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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금오산 입구 채미정 경모각의 길재 초상
 구미 금오산 입구 채미정 경모각의 길재 초상
ⓒ 채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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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 금오산에는 고려 유신(遺臣)으로 이름높은 길재의 유적이 두 곳 있다. 하나는 주차장에서 금오산 주등산로로 나아가는 길목에 있는 채미정이고, 다른 하나는 산 중턱쯤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나 있는 도선굴이다.

채미정(菜薇亭)에는 고사리를 캐먹으며 숨어 산 사람의 정자라는 뜻이 숨어 있다. 물론 그 사람은 정몽주의 제자 길재로, 스승 포은, 그리고 목은 이색과 더불어 '여말 삼은(麗末 三隱)'으로 기려지는 인물이다.

'채미'와 '은(隱, 숨어 살다)'은 중국 백이숙제에서 왔다. 주 무왕이 은(상) 주왕을 토벌하여 멸망시키자 백이숙제 형제는 "신하가 임금에 반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주 무왕을 섬길 수 없다"며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으며 숨어 살았다. 그런데 무왕의 신하 왕미자가 찾아와 "너희들은 무왕을 섬기지 않는다면서 어찌 주나라 땅에서 나는 고사리는 먹느냐?"며 형제를 책망했다. 마침내 두 형제는 고사리도 먹지 않고 굶어 죽었다. 성삼문은 그 일을 자신의 처지에 견줘 이렇게 노래했다.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夷齊) 한하노라.
주려 주글진들 채미(採薇)도 하난 것가.
비록애 푸새엣것인들 긔 뉘 따헤 났다니.

채미정의 여름
 채미정의 여름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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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재가 고향 선산으로 내려온 때는 1389년이다. 아직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임금자리를 차지하기 이전이었다.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향리로 내려온 길재였지만 그에게 스승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철퇴에 맞아죽은 비보가 아니 들려올 리는 없었다. 길재는 세자 이방원이 1400년(정종 2) 벼슬을 주며 부르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는 금오산 중턱 도선굴에 숨어지내면서 지난 세월을 회고했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채미정 경내에 들어서기 이전에 답사자는 이 시조가 새겨진 빗돌을 볼 수 있다. 시비 앞에서 길재의 회고가를 소리내어 한 번 읽은 다음, 다리를 건너 경내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채미정 정자 자체가 답사자를 맞이한다. 채미정은, 날씨가 화창한 철에는 체험학습 나온 아이들이 정자 위에 올라 봄빛같은 얼굴을 반짝이며 떠들고 놀기도 하는 곳이다. 물론 여름이면 사방으로 창호가 올려져 세상의 시원한 바람을 모두 받아들인다.

채미정은 1768년(영조 44)에 지어졌다. 채미정 뒤편으로 경모각(敬慕閣)과 길재 유허비가 있다. 경모각은 채미정 경내로 들어가는 흥기문(興起門)에 섰을 때 정면으로 바라보인다. 경모각에는 숙종이 남긴 어필오언구(御筆五言句)와 야은 초상이 걸려 있다.

채미정 사진은 정자 정면에 서서 들린 창 가운데로 유허비각이 가운데에 들어오도록 찍는 것이 가장 보기에 좋다.
 채미정 사진은 정자 정면에 서서 들린 창 가운데로 유허비각이 가운데에 들어오도록 찍는 것이 가장 보기에 좋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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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명승 52호인 채미정의 풍경 중 두드러지게 이채로운 것은 정자 기둥 사이로 유허비각이 반듯하게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다. 비 갠 뒤 채미정을 찾아 자홍빛 기둥 사이 딱 복판에 유허비가 들어가게 사진 한 장을 찍어볼 일이다. 사진에는 여린 안개가 지붕을 휘감아 신비로운 기운을 더하고, 현판 바로 아래에 바짝 들린 창호와 저 멀리 유허비각이 줄을 맞춰선 단정한 면모가 멋지다.

마찬가지로, 도선굴 들머리의 대혜폭포 역시 비 갠 뒤 찾을 일이다. 비 그친 뒤 이곳을 찾으면, 불과 해발 400m밖에 안 되는 곳에 있으면서도 높이가 28m나 되는 대혜폭포가 채미정 기둥 같은 물줄기들을 "우르르 쾅쾅쾅" 떨어뜨리는 장관을 만끽할 수 있다. 오죽하면 '금오산을 울린다'고 하며 명금(鳴金)폭포라는 별명을 얻었을까.

도선굴에 머물며 세월을 한탄하던 길재도 사람을 지치게 하는 무더위가 밀려오면 더러 이 폭포를 찾았을 것이다. 폭포 아래 물줄기가 떨어지는 지점을 이 고장 사람들은 예로부터 "욕담(浴潭)"이라 불러오지 않았던가. 아득한 옛날 '호랑이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는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한 곳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선녀들이 노니던 곳에, 길재 정도의 인물이 함께 어우러진들 그 누가 감히 탓할 것인가.

대혜폭포의 여름과 겨울 모습.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이 폭포에서 길재도 한여름의 무더위를 씻어내었을 것이다.
 대혜폭포의 여름과 겨울 모습.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이 폭포에서 길재도 한여름의 무더위를 씻어내었을 것이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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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폭포를 완상한 후 도선굴로 향한다. 길재가 머물렀던 동굴을 도선굴(道詵窟)이라 부르는 것은 풍수지리의 대가인 신라 도선대사가 이 곳에서 득도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님의 법호가 '길 도(道)'에 '많을 선(詵)'이 되었고, 한많은 길재 또한 이 곳에서 세상의 바른 길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채미정에서 한 장의 사진을 잘 찍었다면, 도선굴에서도 당연히 멋진 사진 한 장을 남길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진 두 장을 깔끔하게 남길 수 있다. 먼저, 폭포를 떠난 후 지금이라도 당장 낙석이 우두두 떨어져내릴 것 같은 벼랑 옆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도선굴로 들어가는 중에 한 장을 찍어야 한다. 사진을 찍어줄 일행이 있다면, 벼랑을 왼쪽에 두고, 오른쪽으로는 추락을 예방하기 위해 쳐둔 쇠사슬을 잡고 걷다가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라.

도선굴 가는 길. 혼자 방문했을 때는 사람들이 굴을 향해 걸어가는 사진을 찍고, 일행이 있을 때에는 돌아서 나오는 사진까지 찍는 것이 좋다.
 도선굴 가는 길. 혼자 방문했을 때는 사람들이 굴을 향해 걸어가는 사진을 찍고, 일행이 있을 때에는 돌아서 나오는 사진까지 찍는 것이 좋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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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굴은 길이가 7.2m, 높이 4.5m, 너비 4.8m 가량 되는 석굴이다. 굴 안은 민속 신앙심이 두터운 누군가가 늘 촛불을 켜 어둠을 모두 몰아내주는 덕분에 언제 찾아도 환하고 밝다. 그래도 역시 도선굴에서 보는 최고의 볼거리는 굴 밖에 있다. 산에 들어가면 산을 볼 수 없고, 숲에 들어가면 나무를 볼 수 없다고 한 금언은 이곳에서도 고스란히 증명된다.

굴 안을 등지고 밖을 바라본다. 좌우로 흘러내린 금오산 자락 사이로 가까이 해운사가, 멀리 구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봄여름이면 초록빛 절경이, 가을이면 오색찬란한 단풍빛이, 겨울이면 산천의 나신을 드러낸 고혹적 은근함이 아득한 도리사까지 펼쳐진다. 아도화상이 신라 최초의 사찰 도리사에 앉아 아득한 창공을 응시하고 있는 중 문득, 태양 속에 사는 금(金)빛 까마귀(烏)가 찬란한 놀 속에 비상하는 광경을 보았다고 하여 금오산(金烏山)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 산에서, 아도화상과 서로 마주보는 눈길로 시원한 풍경을 바라보는 황홀경이 온몸을 감싸고 돈다.

저절로 가슴이 열리고 마음이 뜨거워진다. "야호!" 소리를 지를 수는 없고, 그 대신 몸을 앞으로 내밀어 금오산의 정기, 즉 태양의 정기를 넘쳐흐르게 받아들인다. 이중환은 <택리지>에 '조선 인재의 절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절반은 선산에서 났다'고 했는데, 그 말은 곧 금오산의 정기에 대한 노골적 상찬 아닌가! 멀리 도리사를 바라보며 두 팔 높이 하늘로 치켜드니 진정 금오산 정기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차고 넘쳐흐르는 것이 부르르 살이 떨리도록 생생하게 느껴진다.

하산하면 다시 채미정에 가보야겠다. 올라올 때 길재 선생께 인사 올리는 것을 잊었다.

도선굴 사진은 위와 같이 찍을 때 가장 실감이 난다.
 도선굴 사진은 위와 같이 찍을 때 가장 실감이 난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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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굴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풍경. 가깝게 해운사, 멀리 계곡 사이로 금오산관광지 주차장의 일부가 하얗게 보인다. 아득한 원경, 푸르스름한 기운으로 하을과 뒤섞여 보이는 산이 아도화상의 도리사가 있는 곳이다.
 도선굴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풍경. 가깝게 해운사, 멀리 계곡 사이로 금오산관광지 주차장의 일부가 하얗게 보인다. 아득한 원경, 푸르스름한 기운으로 하을과 뒤섞여 보이는 산이 아도화상의 도리사가 있는 곳이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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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지난 11월 20일 금오산을 찾았습니다.



태그:#채미정, #길재, #도선굴, #금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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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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