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가 국내에서 500만 관객(19일 기준 540만)을 돌파하면서 2014년 늦가을 극장가의 흥행 돌풍을 이끌고있다. 개봉한 지 2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예매율 1위를 기록하면서 인기몰이 중이다.

주인공인 쿠퍼(매튜 맥커니히)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에 환영받지 못하는 엔지니어다. 멀지 않은 미래의 지구는 인류의 잘못으로 황폐한 땅으로 변해 버렸다. 병충해가 심해져서 작물이 차례대로 멸종의 길을 걷고, 기껏해야 옥수수를 재배하는 일이 유일한 희망으로 남았다. 식량 문제와 더불어 고갈되는 자원이 인류의 재앙으로 떠오른다. 각국의 정부와 경제가 무너진 상태이고, 피폐해진 사회에서 벌어지던 약탈은 간신히 진정 국면을 맞았다.

딸과 아들을 지키려는 쿠퍼는 아버지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꿈이 좌절되자 공허함을 느낀다. 세계는 기근을 해결하고자 농업을 다시 활성화하려 노력하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도 해체되면서 우주여행은 불필요한 분야로 잊혀져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이상 중력 현상으로 비밀리에 연구를 진행하던 NASA팀을 발견한 쿠퍼는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된다. 태양계의 토성 뒷면에 '웜홀'이 생성되었고, 이를 통해 다른 은하계로 가는 인류의 탈출구를 찾는다는 계획이었다. 절멸의 과정에 놓인 인류의 미래를 위해 쿠퍼는 자녀를 두고 우주로 나아간다. 그는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딸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인류는 쿠퍼의 말처럼 '늘 그랬듯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인셉션>과 달리 바깥으로 나아가는 <인터스텔라>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나선형의 블랙홀이 사실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나선형의 블랙홀이 사실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2010년작 <인셉션>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 영화에서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환상에 가까운 세계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인셉션>에서는 '꿈'을 소재로 점점 더 인간의 내면을 파고들면서 상상의 세계를 시각적 효과를 통해 구현했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우주를 탐험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으로 거듭 더 먼 우주, 즉 '바깥 세계로' 나아가는 줄거리를 보여준다. 감독 본인의 표현처럼, <인터스텔라>가 <인셉션>을 '거울로 비춘 듯한' 대비점이다.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과 형제인 조나단 놀란은 늘 각본 작업을 함께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는 조나단 놀란이 우주여행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 4년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상대성 이론을 공부하기도 했다. 다 쓴 각본을 물리학자인 킵 손에게 보여주며 과학적 자문을 얻었다고도 한다. 그 덕분인지 영화에 등장하는 거대한 블랙홀은 할리우드 영화상 가장 현실적이라는 평을 들었다.

줄거리뿐만 아니라 행성간의 여행을 묘사한 장면도 인상적이다. 상상에만 의지하기 보다는 과학적인 지식을 기반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된 우주 공간과 행성의 모습은 그 자체로 감탄을 자아낸다. 작년에 개봉한 <그래비티>가 극사실주의로 우주여행을 간접체험하게 만들었다면, 놀란 형제의 <인터스텔라>는 SF영화 특유의 상상력과 현실성을 적절히 버무리면서 관객을 만족 시킨다.

<인터스텔라>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분위기지만, 이런 구성은 기존의 놀란 감독 팬과 일반 관객 모두를 잡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두 개의 줄거리가 번갈아가며 스크린에 나오다가 어느 지점에서 퍼즐처럼 만나면서 관객의 두뇌를 자극하는 놀란 영화의 매력은 전작에 비해 덜하다. 그럼에도 특수효과를 통한 실감나는 우주공간의 묘사와 더불어 '가족애'로 감정을 두드리는 설정은 대중적인 영화로 손색이 없다.

인류의 미래를 그려낸, 잘 만든 우주탐험극

 영화 <인터스텔라> 스틸컷. 주인공 쿠퍼(매튜 맥커니히)는 딸에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한 후 인류를 구원하고자 우주로 나아간다.

영화 <인터스텔라> 스틸컷. 주인공 쿠퍼(매튜 맥커니히)는 딸에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한 후 인류를 구원하고자 우주로 나아간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인터스텔라>는 한 편의 잘 만든 우주탐험극이다. 그러면서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1968년작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떠올리게 한다. 우연한 일을 계기로 한 변화와 우주여행을 통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인류의 모습이 두 영화의 공통점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직육면체 인공지능 로봇 '타스'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인류에 진화의 영감을 주고 우주로 이끌었던 '검은 비석'과 닮았다. 또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도 우주여행의 한 역할을 담당한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했다. <인터스텔라>에서도 인공지능이 인류를 배반할까? 이런 점들도 관객이 극장에서 직접 확인할 묘미가 되겠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재앙도 어쩌면 사실에 근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터스텔라>의 인류는 황무지가 되어가는 지구에서 거대한 모래폭풍을 연이어 겪으면서 절망한다. 농작물이 사라져가고, 모래폭풍에 폐질환이 늘면서 사람들은 고통 받으며 죽어간다. 이를 묘사한 영화 중 인터뷰 장면에서 '4월 14일의 모래폭풍'이 여러번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흥미로운 점은 실제 1935년 4월 14일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모래폭풍이 오클라호마를 강타한 날로 '검은 일요일'로 불린다는 것이다. 1930년대에 개척민이 늘어나고 식량 수요의 증가로 미국 중부의 대초원이 무분별하게 개간되었다. 이런 변화로 10년 가까이 해당 지역에 사막화 현상이 지속되면서 당시 주민들이 농업 궤멸로 피해를 입은 바 있다. 놀란 감독은 이와 같은 역사 속의 실제 사건에서 참담한 인류 미래의 축소판을 본 것은 아닐까?

아쉬운 점도 있지만, 여전히 차기작이 기대되는 감독

 영화 <인터스텔라>의 포스터.

영화 <인터스텔라>의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2시간 40분의 상영시간을 고스란히 채우는 시각효과와 함께 잘 짜여진 줄거리는 인류의 미래를 담았다. 주인공이 아버지로서 겪는 개인적 고뇌와 인류의 생존이라는 무게감이 교차하며 아슬아슬하게 긴장감을 연출한다. 이런 점들이 3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극장에 앉아 있어도 관객이 지루하지 않도록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들이다.

<인터스텔라>는 실감나는 우주여행의 시각화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전까지 놀란 감독이 보여준 역량에 비해서 다소 실망스럽다는 평도 많다. 다수 관객의 만족도를 신경쓰느라 본인의 색깔이 흐려졌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영화에서 과학적 이론과 특수효과로 사실성 구현을 이루었지만, 전작들에 비해 특유의 줄거리 완성도가 약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아쉬운 점도 분명 있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은 여전히 차기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감독이다. 20년간 다듬으며 스토리를 완성한 <인셉션>이나 '배트맨'으로 유명한 원작을 되살려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낸 <다크나이트> 시리즈를 보면 그렇다. 물리학을 직접 공부하며 각본을 쓴 <인터스텔라>도 발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점점 더 스케일을 키워가면서 새로운 세계를 영화로 만들어내는 놀란 형제의 <인터스텔라>는 걸작이라기엔 다소 부족하지만 범작으로 묻어두기엔 아까울 정도로 잘 만든 영화다. 또한 편한 마음으로 우주여행을 체험하고 싶은 관객을 위한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관람 후에 아기자기한 영화 속 요소들과 우주에 대한 지식을 찾아보는 것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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