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나선형의 블랙홀이 사실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나선형의 블랙홀이 사실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가상 세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를 SF(Science Fiction) 영화라고 부른다. 하지만 '과학'과 단순히 '신기한 현상'의 경계가 모호하듯, 많은 SF 영화들이 '공상과학 이야기'와 '판타지 마술쇼'의 경계 즈음에서 방황한다. 어떻게든 과학으로 풀어가려다가 잘 안 되면 은근슬쩍 판타지 장르로 넘어가 버리고는, 남녀 주인공의 격정적인 키스신이나 화려한 시각효과로 무마하기 일쑤다.

그런데 며칠 전 진정한 SF 영화가 개봉했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과학 이론과 재밌는 이야기의 만남이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며, 차후 개봉될 영화들의 SF 자격심사 기준을 한껏 높여놓았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라는 두 가지 과학 이론은 영화의 뿌리를, 등장인물 저마다의 사연과 이들이 함께 빚어내는 이야기는 영화의 기둥을 맡았다. 여기에 관객을 압도하는 시각효과를 쬐어주고, 사랑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영양분으로 주었더니 하나의 탐스러운 나무, 아니 경이로운 영화가 탄생했다.

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영화의 토대를 이루고 있어서인지 <인터스텔라>는 개봉 전부터 난해한 영화라고 소문이 났다. 그러나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인터스텔라>는 전혀 어렵지 않다. 영화에 이용된 과학 이론을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중력이 강하면 시간이 빠르게 간다'는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기에 "이 행성은 지구 중력의 130%정도야." "이 곳에서의 1시간이 지구에서의 7년이라고!" 이 두 대사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인물들이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대화만 나누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저마다의 매력을 지닌 인물들은 각자 지켜야 하는 소중한 존재를 가지고 있다. 쿠퍼는 머피를, 아멜리아는 에드먼즈를, 브랜드는 인류를, 다시 머피는 쿠퍼를 지키고 싶어 한다. 이런 인물들이 모여 갈등을 빚어내기도 하고, 감동을 선사하기도 하면서 영화의 기둥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기존 SF 영화들의 시각효과가 화려했다면, <인터스텔라>의 시각효과는 압도적이다. <인터스텔라>는 세계적인 물리학자 킵 손의 도움을 받아 현대 과학 이론으로 끌어낼 수 있는 시각적 구현의 최대치를 보여주었다. 아무도 우주의 블랙홀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인터스텔라>의 블랙홀을 보며 '현실적이다'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이니 말이다.

<인터스텔라>의 시각효과에서 압도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데는 음향효과도 한 몫 한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웜홀이 등장할 때는 우주의 경이로움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모든 음악이 제거된 채 커다란 행성 앞에 떠 있는 조그마한 우주선이 등장할 때는 고요하고 거대한 우주에서 부유하는 기분을 만끽하게 된다.

<인터스텔라>의 시각적 구현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차원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인터스텔라>가 등장하기 전, 영화는 어디까지나 3차원 세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매체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3차원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3차원적인 방법으로 구현해낸 것이 영화이고, 이를 다시 3차원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보았다. 그런데 <인터스텔라>가 이 오래된 공식을 바꿔놓았다. 우리는 이제 <인터스텔라>를 통해 3차원 공간에서 4차원, 5차원의 세계를 간접 경험할 수 있다.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쿠퍼가 마주하게 되는 큐브 공간을 보며 우리도 5차원 세계에 잠시 들어갔다 나온 셈 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개 어려운 영화라고 하면 보고 나서 감독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 수 없는 영화인 경우가 많은데, <인터스텔라>는 그렇지 않다. <인터스텔라>를 보고난 후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사랑'임을 알아채지 못한 관객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인터스텔라>는 가족애, 인류애, 자기애, 이성애 등 다양한 사랑의 종류를 때로는 과학의 길로, 때로는 철학의 길로, 때로는 사랑이라는 감정 그 자체로 보여주며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결국 <인터스텔라>는 우주와 관련된 과학 이론을 토대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즉, 과학 이론의 적용도 놓치지 않으면서 매력적인 인물들을 통해 사랑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진정한 SF, Science Fiction(사이언스 픽셔)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그런데 단순히 '진정한 SF 영화'라고 하기에는 <인터스텔라>에서만 볼 수 있는 우주의 경이로운 모습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 라인이 아깝다. 그러니 영화 <인터스텔라>를 'SF 영화'가 아닌 'FS 영화'라고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 'FS, Faction of Space(팩션 오브 스페이스), 우주에 관한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말이다.

인터스텔라 영화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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