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이야기는 연극보다 더 또렷이 살아있는, 현재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우리의 삶은 이야기로 구성된다. 사회는 우리의 자화상이 모여 만들어진다. 현재 우리의 삶과 사회를 보여줄, 연극보다 더 또렷한 이야기가 무대에 오른다. 지난 4월, 나치 통치 아래의 동성애자 인권을 이야기했던 극단 <ETS>가 이 시대의 가장 치열한 사람들의 이야기, <사랑해. 4월 16일 그 후>를 통해 우리의 자화상을 선보인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현실을 고발한다

"연극을 만든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랑해. 4월 16일 그 후> 창현과 예찬
 "연극을 만든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랑해. 4월 16일 그 후> 창현과 예찬
ⓒ 극단 ETS

관련사진보기


<사랑해. 4월 16일 그 후>는 세월호 이야기를 다룬 창작극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딸을 잃은 엄마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두 명의 청년은 진도를 향한 여정을 떠난다. 안산, 인천, 팽목항, 서울을 거치는 여정 중 주인공들은 여러 사람을 만난다. 주인공의 변화와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극을 이끌어 간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고통을 느끼고 있는데, 그것보다 더 구체적인 건 없을 텐데, 굳이 허구를 창조해 낸다는 게 무슨 의미냐 그거지."

극 중 대학을 갓 졸업한 두 명의 배우 예찬과 창현은 세월호 사건을 경험하면서 무언가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진다. 예찬은 "뭔가 해야 하는데, 가만히 있는 게 한없이 미안한 상황"이라며 탄식한다. 연극을 만들자는 예찬의 제안에 창현은 "연극을 만든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반복하여 묻는다. 예찬과 창현은 연극을 만들기 위해 진도로 향한다.

주인공들이 연극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세월호 사건의 실제 내용이 그대로 등장한다. '전원 구조' 오보, 컨트롤 타워의 부재, 언론 참사 등에 관해 창현과 예찬은 의문을 품는다.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사실 그대로 읊는 대사는 마치 뉴스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어 생동감을 더한다. 현실과 밀착된 대사는 현실을 낱낱이 고발한다.

연출을 맡은 김혜리씨는 사실 그대로를 담아낸 의도에 대해 "돌려 말하고 싶지 않았다. 가끔은 직접화법이 은유나 비유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두려워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 예술이 세상을 꿰뚫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기억이란 게 내가 붙들고 있는 유일하게 남은 내 아이와의 끈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딸을 잃은 고통에 어머니는 힘겨운 일상을 보낸다. 어머니는 사건 이후 200일 동안 버텨오면서 변화해 온 자신을 되돌아본다. 평범했던 어머니는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등을 거론하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 서명 운동을 위해 국민에게 호소하게 됐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너의 고통은 이해한다. 그러나 가만히 있어라"라는 목소리가 어머니를 옥죈다.

딸의 죽음과 권력의 억압으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어머니에게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 딸이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 때문이다.

"엄마 사랑해."

'기억'을 위한 연극

<사랑해. 4월 16일 그 후>의 작/연출이자 배우로 출연하는 김혜리씨
 <사랑해. 4월 16일 그 후>의 작/연출이자 배우로 출연하는 김혜리씨
ⓒ 극단 ETS

관련사진보기


"예술가로서 '창작'을 통해 '기억'하고 싶었다"는 극을 직접 쓰고 연출한 김혜리씨는 배우로도 출연한다. 김씨는 <사랑해. 4월 16일 그 후>를 통해 세 가지 화두를 던진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연극을 만든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김씨는 "기억하기 위해서는 경험해야 한다. 경험은 행위에서 비롯된다"며, "예술가에게 행위는 창작"이라고 말했다. 김씨에게 <사랑해. 4월 16일 그 후>는 예술가로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창작 행위이다.

등장 인물이 연극을 만드는 것을 소재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이 연극은 자전적 성격을 가진다. 김씨는 "세월호는 우리의 일상과 분리된 사건이 아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극으로 이 문제를 생활화하고 싶었다"면서 "일상에서 각자가 하는 일을 통해 고민할 때, 지속하는 힘도 커진다"고 말했다.

극단 'ETS'와 김씨는 이전에도 사회 문제와 역사의식을 담아낸 작품을 만들었다. 지난 4월에는 연극 <BENT>를 통해 나치 통치 아래의 동성애 인권 문제를 다뤘다.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다룬 연극 <FACE>는 김혜리씨가 직접 쓰고 출연한 1인극이다. <FACE>는 한국에서는 물론, 미국과 영국에서도 초청되어 여러 평론가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사회 참여적인 작품 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김씨는 "사회 의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 같다. 이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예술은 변화의 힘을 갖고 있다"

"엄마 사랑해" 딸의 마지막 메시지는 엄마가 살아야 할 이유다.
 "엄마 사랑해" 딸의 마지막 메시지는 엄마가 살아야 할 이유다.
ⓒ 극단 ETS

관련사진보기


김씨와 단원들은 진도, 안산, 인천 등에 직접 다녀왔다. 예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다. 김씨는 "진실을 밝히고, 기억하고, 나누기 위해 행동한 사람들의 노력에 대해서도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김씨는 연극을 올리는 이유에 대해 "반드시 밝혀야 할 문제와 희생을 기억하고, 창작의 결과물을 관객과 나눔으로써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이 공연의 의미"라고 밝혔다.

연출가 김혜리씨는 국민대학교 공연예술학부의 교수다. 등장인물인 창현과 예찬은 김씨의 제자들과 비슷한 또래다. 극 중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창현과 예찬은 선생님의 글을 발견한다. 김혜리씨가 제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예술은 전쟁을 멈추지도 못하고,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지도 못한다. 그것은 결코 예술의 기능이 아니다. 예술은 일어난 사건을 바꿀 수도 없다. 그러나, 예술은 인간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예술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바뀌도록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예술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고결해질 수 있고,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들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들을 하게 된다. 그것이 투표이든, 사고방식의 변화이든, 혹은 행동이든. -레오나르드 번슈타인

<사랑해. 4월 16일 그 후>는 오는 12월 10일부터 12월 21일까지 대학로 서완 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태그:#사랑해 4월 16일 그 후, #세월호, #연극, #극단 ETS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