥민은 이란전에서 가장 많은 유효슈팅을 기록하며 사실상 최전방 공격수나 다름없는 움직임을 보였다. 손흥민-이청용-이근호의 삼각편대는 타깃맨 없는 현재의 대표팀이 꺼내들수있는 최상의 공격대안으로 거론된다.

1년전만 해도 손흥민은 동료들을 활용하는 연계 플레이와 완급조절에 약점이 있었다. 그러나 월드컵과 챔피언스리그 등 큰 경기 경험을 늘려가며 손흥민은, 이제 예리함을 넘어 좀 더 '효율적인 공격수'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축구로서는 손흥민이라는 이 축복받은 골잡이 자원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다음 아시안컵에서 55년만의 우승이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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