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는 한국 사회에서 삶의 한 축이 되었다. 마트에 가면 시장보다 깔끔하게 물품이 진열돼 있다. 각기 다른 가게에서 사야 할 물건을 한 곳에 모았고, 이용하기도 편하다. 그런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마트를 우리 일상에 스미게 했다.

영화 <카트>는 그런 마트를 배경으로 오늘날의 다양한 삶을 조명한다. 등장인물의 대다수는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남녀노소 각자 다르면서도 닮은 문제점을 드러낸다. 그 인물과 상황을 차근히 '마트에서 구매포인트 적립하듯' 쌓아가는 과정이 영화 <카트>의 묘미다.

어느 날 해고당한 마트 노동자들

 영화 <카트>의 한 장면. 어느날 갑자기 해고를 통보받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항의하고 있다.

영화 <카트>의 한 장면. 어느날 갑자기 해고를 통보받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항의하고 있다. ⓒ 명필름


영화는 마트에서 일하던 주인공 선희(염정아 분)가 정규직 전환을 약속 받은 날의 풍경으로 시작한다. 다년간 서비스 평가 부문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선희는 비정규직 사원들의 우상이 된다. 반면 옥순(황정민 분)과 미진(천우희 분)은 부족한 점수를 받아 반성문을 쓰는 벌을 받는다. 미진은 설강가상으로 계산대에서 자신의 대학시절 동창생을 만나면서, 부유한 그녀의 모습과 대비되는 자신의 삶에 자괴감을 느낀다.

선희는 자신의 아들인 태영(도경수 분)에게 휴대폰을 최신형으로 바꾸어 주겠노라고 약속한다. 정규직 사원이 되고 월급이 인상되면 가능한 일이다. 남편과 이혼한 혜미(문정희 분)는 홀로 아들을 키우느라 고군분투한다. 좌충우돌하면서도 마트 노동자들과 가족들은 나름의 행복을 찾으며 소박하게 살아간다.

그 작은 행복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직원들이 다니는 복도에 붙은 벽보 때문이다. 자신들이 일하는 '더 마트'가 갑자기 하청업체와의 간접고용 계약을 시행하면서 대부분의 직원을 정리해고 한다는 소식이 일방적으로 통보된 것이다.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은 선희는 물론 대부분의 사원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분노한다.

평생 '노동조합'의 '노'자도 듣지 못하며 산 아주머니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정리해고를 앞두고 회사와 협상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사측은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노조 활동을 정리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검은 거래를 시도한다. 과연 <카트>의 마트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작은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인지가 영화 줄거리의 핵심이다.

뛰어난 연기력과 연출 돋보이는 영화 <카트>

 영화 <카트>의 한 장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태영(도경수 분)은 사장으로부터 임금을 체불당하면서 파업하는 엄마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영화 <카트>의 한 장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태영(도경수 분)은 사장으로부터 임금을 체불당하면서 파업하는 엄마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 명필름


<카트>에는 노동자의 권익이 기업의 경영수단으로 악용되고 자본의 논리에 짓밟히는 한국의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단순히 메시지 전달에 그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카트>의 매력은 영화 외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영화 본연의 역할에도 충실하다는 점에 있다.

일단 배우 염정아와 문정희, 김강우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이 출중하다. 부족하거나 과하지 않은 캐릭터 설정과 이를 연기로 구현하는 능력은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또한 배우의 정확한 발음과 표정 등의 표현력도 돋보인다. 그룹 엑소에서 활약하는 도경수도 '아이돌의 연기 시도'라는 테두리에서만 평가하기엔 미안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인다. 조연급 출연진인 배우 이승준과 지우 등의 활약도 적재적소에서 빛난다.

제작진의 연출력도 칭찬할 만하다. 영화 <카트>는 초반에 갑자기 정리해고 당하는 사건을 계기로 뜻을 모으는 인물들의 얘기를 그린다. 그럼에도 상황을 급격히 전개하지 않는다. 적절한 감정선을 그려내 관객의 감정이입을 돕는다. 차분히 이야기를 풀면서 등장인물의 성격을 쌓는다.

결국 이런 요소들이 종합돼 영화의 설득력과 매력을 한층 더 높인다. 노동자의 처지에 동병상련을 느끼게 하고, 사회에서 겪는 여성의 지위를 생각해보게 한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마트에 일하러 나온 주인공에게 "반찬값 벌러 나온 것 아니냐"고 묻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싱글맘 혜미의 애환과 파업 중에도 남편과 아이들 생각을 하는 선희의 모습도 현실과 닮았다.

수학여행비는커녕 급식비도 없어서 점심을 굶는 태영의 이야기도 낯설지 않다. 어머니와 아들인 선희와 태영이 화해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파업에 참여하느라 집에 오지 못하는 엄마를 미워하다가, 편의점 알바 임금을 체불 당한 뒤에야 엄마 심정을 이해하는 아들의 모습이 유연하게 그려져 있다. 서서히 공감대를 이루는 두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관객도 그들의 사연과 심정 변화에 고개를 끄덕인다.

영화의 현실감 끌어올린 한국의 현실

 영화 <카트>의 한 장면. 선희(염정아 분)와 혜미(문정희 분)를 비롯한 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부당해고에 맞서 싸운다.

영화 <카트>의 한 장면. 선희(염정아 분)와 혜미(문정희 분)를 비롯한 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부당해고에 맞서 싸운다. ⓒ 명필름


종합하면 한국 노동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비정규직의 처우, 고교생의 방황, 주부로 사는 일이 잘 묘사됐다. 영화 <카트>가 청년세대와 장년층뿐만 아니라 아이돌 가수의 팬층까지 관객으로 끌어모을 수 있는 이유다. <카트>는 23일 기준 전국 62만 관객을 동원하며 약진하고 있다.

한국영화 사상 비정규직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흔하지 않은 사례로 기록될 <카트>는 실화를 소재로 한다. 2007년 이랜드가 운영한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재구성한 것이다. 부당해고에 반대하며 마트를 점거하면서 농성했던 노동자들은 2007년 7월에 경찰의 해산명령에 불복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이후에 노조를 조직했던 인원들 중 일부만 다시 복직하는 '반쪽 승리'를 거두면서 사태는 일단락 되는 듯했다.

하지만 7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한국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많은 마트 직원들은여전히 간접고용으로 적은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으로 산다. 영화 속 청소노동자인 순례 여사(김영애 분)가 휴게실조차 없이 근무하는 등의 열악한 처우는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청소부'로 불리는 사람들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파업 후 수년간 투쟁을 이어온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내려진 최근 대법원 판결도 영화만큼이나 비극적이다. 정리해고의 이유라며 사측이 주장했던 '경영상의 어려움'이 회계조작을 근거로 삼았다고 고등법원에서 밝혀졌지만, 이것마저도 최종판결에서 마땅한 근거없이 '경영상의 이유'이기에 적합하다고 뒤집힌 것이다. 영화 속 마트 점장이 "직원도 마음대로 못 자르면 그게 회사야?"하고 소리치던 것이, 어쩌면 실제 현실에서도 많은 회사 경영진의 숨은 속내가 아닌가 싶은 지경이다.

이렇듯 영화가 묘사한 비정규직의 많은 어려움은 픽션이 아닌 현실이며,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노조'는 불순하고, '파업'은 나쁜 짓이며, '비정규직'은 남의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면 '함께 사는 세상'이 가까워질까? 영화 <카트>는 이 물음의 답을 제시하는 일에 앞서 관객에게 권하는 듯하다. 당신의 주위를 한 번쯤 둘러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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