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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지난 20일과 21일 경북 경주 더케이호텔에서 사내하청 노동자 기술직(생산직) 신입사원 400명의 입사식을 갖고 수료증과 사원증을 수여했다. 이들은 오는 24일부터 정규직으로 정식 출근한다.

입사식은 현대차 임원진과 신입사원 및 가족이 참여한 가운데 오후 5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번 입사식에서 현대차 문정훈 전무는 "대한민국 경제에 이바지한다는 막중한 책임감과 자부심을 갖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새로운 도약을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격려했다.

이후 지역 언론과 포털 사이트에는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이날 새로 입사한 직원은 "최종합격 소식에 무척 기뻤고 아내는 연신 눈물을 쏟아냈다, 그때 그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항상 지금의 초심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신입사원이 될 것"이라는 포부도 밝혔다.

하지만 이 모습을 지켜보는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아래 비정규직노조)는 더 큰 눈물을 쏟아냈다. 이들 동료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는 과정이 그동안 비정규직노조가 10년을 싸워온 불법파견 투쟁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내하청 노동자 400명의 정규직 입사, 어떻게 진행됐나

지난 8월 21일 내려질 예정이던 현대차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집단 소송 선고가 연기되고 8·18 합의가 나오자 8월 28일 울산지역 불법파견 정규직화 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조합원 배제 없는 모든 생산하도급 전원 정규직 전환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나선 비정규직노조 울산지회를 적극 지지하며 그 길에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 8월 21일 내려질 예정이던 현대차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집단 소송 선고가 연기되고 8·18 합의가 나오자 8월 28일 울산지역 불법파견 정규직화 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조합원 배제 없는 모든 생산하도급 전원 정규직 전환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나선 비정규직노조 울산지회를 적극 지지하며 그 길에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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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1일과 22일은 지난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노동자 1900여 명이 제기한 '현대차 근로자 지위확인' 집단소송에 대한 선고가 4년여 만에 내려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선고는 한 달 가량 연기된 9월 18일과 19일 내려졌다. 

애초 예정되었던 판결일을 3일 앞둔 지난 8월 18일, 현대차 회사 측과 현대차정규직노조(아래 현대차지부), 비정규직노조 전주·아산지회는 비정규직노조 울산지회의 반대에도 '현대차 비정규직 특별교섭'에서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19일, 비정규직노조 전주·아산지회의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합의안이 가결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8월 18일 잠정합의안이 나오자 특별교섭에 불참한 비정규직노조 울산지회는 "정규직노조가 회사 측의 불법파견 은폐에 앞장서고 있다"며 반발한 바 있다. 이 합의서에 정규직으로 신규채용되는 조건으로 정규직 전환 소송을 취하하거나, '양 당사자간의 합의에 따라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부제소 합의 조항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별교섭 합의와 전주·아산지회의 총회 그리고 재판부의 선고 연기는 잘 짜인 각본처럼 진행됐다"며 "현대차지부와 아산·전주 지회는 훌륭한 출연자 역할을 했다"고 비난했다.

지난 4년 간 소송 결과를 기다리던 사이 비정규직 일부는 소를 취하했다. 끝까지 남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두 1200여 명이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 41부와 42부가 9월 18과 19일 '현대차 사내 하청이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하고 '그동안 밀린 정규직 임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리자 이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현대차 회사 측은 지난 8월 합의 대로 신규 채용을 강행, 이날 400명의 신입직원이 입사식을 연 것이다. 승소 판결에 흘린 기쁨의 눈물이 이제 고통의 눈물로 바뀐 것. 또한 지난 9월 18일과 19일 법원의 정규직 인정 판결에도, 회사 측은 소송 취하를 조건으로 신규채용을 하는가 하면 이에 응하지 않는 노동자들에게는 손해배상 청구를 진행했다. 법에 따라 정당하게 정규직이 되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오히려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관련 기사: '정규직 승소'한 현대차 비정규직, 왜 죽으려했나).

이진환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수석부지회장은 22일 "이번 신입사원 400명은 8·18 합의 이후 회사 측이 강행한 정규직 신입사원 채용에 응한 사람들이다"며 "이들의 채용 조건으로 부제소 합의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이어 "소송을 진행 중이었던 사람, 또는 조합원 중에서 (이번 신입사원이) 몇 명인지는 24일 출근이 시작되면 정확한 수가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정규직노조 "특별고용이라는 미끼로 법 판결 무력화"

현대차 회사 측은 이번 400명을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2438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신입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모두 비정규직노조가 "법에 따른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자 그 대응으로 나온 것이다. 지난 8·18 합의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채용인원을 당초 3500명에서 500명 늘린 4000명으로 해 2015년까지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는 이번 신입사원 입사식과 관련한 입장을 내고 "8·18 합의는 철저하게 현대차 회사 측을 위해 만들어졌다"며 "특히 9월 18일 서울중앙지법 판결 이후 이 합의는 더욱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정규직노조는 이어 "현대차가 정규직 특별고용이라는 미끼로 법 판결을 무력화시키고 불법파견을 인멸하는데 8·18 합의가 첨병역할을 하고 있다"며 "회사 측은 손배 가압류로 끝까지 투쟁하는 비정규직노조와 조합원을 굴복시켜 8·18 합의 대상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또한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과 서울중앙지법 판결에도 불구하고 8·18 합의 존중만 외치고 있고, 심지어 두 차례 대법 판결이 있음에도 최종심 준용 운운하며 소송 취하와 부제소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는 불법파견 투쟁 명분을 뺏고 판결마저 무력화시키고, 비정규직노조를 짓밟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인정 소송을 돕고 있는 금속법률원은 지난 8월 20일, 선고 연기 신청과 관련한 의견서에서 "8·18 합의서는 단체협약 체결권자인 금속노조위원장이 전혀 관여하지 못한 상태에서 현대차 정규직지부와 아산·전주 비정규직 지회가 합의한 것으로, 단체협약 체결권자가 아닌 자가 체결한 협약은 효력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진환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수석부지회장은 "지난 18일 금속노조 위원장과의 간담회를 통해 금속노조에 항의했다"며 "오는 24일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 불법파견 투쟁을 가로막는 8·18 합의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이 합의 인정은 비정규직노조 불법파견 투쟁을 부정하는 것임을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현대차 신규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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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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